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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의 역사 (1)
- 세계 최초의 다문화 국가
  페르시아를 건국한 키루스 2세

글.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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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루스 2세 묘
 

인류 역사에서 페르시아가 차지하는 위치는 대단하다. 세계 최초의 문명이 일어난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메디아와 리디아를 비롯해 신바빌로니아를 꺾고 최초의 대제국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이집트까지 제압하여 세계를 통일했다. 이후 알렉산더에게 영향을 끼쳐 동서 문화융합의 헬레니즘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그 페르시아 제국을 연 사람이 키루스 2세이다. 그는 이란의 역사에서 우리로 치면 ‘단군’과 같
은 존재다. 즉, 지도로 보면 비옥한 초승달 지역인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이란은 변방에 속한 곳이었다. 그 변방의 왕자로 태어난 키루스 2세가 자신의 외할아버지가 지배하고 있던 메디아를 손에 넣고, 리디아에 이어 신바빌로니아까지 제압하는 과정을 보면 경이롭기 그지없다.

사실 인류역사에서 보면 보잘것없는 변방 출신이 세상을 뒤흔든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초라한 유목민족의 후예로 전 세계 패권을 차지한 칭기즈칸이 그랬고, 지중해 프랑스령의 조그만 섬 출신인 코르시카의 나폴레옹이 그랬다. 또한 그리스 북쪽의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가 있고, 지금의 위대한 미국의 초석을 놓은 에이브러햄 링컨도 선거만 나가면 떨어지는 시골 촌뜨기 변호사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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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세기에 페르시아 제국을 세운 키루스 대왕의 일생을 기록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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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루스 2세
 

페르시아 제국의 건설자 ‘키루스 2세(기원전 580년~기원전 529년)’는 동양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지만, 서양과 중동(특히 이란)에서는 최고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사람이다. 심지어 역사학자들이 모여 인류 역사 최고의 영웅을 선정하는 작업에서 몽골의 칭기즈칸을 누르고 인류역사 최고의 영웅으로 선정된 인물이기도 하다.

구약 성경에서는 ‘고레스’라고 지칭되고 있고, 유대민족이 아닌 사람 중에서 유일하게 하나
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구세주)로 추앙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구약성경은 키루스 2세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나 야훼/여호와가)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그를 유대인들은 ‘왕 중의 왕’으로 칭송하고 있다.

성경에서 키루스 2세를 이토록 찬송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키루스 2세가 포용과 관용의 
리더십으로 세상을 평정하고, 수많은 문화와 종교가 함께 어울리는 제국을 건설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서 보면 조선 초기 태종의 강력한 리더십과 세종의 인자한 덕성을 함께 갖춘 사람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

키루스 2세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중동지역의 4대 왕국의 하나인 메디아(당시 중동지역에
서는 이란과 중앙아시아, 터키 동부 지역의 메디아, 터키 서부지역의 리디아, 이라크 시라아 요르단 지역의 신바빌로니아, 이집트 등의 4대 왕국이 쟁패를 겨루는 상황이었다)의 속국인 아케메네스 왕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탄생 설화를 보면 마치 김유신의 누이 문희가 김춘추와 결혼하는 설화와 흡사하다. 헤
로도토스에 의하면 “메디아의 왕인 아스티게스의 꿈에서 딸인 만다네가 오줌을 누었는데, 그 오줌이 황금색 강물이 되어 제국을 뒤덮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아스티게스가 사제들에게 해몽을 묻자 “만다네의 아들, 즉 손자가 왕국을 위협할 것”이라고 대답해, 그의 딸을 변방의 조그만 제후국인 아케메네스로 시집을 보내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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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스를 기록한 성경구절
 

이후 키루스 2세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죽이려고 군사를 보냈는데, 목동이 자신의 죽은 자식을 키루스 2세로 속여 가져다 바치고, 몰래 키워 목숨을 부지했다고 한다. 그 후 자라나서 아버지를 뒤이어 즉위한 뒤 반란을 일으켜 외할아버지의 메디아를 멸망시켰다(예수 탄생과 헤롯왕이 죽이려 했다는 기록한 것과 아주 유사하다).

그는 메디아를 멸망시키고 장악한 뒤, 지금의 터키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리디아를 정복하였
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탄탈로스가 리디아의 왕이었으며 트로이전쟁으로 유명한 트로이가 바로 리디아 왕국에 있었다.

그 후 흑해와 카스피해, 아랄해 등의 중앙아시아 쪽으로 군사를 움직여 그 지역유목민인 사
카족(청동기를 처음 만든 스키타이족, 인도 부처의 왕국을 건설한 샤카족, 석가모니는 샤카족의 승려라는 뜻이다)을 지배하고 그들을 복속시킨다. 샤카족은 키루스 2세에 감복해서 그의 가장 든든한 군대 역할을 하였다.

그렇게 이란과 아프간지역, 터키지역과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지역까지 영역을 확장한 
키루스 2세는 중동 최강의 신바빌로니아를 점령했다. 신바빌로니아는 공중 정원으로 유명한 네부카드네자르 2세 때 전성기를 구가하며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유대인을 바빌로니아로 끌고 가서 노예생활을 하게 만든 제국이다.

키루스 2세 때 신바빌로니아의 왕은 나보니두스였는데, 그의 아들 벨샤자르(구약성경의 벨
사살)는 성직자들을 견제하기 위해 신바빌로니아의 신 마르두크를 믿지 않았고, 마르두크를 믿는 사람들을 탄압했다. 이에 마르두크의 사제들과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는데, 키루스 2세는 이를 적극 활용하여 내분을 조장했다. 또한 유프라테스 하류 지역의 강물을 늪지대로 끌어들여 강 수위를 낮춘 뒤 난공불락이었던 바빌론 성곽에 무혈 입성하였다.

그 뒤 바빌론에 끌려와 노예살이하던 유대인들을 가나안으로 돌아가 살도록 해주고, 그들에
게 돈을 주어 성전을 짓고, 종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줬다. 그동안 역사학자들은 키루스 2세의 관용정책과 다문화 정책이 너무도 파격적이어서 많은 의구심을 가져왔다. 한마디로 “설마 그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세기 이라크 바빌론 신전 벽에서 쐐기문자로 된 원통이 발견된 후 이러한 의구심
은 깨끗이 해소되었다. 지금은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뉴욕의 유엔 본부에 모조품이 전시된 키루스 2세의 원통의 쐐기문자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쓰여 있다.

“정복 활동 때문에 생긴 노예는 해방하고 제국 내 국가들의 전통, 관습, 종교를 존중하며 나
의 어떤 신하도 이를 무시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신전 등 공공건물을 지을 때 노동자에게 무임금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임금을 지불한다.”

“나의 군인이 점령지 백성을 약탈하는 것을 엄금한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해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어떤 종교나 직업을 선택해도 좋다.”

“연좌제는 없다. 노예를 금지할 것이며 짐의 영토 안에서 남자와 여자를 노예로 거래하지 못 
할 것이다. 노예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이렇듯 키루스 2세의 원통에는 세계 최초의 인권선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다문화 관용 
정신과 정치철학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키루스 2세의 정치철학은 알렉산더 대왕으로 이어지고, 이후 동서 문화융합의 시대를 꽃피웠던 헬레니즘 시대를 열었다. 또한 로마의 세계시민 국가로 이어져 ‘팍스 로마나’의 시대가 열려 꽃을 피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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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스 실린더’로 불리며 1879년 발견된 원형 점토로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한 것을 기념한 내용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