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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알랭 드 보통

“공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힘과 희망을 준다”


알랭 드 보통, 2015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특별전 예술감독 맡아


‘공예와 충만한 삶’주제로 특별강연…
한국의 정체성 공예 통해 찾아야


글 사진 충청리뷰 박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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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아름답지 않다. 아파트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은 전 세계가 비슷하다. 파리나 프라하 몇몇 도시만이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도시가 좀 더 아름다워져야 한다. 우리가 매일 도시를 보면서 충만함을 느껴야 한다. 공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힘과 아이디어를 준다.”

세계적인 소설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2015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특별전 예술감독을 맡았다. 지난 10일 석우체육관에서 알랭 드 보통의 특별강연 ‘공예와 충만한 삶(Craft and a Fulfilling Life)’이 20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공예를 통해 철학을 사유하다

알랭 드 보통은 건축·철학·예술·직업관·종교·언론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저작으로 수 많은 베스트셀러를 보유한 인기 작가다.

그는 이번에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특별전 ‘아름다움과 행복(Beauty and Happiness)’의 예술감독으로 참여해 공예가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편하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탐구했다. 한국의 창작자 15팀과 함께 협업을 통해 새롭게 창작된 작품 100여 점을 선보였다. 전시는 지난 9월 18일부터 10월 25일까지 청주시 옛 연초제조창 건물에서 비엔날레 기간에 특별전으로 개최됐다.

알랭 드 보통은 한국의 젊은 작가들과 소통을 통해 15개의 키워드를 선정해 의견을 나누고 작가들이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 참여하고, 글로 엮기도 했다. 지난 9월 15일 발간된 비엔날레 특별전 도록 <알랭 드 보통의 아름다움과 행복의 예술>은 미술에세이 형식으로 구성됐다.

그는 “2년 전 청주공예비엔날레 관계자들이 영국 런던으로 찾아와 비엔날레 예술감독에 참여해보겠냐는 용감하고도 특별한 제안을 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공예 역사에 관한 두꺼운 책을 놓고 갔다. 두꺼운 책을 받고 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부분 그런 책을 받으면 용도를 쟁반 정도로만 생각하게 된다. 며칠 지나 책을 보게 됐고, 한국의 공예가 철학을 기반하고 있음을 알게 되며 흥미를 느꼈다. 얼마 후 감독직을 수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알랭 드 보통은 종교와 공예, 철학의 밀접한 관계에 주목했다. 그는 “예로부터 불교, 유교, 기독교 등 모든 종교는 공예를 밀접하게 이용했다”며 “한국의 공예는 철학자, 작가, 이론가 등 사상가로부터 시작됐다. 철학의 의지를 강하게 했던 것이 공예이며, 공예품을 통해 철학의 사상을 공유하고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공예역사는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전했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다른 미학’

“글을 통해 대화할 수 있지만 눈으로 직관적으로 말할 수도 있다. 미학을 통해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미친 영향이 크다. 종교가 많은 부분의 이야기와 빌딩, 그림, 건물 등의 도시 풍경을 바꿔놓았다. 가톨릭은 아름다움을 중요시 여겼지만 개신교는 정돈된 텅 빈 하얀 공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움을 중요하지 않게 여겼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성경책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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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어느 가톨릭 성당을 가더라도 정말 아름답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는 가톨릭 신자다. 가톨릭은 아름다워질수록 하나님과 가깝고 멀어질수록 하나님과 멀어진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좋음’ ‘선함’이라고 바꿔 놓고 생각해보자. 아름다워질수록 선해지고 착해질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반면 가톨릭시대 건축물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섬세하며, 장인들의 노력이 깃들어있다.

“유럽의 어느 가톨릭 성당을 가더라도 정말 아름답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는 가톨릭 신자다. 가톨릭은 아름다워질수록 하나님과 가깝고 멀어질수록 하나님과 멀어진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좋음’ ‘선함’이라고 바꿔 놓고 생각해보자. 아름다워질수록 선해지고 착해질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20세기 도시의 풍경은 참담해

하지만 우리 주변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는 “굉장히 슬프다”라고 말했다. “20세기 인간이 만든 세계를 봐라. 우리가 만든 세상은 굉장히 깨끗하고 기능적인 건물이 많다. 한국, 영국, 호주, 독일 등등. 도시는 아름답지 않다. 창문을 열고 도시를 보면 아름답게 느끼는가. 프랑스 파리나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와 같은 도시 등 아름다운 도시는 적고 대부분 추하다. 추하다는 것은 기능에만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고, 이는 개신교의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도시는 어떠한가. 알랭 드 보통은 아파트로 둘러싸인 어느 도시의 모습을 슬라이드로 보여줬다. 이는 우리나라의 특정도시가 아니라 보편화된 우리의 바깥풍경이다. “한국을 비롯해 독일, 영국, 호주, 캐나다 모두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우리가 가난해서 이렇게 된 게 아니다. 우리가 이렇게 선택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건 외관이 아니라고 했다. 프랑스 파리에 가면 굉장히 아름답다고 느끼면서 왜 자기집이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까. 왜 우리 도시를 파리처럼 아름답게 만들자고 생각해보진 않을까.”

알랭 드 보통은 휴대폰을 꺼내서 설명을 이어갔다. 그의 휴대폰은 6년 된 블랙베리폰이다. “사람들이 핸드폰을 꺼내면 보통 작가가 돈이 없다는데 정말 어렵구나라며 불쌍하게 쳐다본다. 최신 휴대폰을 사는 데는 많은 돈을 지불하고 새로운 기술에는 열광하면서 아름다운 도시에 대해서는 왜 아무 생각이 없는 걸까.”

아름다운 도시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그는 “인간의 영혼은 아름다운 걸 원한다”고 말한다. 이 세계에서 무엇이 아름다운지 말할 필요가 있다는 것. “미(美)는 소외돼 있다. 그림, 그릇, 빌딩을 만들지만 기업가는 수익을 내는 것만 생각한다. 아름다움을 옆으로 밀어두면 좋은 삶이 오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이 세계와 함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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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품, 기억을 저장한다

알랭 드 보통은 1200년대 청자를 보여줬다. 모든 사물은 말을 걸어온다는 것. 알랭 드 보통은 오래된 사물에 이야기를 건다. 그는 1900년도 한국의 반닫이에서는 남성적이면서도 강인한 정신을 읽어내고, 영국의 체스트에서는 ‘우리는 민주주의를 원한다’는 명제를 찾기도 한다.

공예가 주는 중요한 의미는 무엇이며 우리 삶은 어때야 하는가. “파리가 연인의 도시라고 하는 건 모든 곳에 관계성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도시 구석구석이 편안하고 아름답다.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것도 좋겠지만 도시입장에서 도시가 줄 수 있는 메시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공예는 실용적인 기능과 심미적인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은 공예와 예술이 왜 우리 삶에 중요한지 질문하고 답한다. “어머니 무덤가에 놓은 비판(碑版)이 있다. 1835년 한국의 어느 도자기 비판인데 아들이 어머니를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것이다. 공예와 예술은 이처럼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예술을 통해서 기억을 유지시킬 수 있다.”

알랭 드 보통은 그런 의미에서 사진을 찍는 것도 예술적인 행위라고 말한다. 그는 이를 두고 좋은 순간을 ‘유리병에 넣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삶의 저장은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삶의 중요한 순간을 우리는 유리병에 담아놓고, 그 유리병을 통해 과거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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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예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
으면 좋겠다. 자동차와 선박 말고도 공
예를 통해 한국을 아는 나라가 많아지기
를 바란다. 한국정부에서도 한국의 공예
를 알리는 데 힘을 써야 한다.”








‘유리병에 넣는 삶의 순간’

그는 “우리 삶은 희망적이지 않기 때문에 공예와 미술을 통해 아름다운 순간을 반복해서 봐야 한다. 우리는 행복해서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것은 눈물이 나게 한다. 우리 삶이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조부모가 손자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면 너무 사랑스러워 눈물이 난다. 최고의 예술가는 이 세상을 ‘사랑’으로 볼 것”이라고 말했다.

알랭 드 보통은 바쁘다. 해외 강연이 빽빽이 잡혀있다. 그래서 그의 집은 단순하면서도 간결하기를 원한다. 심리적으로 끌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18세기 마리 앙투아네트의 별장을 보여준다. 그녀의 별장은 너무나 소박하다. 어느 시골농가를 닮아있다. “우리 선조들 아마 10세기만 거슬러 올라가도 모두가 농부였을 것이다. 간결하고 소박한 집을 꿈꾸는 건 자기 삶이 넘쳐나는 걸 교정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도 아마 그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 시대에 공예와 예술은 무엇을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 당장 무엇을 바꿔야 할까. 알랭 드 보통은 “우선 공항이나 슈퍼마켓, 홀 이런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예술가와 공예가가 이 모든 것들을 만드는 데 참여하고 개입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많은 현대인들은 디자인이나 공예가 경제, 정치 등에 비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디자인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곤 하며, 우리 주변에 있는 사물, 건물, 가구 등이 우리의 심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미술, 공예, 디자인은 의술, 돈, 정치 못지않게 나름의 중요한 가치이며 사랑·신뢰·지성·정의 등을 일깨워주는 심리적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예술과 공예는 매개체가 돼 한국의 정체성을 높일 수 있다. 한국인들은 공예를 통해 자긍심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공예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자동차와 선박 말고도 공예를 통해 한국을 아는 나라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한국정부에서도 한국의 공예를 알리는 데 힘을 써야 한다.”

집에 작은 화분을 놓는 것, 작은 공예품을 사두는 것. 평범함 사람들의 삶의 풍경은 지금부터 바뀔 수 있다고 알랭 드 보통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