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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서

꽃이 피다

대한민국 최초 수중사진작가 와이진


글. 백은영 사진제공. 와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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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바다 속,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그곳에 인어가 유영한다. 닿을 수 없는 세상을 향한 갈망은 멀리가지 못하고 물빛에 부딪혀 산산이 흩어진다. 그렇게 흩어진 꿈의 조각들이 그리움이 되어 눈부신 빛으로 화한다. 그 때문인가. 인어를 바라보고 있으니 슬픔인지 아련함인지 알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이 내면에서 요동친다. 동화 속에서나 일어날법한 일들이 바다 깊은 곳에서 펼쳐진다. 손가락 끝에서 피어나는 심비로운 이야기들. 그 이야기 속에 생명을 불어넣는 한 사람. 한국인 최초 내셔널지오그래픽 다이버 수중 사진작가이자 국내 유일의 여성 수중사진작가 와이진(Y.Zi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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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무서워하는 꼬마가 있었다. 보통사람들과는 달리 폐가 작고 심장이 가운데 있어 심장박동과 호흡이 빨랐던 아이는 수영도 잘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훌쩍 자란 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되었고, 지금은 바다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게 됐다. 대한민국 최초이자 최고의 수중사진작가 와인진의 이야기다. 와이진(Y.Zin)은 그녀의 본명 김윤진의 영어 이름에서 따왔다. 독특한 이름이 입에도 귀에도 착 달라붙는다.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이름처럼 그의 사진 또한 한번 보면 잊히지 않고 자꾸만 보고 싶어지는 매력을 지녔다.
 

   


와이진, 수중사진작가가 되다
처음부터 사진을 전공한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의상학을 전공한 그녀는 재학 중 한 디자인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패션쇼에서 일을 하게 됐고, 훗날 방송국에서 유명 연예인들의 패션스타일리스트로도 활동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김중만 사진작가를 만나게 됐다. 지금의 그녀를 있게 만든 만남이었다.

“어느 날 김중만 선생님 스튜디오에 가게 됐어요. 그날 제가 가지고 간 디카(디지털카메라)를 보시더니 ‘너 사진해라!’라고 하시는 거예요. 예전부터 친분이 있던 터라 장난인 줄 알았는데 진심이셨더라고요.”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된 인연은 그녀 와이진을 사진작가라는 운명의 길로 접어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우연처럼 들어온 길에서 필연이 된 사진작가의 길. 와이진은 2006년 첫 개인사진전을 열며 프로사진작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호기심이 많았던 그녀에게 사진은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계기가 됐다. 그렇게 타고난 재능과 열정, 노력은 그녀를 대한민국 최고의 수중사진작가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사진작가들의 제자로서 그 실력을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지금은 세계를 무대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 됐다.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와이진을 보니 그 말이 딱 맞다.

“‘와이진’이라는 이름에 맞는 사진을 찍고 싶었어요. 남들과 똑같은 사진이 아닌, 저만의 특별한 사진을 찍고 싶었죠. 그때 영국의 제나 할러웨이의 수중사진을 알게 됐어요. ‘아, 이거다!’ 제가 찍고 싶은 사진을 찾은 거죠. 수중사진을 연구하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다이버 시험을 보게 됐고, 2008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내셔널지오그래픽 다이버 수중사진작가가 될 수 있었어요.



열정은 두려움을 이긴다
신체적인 문제로 물이 두려웠던 그였지만, 두려움도 호기심과 열정 앞에선 고개를 숙였다. 목표가 생기니 그 다음은 속전속결이다. 먼저 물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야 했다.

수중사진작가가 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프로그램들이 폐가 작고, 심장이 가운데 위치한 그에게는 고통이었다. 지금이야 자기 페이스를 찾았지만 처음에는 호흡이 가빠지고 어지러워지면서 외려 물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지기도 했다. 게다가 달팽이관도 일반인보다 얇아 물 속 파도에 심한 멀미를 앓기도 했다. 열등감에 사로잡힐 수도 있었지만 몸이 지칠수록 오기가 생겼다.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에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를 무대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 와이진. 그의 이름이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장서희 주연의 드라마 <산부인과> 포스터 작업을 하면서다.

이 작품은 수족관촬영이 아닌 진짜 수중촬영으로 진행했다는 점에서 위험 부담이 컸다. 그래도 수중사진작가로서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였기에 주저할 수 없었다. 수중촬영은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무엇보다 생명과 관련돼 있어 위험도도 큰 작업이다. 수중촬영, 드라마 주인공이 나오지 않는 포스터 그리고 누드 작업. 부담이 컸던 만큼 세간의 주목도 많이 받았던 작품으로 대중에게 그녀 ‘와이진’의 이름을 각인시킨 계기가 됐다.

열정은 두려움을 이긴다지만, 지나친 호기심과 열정으로 위험한 고비도 수없이 넘긴 그다. 수중촬영이라는 것이 바다 속에서 이뤄지는 만큼 덩치 큰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상황이 다분하다.

“외국에서 상어를 만난 적이 있어요. 자극하지만 않으면 위험한 동물은 아닌데 제가 갖고 다니는 장비들이 워낙 크고 반짝거리다보니 눈이 피곤했나 봐요. 저에게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데 피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찍어야겠다는 마음이 앞선 거예요. 아찔했었죠.”

사진 찍는 것에 집중하다 산소통을 체크하지 못해 다른 사람 호흡기를 물고 물 밖으로 끌려나온 적도 있는 그이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안전을 제일로 친다. 위험 요소들도 많고 신체적인 약점도 지닌 그가 수중사진에 빠진 이유가 무엇일까.

“수중사진의 매력은 아무래도 육상에서는 찍을 수 없는 바다 속 물결이 만들어내는 드라마틱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들이 극대화되죠.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한 것을 못 참는 성격도 한몫 한 것 같아요. 아마도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더 강한가 봐요.”

그의 호기심은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도 해내고야 마는 마법 같은 힘을 지닌 것 같다. 물을 두려워하던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2015년 세계 최초의 사이드마운트 트라이믹스로 수심 101m 도전에 성공해 월드레코드를 보유한 ‘와이진’만이 남은 것을 보면 말이다. 와이진 그를 보고 있으니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의 한 대사가 생각난다. “제가 그 어려운 일을 해내지 말입니다!”


행복한 그녀의‘ 해피해녀 프로젝트’
열정과 도전으로 똘똘 뭉친 그녀 와이진에게도 슬럼프는 있었다. 사진작가의 길을 막 들어설 무렵, 디지털카메라(DSLR)의 보급과 발달로 너무 많은 사진작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유명 연예인들의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삶을 과감하게 버리고 들어선 길이었기에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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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슬럼프를 겪던 시기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해녀분들을 만나게 됐어요. 아무 장비 없이 파도가 너울대는 바다 속을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는 어머니들을 보며 저도 모르게 카메라를 집어 들었죠. 삶을 위해 자연과 맞서 싸우는 모습, 그러면서 자연과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며 해녀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해피해녀 프로젝트’의 시작이었죠.”

프로젝트의 의도는 좋았지만 사진을 찍겠다고 나타난 그를 처음부터 달가워하지는 않았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어머니들은 자신들이 물질하는 모습 즉 당신들이 해녀라는 것이 못내 부끄러웠던 탓이다. 가장 강인하고 아름다운 어머니의 모습이건만 예로부터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에 심겨졌던 해녀에 대한 편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머니들을 보며 많이 울었다던 그다.

“해녀이기 이전에 엄마로,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로서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싶었어요. 지금의 해녀 역시 여전히 강한 모습으로, 스스로의 일을 즐기고 있는 멋진 여성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죠.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때로는 소녀 같은 모습으로, 비록 몸은 고되더라도 일을 즐기는 ‘행복한 해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말이죠.”

그런 그의 바람은 ‘해피해녀 프로젝트’ 첫 해녀 사진집이 4월 세상에 첫 선을 보이면서 이루어졌다. 2012년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니 4년여 만의 결실이다. 출판을 앞두고 어머니들을 먼저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던 그에게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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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제 카메라 앞에서 웃어주셨던 해녀 할머니를 찾아뵐 때는 사실 걱정이 앞서기도 했어요. 연세가 있으셔서 혹 아프시면 어쩌나, 안 계시면 어쩌나하는 생각에 가슴을 졸였죠. 다행히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주시는데, 아직도 할머니의 그 미소 띤 얼굴과 제 손을 어루만져주시던 따뜻한 손을 잊을 수가 없네요.”

‘해피해녀 프로젝트’ 중 날아든 반가운 소식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11월 30일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공식 등재된 일이다. 국민 모두에게 기쁜 소식이었지만, 와이진 자신에게는 더욱 특별한 선물이었다. 해녀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으며, 한국의 해녀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노력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2월에는 신진여성문화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와이진은 4월에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ADEX(아시아 최대 해양 박람회)를 앞두고 ‘해녀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다.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에 등재됐다고는 하지만 해외의 저명한 대형 해양 박람회 등에 이를 알릴 수 있는 ‘해녀부스’조차 도와주지 않는 현실이 참담하다는 그.

와이진은 현재 ADEX에 해녀부스를 만들고 유네스코 이후로 함께 응원해줬던 해외 친구들과 해녀분들이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사비를 털어가며 준비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수중사진작가 와이진. 수중사진뿐 아니라 인물사진 등 그가 카메라에 담아내는 사진들을 보면, 대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나 사진에 갖는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사진을 보면 온기가 느껴진다는 기자의 말에 “촬영 전 모델 스스로도 몰랐던 매력을 제 스타일로 찾아내기 위해 늘 눈과 마음이 바쁘다”고 답하는 그다.

‘최초’ ‘최고’ ‘유일’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대한민국 최고의 수중사진작가 와이진. 현재 해외 여러 나라에서 전문 수중모델들과 함께 ‘동화 속 이야기’를 재해석해 표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그의 다음 작품들이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해녀 어머니들을 향해 “오늘도 바다에 있을 그녀들을 늘 응원한다”는 그에게 기자 또한 이 한 마디를 전하고 싶다.

“오늘도 바다에 있을 와이진 당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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