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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를 식혀주는 보랏빛 꽃을 가진 식물
도라지나물과 초무침

글, 사진. 허북구 원광대학교 원예산업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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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장마 뒤를 잇고 있다. 폭우, 폭염, 코로나19의 기승…. 극단적인 것의 연속으로 몸과 마음의 피로가 쌓이고 있다. 그렇게 지쳐가는 마음을 알아채 듯 파스텔색조의 꽃으로 지친 마음에 손을 내미는 식물이 있다. 바로 보랏빛과 하얀 꽃을 피우는 도라지다. 도라지는 한반도,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원산의 도라지과 도라지속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줄기는 40~100㎝로 곧게 자라며, 7~9월에 보라색 또는 흰색 꽃을 피운다.

도라지의 학명은 Platycodon grandiflorus이다. 속명 Platycodon은 넓은 종을 의미하며, 종명 
grandiflorum은 큰 꽃이라는 뜻을 갖는다. 도라지의 영명은 봉오리가 풍선과 같은 모양이라는 데서 ‘balloon flower’라고 부른다.

동아시아에서 공통적으로 이용되는 도라지
도라지의 이름은 도라차(道羅次)에서 ‘도랒’으로 되었다는 주장과 ‘도(道)를 알아라(道我知)’는 뜻에서 도를 알지→돌아지→도라지로 변했다는 주장 등이 있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한자로는 桔梗(길경)이라는 이름이 한국, 일본, 중국에서 많이 사용된다. 길경은 ‘귀하고 
길하며, 뿌리가 단단하고 곧다’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도라지의 다른 이름에는 도랏, 도랒, 도레, 돌가지 외에 길경근(桔梗根), 경초(梗草), 고경(苦梗), 고길경(苦桔梗), 리여(利如), 방도(房圖), 백약(白藥), 부호(符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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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 꽃밭
 

도라지의 종류는 원예종 유무와 뿌리에 따라 구분된다. 야생종과 원예종은 구별이 쉽지 않은데 대체적으로 원예종의 개화시기가 조금 빠른 편이다. 뿌리에 따른 구분은 가늘고 긴뿌리가 많은 것은 약(藥)도라지로, 주근이 굵고 잘 발단된 것은 식(食)도라지로 분류해서 부르기도 한다.

꽃 중에서는 흔치 않은 보랏빛 색깔의 꽃 때문에 더욱더 사랑을 많이 받는 도라지는 꽃보
다는 약이나 음식 재료로 많이 이용해왔다. 도라지의 식용 및 약용 문화는 일본과 중국에도 있다. 일본에서는 도라지꽃을 가문의 문양으로 많이 이용해 왔다.

식용할 때는 봄과 초여름에 새싹 및 줄기 끝의 부드러운 부분을 채취해서 신선하게 또는 
데쳐서 무쳐 먹는다. 조림이나 국거리, 튀김 등에도 이용한다.
중국에서는 도라지를 대부분 약용으로만 이용한다. 천식·가래·편도선염 등으로 목이 부었을 때, 유선염·임파선염·혈당·당뇨병 등에 이용해 왔다.

우리나라, 세계 최고의 약용과 식용문화 전통
우리나라에서 도라지의 약용과 식용 문화는 세계 최고라고 할 만큼 풍부하다. 1433(세종 15)년에 간행된 향약에 관한 의약서인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에는 “도라지는 맛이 맵고 온화하며 햇볕에 말린 것은 인후통을 잘 다스린다”라고 적혀 있다. 1613년에 간행된<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맛이 맵고 쓰며 약간 독이 있다. 허파·목·코 가슴의 병을 다스리고 벌레의 독을 내린다”고 기록돼 있다. <동의보감> 길경편에는 “길경은 폐의 기가 잘 돌도록 하며, 폐에 열이 있어 숨이 찬 것을 치료한다. 가루 내어 먹거나 달여 먹어도 좋다”라는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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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초무침
 
한의서에는 도라지가 빠지지 않을 정도로 많이 서술돼 있으며, 민간에서도 도라지를 천식·가래·목이 아픈데 등 폐질환에 민간요법으로 많이 이용해 왔다. 지금도 도라지는 배 등과 함께 추출해서 감기, 천식 등에 활용되고 있다.

도라지 요리가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는 뿌리를 주로 이용해 왔다. 1450년에 발간된 <산가
요록(山家要錄)>에는 도라지식해 만드는 법에 대해 “도라지를 잠깐 데쳐서 깨끗이 씻고 한마디 길이로 잘라서 생선과 함께 담가도 되고 도라지만 따로 담아도 된다”고 소개해 놓았다. 1540년경에 발간된 <수운잡방(需雲雜方)>의 묵국 분탕(粉湯)에는 도라지를 채썰어 이용하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1800년대 말에 발간된 <주식시의(酒食是儀)>에는 도라지찜 만드는 법에 대해 이와 같이 
소개가 되어 있다. “굵은 도라지를 삶아 물에 담가 우려 물기 없이 짜서 간장 넣어 간간하게 주물러 칼등으로 두드려 납작납작하게 한다. 고기를 두드려 볶아 각색 양념으로 먹을 것에 간을 맞춘다. 도라지를 마주보게 덮고 온전한 도라지 모양으로 만들어 밀가루 묻히고 달걀을 묻혀서 부친다. 갈비찜에도 쓰며, 반상의 조치로 쓰려 하면 장국에 꾸미 넣고 끓이고 도라지 부친 것을 토막 지어 넣는다. 조치로 쓰려면 표고버섯, 다시마를 반듯반듯하게 썰어 끓이다가 밀가루와 집장을 간하여 생강, 파, 양념을 넣고 후춧가루와 잣가루를 뿌려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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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나물
 

1924년에 발간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껍질 벗긴 통도라지를 가늘게 갈라서 소금을 넣고 주물러 쓴맛을 뺀 후 양념(고춧가루, 다진 파, 마늘, 설탕, 식초 등)으로 고루 무친 도랏생채(길경생채, 桔梗生菜)와 도라지 볶음이 소개되어 있다. 도라지는 제사 때 고사리, 시금치와 함께 삼색나물로 이용되는 등 우리 민족과 떼어 놓지 못할 만큼 친근한 민속식물이다.

도라지 요리의 첫걸음은 쓴맛 제거부터
도라지는 이처럼 우리 조상 때부터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온 만큼 조리법도 다양하다. 도라지차, 도라리강정, 도라지김치, 도라지오이무침, 도라지오징어무침, 도라지장조림, 도라지닭곰탕, 도라지튀김, 도라지볶음 등 도라지의 조리방법은 수없이 많다.

도라지 요리는 각양각색이지만 대체적으로 도라지 주근(主根)의 껍질을 벗기고, 쓴맛을 
제거해서 이용하는 공통점이 있다. 도라지를 잘 씻은 후 뿌리의 껍질에 과도로 줄기가 붙었던 부분에 칼집을 낸 다음 껍질을 아래쪽으로 벗겨 낸다. 돌아가면서 몇 번을 반복해야 하며 중간 부위에서 끊어진 것은 칼로 껍질을 긁어낸다. 도라지의 쓴맛 제거는 도라지를 세로로 6~8등분해서 쪼개고, 긴 것은 1/2~1/3 정도 먹기 좋게 자른 후 1~2일 동안 물에 담가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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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맛을 완화시키기 위해 물에 담가 놓은 도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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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이 맺힌 도라지
 

속성으로 쓴맛을 빼는 방법은 껍질을 벗긴 후 가늘게 찢은 도라지를 소금물에 3~4시간 정도 담가두었다가 꺼내서 맑은 물에 30분 정도 담가놓으면 쓴맛과 짠맛이 모두 없어지거나 크게 완화된다.

도라지초무침은 고추장, 액젖, 다진 마늘, 매실청, 식초를 혼합해서 양념을 만든 다음 쓴맛을 없앤 도라지와 혼합해서 무친다. 도라지나물은 쓴맛을 없앤 도라지를 데친 후 들깨가루, 소금, 다진 파, 다진 마늘, 깨소금으로 양념하여 식용유에 살짝 볶는다. 볶은 후에는 참기름, 볶은 참깨 등을 뿌려서 최종적으로 완성한다. 도라지초무침이나 도라지나물 모두 너무 잘 알려진 음식인데도 소개하는 이유는 도라지꽃을 생각하면서 코로나19 등으로 지친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랬으면 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