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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과학기술과

석조예술의 만남


글, 사진. 이명우 운룡도서관・운룡역사문화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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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강석굴 전경
 


석굴암은 불국사를 창건한 김대성이 불국사보다 먼저 만들기 시작해 착공 후 24년만인 혜공왕 10(751)년에 완공했는데 당시에는 석굴암이 아니고 석불사(石佛寺)라고 불렀다. 토함산 중턱에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석굴을 만들고, 내부공간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역사상, 천왕상 등 총 40구의 불상을 조각했으나 지금은 38구만이 남아있다.

석굴암의 내부 구조는 입구인 직사각형의 전실(前室)과 원형의 주실(主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석굴암 앞 입구에 해당하는 전실에는 좌우로 4개씩 천(天)·용(龍)·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의 불법을 수호하고 대중을 교화하는 장수인 팔부신중(八部神衆)의 조각상이 있다. 통로 좌우 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을 조각한 석상이 있으며, 좁은 통로에는 좌우로 2개씩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조각한 석상을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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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강석굴 본존불
 


원형의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주실 안에는 석가여래 본존불이 중심에서 약간 뒤쪽에 안치되어 있다. 주실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천부상 2개, 보살상 2개, 나한상 10개의 조각상으로 채워지고, 본존불 뒷면 둥근 벽에는 석굴 안에서 가장 정교하게 조각된 십일 면 관음보살상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원숙한 조각기법과 사실적인 표현으로 완벽하게 형상화된 본존불은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의 경지에 이른 듯 숭고하면서도 온화한 얼굴 표정과 풍만하면서도 탄력 있는 당당한 체구이다. 뿐만 아니라 이상적인 신체비례 그리고 몸에 밀착된 옷자락의 간결하면서도 힘찬 잔물결 모양은 내면에서 살아 숨 쉬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본존불의 주변에 둘러있는 팔부신중의 얼굴과 온몸이 화려하게 조각된 십일 면 관음 보살상, 용맹스런 인왕상, 위엄 있는 모습의 사천왕상, 유연하고 우아한 모습의 각종 보살상, 저마다 개성 있는 표현을 하고 있는 나한상 등 이곳에 만들어진 모든 조각품들은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당시 유럽에서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시기의 로마제국(305~565년)의 신전과 공공건물에 세워진 수많은 대리석 조각상보다 나으면 나았지 뒤떨어지지 않는 최고의 석조 조각상들이다.



03.jpg조선 말 석굴암 전경
 

석굴암 석굴은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어 더욱 돋보인다. 물론 석굴암 조성 당시 중국과 인도의 거대한 석굴사원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 산서성에 있는 운강석굴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석굴인데 북위(北魏)시대(386~534년)에 만들었다. 제20굴에 있는 앉아 있는 불상 형태의 본존불은 높이가 13.46 가 되어 위용이 대단하지만 석불의 조각 기법과 미적인 예술성으로 보면 석굴암의 본존불에 비할 바가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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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본존불
 


석굴암 구조에는 당척(唐尺: 당나라 시대의 길이 단위, 약 28〜31.35㎝)이 쓰였으며 원형 주실의 반경은 12당척(약 336〜376㎝)이고 원형주실 입구의 폭도 12당척이다. 그리고 내부는 모두 정사각형, 정삼각형, 육각형, 팔각형, 원형 등을 복합적으로 사용하였다. 본존대좌의 지름도 12당척이고 후실 입구도 12당척이다. 따라서 석굴암 구조의 기본단위인 12당척을 1로 삼아서 석굴암 건축을 분석해볼 때 연대적으로 1:1.414의 비가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12당척을 1로 할 때 한 변이 1인 정삼각형의 수직선은 √(루트 2 또는 제곱근2)가 된다. 이 1:1.414의 비례는 소위 ‘황금구형(Golden-ment Rectangle)’의 비례인 1:1.618에 가까운 수치이며 그리스에서 고대부터 전해지는 미학적인 비례이다. 석굴암의 이러한 수학적 비례의 복합적 응용은 종교적 원리와 과학적・미학적 비례의 원리를 일치시켜 종교적 관념을 예술적 형태로 표현한 것으로 이곳에 들어설 때 종교적이며 예술적인 숭고한 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