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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회와 여성

(유대인은 왜 강인했나?)


글.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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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적인 정통파 유대인(하레디) 가정의 모습
 


한 사회의 전통과 문화에서 여성의 역할은 대단히 크다. 굳이 남성과 비교한다면, 한 사회의 전통과 종교 문화에서 여성의 역할이 중심이고 남성의 역할은 보조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다문화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며 결코 간과될 수 없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어머니란 존재가 한 사회의 정체성과 전통, 문화적 특징을 설명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지속성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문화 정책을 펼치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데 있어서 여성의 문제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다. 더욱이 현재 한국에 이주해온 이민자 중에서 결혼이주여성의 비율(한국 이주민 중 70%가 결혼이민여성)이 어느 국가보다도 높고, 가정생활과 2세의 양육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다문화정책의 주무부서인 여성가족부에서는 결혼이주여성의 문제를 ‘남녀의 문제’ 즉 여성의 문제 중심으로 펼치고 있어 안타까운 면이 없지 않다. 즉, 결혼이주여성과 남편의 관계 그리고 가정폭력 문제로 국한하지 말고, 다문화 가정의 2세와 국가의 출산율 그리고 다양한 문화 융합과 계승발전을 담보하는 여성이라는 측면을 함께 보고 있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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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통의상인 치파오. 요즘 중국에서는 치파오가 만주족의 전통의상이라며 배하고,
송・ 명나라 전통의상인 한푸(한복)를 살리자는 운동이 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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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전통의상인 히잡. 이외에도 눈만 내놓는 차도르, 눈조차 가리는 부르카 등의 전통의상들이 있다.
유럽에서는 차도르나 부르카가 여성차별 의상이라고 지적하지만 오히려 아랍의 여성들이 차도르나 부르카를 고집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각국에 전통의상이라는 것이 있다. 한국에는 한복이라는 것이 있고, 일본에는 기모노라는 것이 있고, 중국에는 치파오라는 것이 있고, 베트남엔 아오자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한국인으로써 한복에는 여성의 한복과 남성의 한복이 있다는 것만 알지, 일본의 기모노, 중국의 치파오, 베트남의 아오자이는 여성들의 전통의상으로만 알고 있다.

물론 저들 나라에도 남성의 전통의상이 있다. 하지만 대표적인 전통의상은 여성의 옷이다. 단순히 동양의 나라들뿐인가? 중동에서는 ‘히잡’이 대표적인 전통복장이다. 러시아도 몽골도 유럽도 마찬가지다. 다만 스코틀랜드에서만 남성이 치마형태의 전통의상을 입어 그것이 유명해졌을 따름이다. 이렇듯 전통의상만 하더라도 여성 중심이다. 또 유럽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히잡, 차도르, 부르카 모두 여성들의 옷차림이다. 여성차별이라고 지적되고 있음에도 아랍의 여성들이 차도르, 부르카를 더 고집하고 있다.

그것은 동양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도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이 한복을 더 사랑하고 애지중지하고 있고, 일본의 남성보다 여성들이 기모노를 더 사랑하고 있고, 중국의 여성들이 치파오를, 베트남 여성들이 아오자이를 더 사랑하고 애지중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여성들이 자신의 2세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치고, 모국에 대해 알려주려고 애를 쓰고 있다. 미식축구선수 하인즈워드가 아버지의 전통에 대해 기억하는가? 어머니 나라인 한국에 대해 더 열심인가?

이처럼 다문화 사회에서 여성의 존재는 남성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지대하고 높다. 그 이유는 바로 여성이 전통문화를 유지하고 계승 발전시키고, 지속시키는 주체들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어느 사회의 문화와 정체성 문제에서 남성은 손님일 뿐이며, 그 주인공은 여성인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유대인이다. 유대인이 2천년간 유랑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시켜온 비밀 중의 하나가 ‘모계혈통 계승’이라는 것이다. 물론 유대인의 정체성을 유지시켜 온 이유에는 모계혈통 계승만이 아니라, 유대교라는 종교적 정체성도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유대인이 2천년이나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면서 유대인일 수 있었던 것은 종교의 힘이 아니라, 바로 여성의 힘이었다.

하지만 유대인이 처음부터 모계혈통 계승은 아니었다. 시조인 아브라함에서 이삭, 모세로 이어지는 혈연적 계승을 볼 때 유대인은 부계혈통이었다. 그것은 유대인이 유목민족이었고 유목민족은 농경민족보다 남성중심의 부계혈통을 훨씬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런 유대인들이 전 세계를 떠돌면서 자신의 종족(민족)을 유지하기 위해 부계혈통을 버리고 모계혈통으로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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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모습. 유대교와 유대인들의 사회는 남성중심의 가부장사회이나 민족을 유지해온 힘은 부계혈통이 아니라 모계혈통중심주의 덕택이다.
 


만약 유대인이 부계혈통 계승을 유지했다면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민족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유대인의 또 다른 뿌리인 북쪽의 이스라엘인(사마리아인)들만 보아도 자명하다. 혹자는 유대 12지파 중에서 북쪽 이스라엘 10지파에 대해 흔적을 찾고 있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왜냐하면 북쪽의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게 멸망당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예수 당시에는 사마리아인으로 기록되고 있긴 하다).

반면 남쪽의 유다(지금의 유대인 뿌리)는 신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한 뒤, 모두 바빌론으로 끌려가 노예생활을 하였다. 신바빌로니아를 무너뜨린 키루스 2세(고레스 대왕)에 의해 풀려나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오긴 했지만, 다시 로마의 지배를 받다 독립반란이 진압되며 외지로 추방되었다. 이렇게 노예생활과 유랑생활을 반복하면서 부계혈통으로 민족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즉, 수없는 유랑생활과 피정복 노예생활 과정에서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를 아이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이 과정에서 모계혈통 계승과 유대교라는 종교의 역할이 지대했다. 즉 유대인 어머니의 자식은 유대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어머니가 유대인이 아닐 경우(아버지만 유대인일 경우)에는 랍비(유대교 성직자)에 의해 유대교로 개종하고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유대인의 혈통은 백인화되어갔지만 유대인으로서의 전통은 유지가 될 수 있었다.

지금 유대인 1600만 중에서 600만 정도가 이스라엘에 살고 있고, 600만은 미국에 살고 그외에는 전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다. 심지어 동양의 중국에도 유대인이 존재한다. 또한 솔로몬의 후계라고 하는 이디오피아의 유대인들도 존재한다. 극동 시베리아 하바롭스크 옆에는 유대인 자치주도 존재한다. 그렇게 얼굴색도 인종도 다양하지만, 유대교와 전통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유대인이라 부르고 있다.

또 전 세계 인구의 0.25%에 불과하지만 노벨상 수상자의 27%나 차지하는 유대인, 칼 마르크스, 프로이드, 아인슈타인, 록펠러, 로스차일드 가문, 찰리 채플린, 키신저,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 전 세계 유명인들, 미국의 금융 산업과 헐리우드 영화계를 주무르고 있는 것이 유대인들이다. 미국 유대인들의 평균소득은 미국인 평균소득의 2배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다. 결국 유대인이 그 험난한 유랑생활과 박해를 뚫고 지금의 유대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를 통한 모계혈통 계승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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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창원에서 열리는 맘프 이주민 축제의 전통의상 퍼레이드
 

그렇기 때문에 다문화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은 특히 주목되어야 한다. 여성들이야말로 전통 문화의 계승자이며 전달자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경우 결혼이주여성이 전체 국제결혼가정의 70%를 차지하는 만큼, 결혼이주여성의 역할에 대해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간직하는 출신국의 전통이 우리의 전통과 충돌하지 않고 함께 어울리고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들의 2세가 어머니의 출신국과 한국을 이어주는 브릿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결혼이주여성의 역할증대를 고민해야 한다.

인간사회에서 문화는 갈등하면서 공존한다. 갈등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갈등은 극복의 어머니고, 새로운 창조를 위한 산고와 같다. 따라서 다문화 사회를 살면서 ‘일치’ ‘같다’는 것에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오히려 함께 공존하며 갈등하면서 더 크게 결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 다양한 문화적 전통을 간직한 여성들이 자신의 전통을 한국의 전통과 조화롭게 꾸며갈 수 있는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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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지구촌축제의 전통의상 퍼레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