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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속에 담겨진 다문화Ⅱ

기독교와 다문화


글, 사진.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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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마리아 상과 불교의 보살 상이 기묘하게 결합된 경주남산의 할매바위
 


지난 호에서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면서 유교, 도교, 심지어 토속적 샤머니즘과 융합하여 공존하는 다문화 현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번호에는 지난번에 예고했듯이 종교 속의 다문화 2편으로 기독교의 전래와 함께 나타난 다문화 융합현상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불교와 달리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여기는 기독교는 이단과 이신에 대한 배척이 매우 강한 종교로 여간해서는 다문화 융합현상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역사는 유일신인 하나님(야훼, 알라)의 신성을 세우는 과정이고, 그것은 곧 이단과의 투쟁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기독교는 이스라엘 유대인의 민족 종교로 출발했다. 즉 유대민족의 유일신 야훼를 받드는 유대교라는 민족종교가 그 출발점이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사랑’과 ‘구원’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바람을 표현하고, 세계 제국 로마에 의해 공인됨으로써 보편종교가 되었다.

하지만 유일신앙이라는 성격상 이단과의 투쟁은 불가피했고, 끊임없이 반복되어야만 했다. 그것은 이교도와의 투쟁만이 아니었다. 내부적으로도 끊임없이 ‘이단’이 만들어지고 배척되어야만 했다. 그 중심은 ‘신성’에 대한 해석의 문제였다. 즉 하나님(야훼)과 구원의 대상인 인류와의 매개자(마리아, 예수)의 ‘신성’ 문제였다.

이러한 이단 논쟁을 통해 처음으로 배척된 것은 네스토리우스파였다. 이들은 주로 페르시아와 중동지방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던 종파로 이후 동방에 기독교를 전파함으로써 ‘동방기독교(경교)’로 알려진 종파였다. 그리고 다시 동서로마가 분리됨에 따라 천주교와 그리스정교(러시아정교)로 나뉘고, 근대에 들어와서는 종교개혁 논쟁으로 천주교와 기독교의 분화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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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만의 독특한 문화로 심지어 ‘Korean pray’라는 고유명사까지
붙여진 통성기도는 한국의 샤머니즘과 기독교가 결합된 것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이단을 배척해왔던 서양의 기독교 역사와는 달리 동양으로 들어온 기독교는 토속적인 도교나 유교 또는 샤머니즘과 결합하는 양상을 보였다. 처음 동방으로 전파된 기독교는 처음 이단으로 배척된 네스토리우스파였다. 이들은 마리아가 인성과 신성을 함께 갖고있다는 알렉산드리아학파와 달리 마리아의 신성을 부정했다.

이로 인해 양성론을 주장한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의해 파문당한 뒤 아랍과 페르시아, 이집트 지방에서 교세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예수조차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 이슬람교가 확장됨에 따라 점차 아랍에서도 밀려나 페르시아와 중국으로 흘러들어오게 되었다. 이렇게 들어온 것이 동방기독교 또는 경교라고 불렸다.

그렇게 중국으로 흘러들어온 경교는 당나라의 ‘다문화 존중정책’에 따라 당나라 황실로부터 존중을 받았다. 당나라에서는 로마를 대진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경교를 로마의 종교라 하여 ‘대진교’로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당 황실에서는 당 황실의 종교인 도교와 함께 보호하여 당황실의 종교가 되었다. 나라의 600개 현에 대진사(예배당을 사찰로 여겼다)라는 예배당을 세워 예배를 보도록 했다.

이렇듯 동방기독교는 불교와 도교가 혼합된 종교 형태를 띠게 되었다. 즉 성경도 불교 경전의 종류로 취급되었으며, 성직자는 예배당에서 머리를 깎고 목탁을 두드리며 예배를 보았다. 더욱이 당나라 황제의 성인 이씨의 시조 노자가 만든 도교와 결합하여 포교가 진행되었다. 예배당에는 예수의 십자가가 아니라 당나라 역대 황제의 상이 조각되어 예배의 대상이 되었다.

이렇게 당나라화 된 경교는 당의 몰락과 함께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즉 당나라 후기 당 황실의 비호를 받는 경교 예배당은 반란군과 민중들의 주요 공격대상이 되었다. 경교 예배당의 부정부패와 횡포에 대한 저항으로 일어난 ‘황소의 난’ 때 각 현의 경교 예배당이 불태워졌으며 아랍과 페르시아 이 주민들은 집단 학살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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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춘의 발해유적에서 발굴된 십자가 목걸이를 한 불상
 


그렇게 당나라의 몰락으로 중국 중심에서 세력을 잃은 동방기독교는 몽골, 발해, 신라 등지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 들어온 동방기독교는 도교의 색채를 벗고 불교와 융합되는 양상을 보였다.

각종 불교 유적에서 ‘어느 것이 불교’이고 ‘어느 것이 경교’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까지 되었다. 거기에 노장사상을 숭배하는 도교까지 결합되었으니 구한말 유불선 혼합종교나 현대의기독교 이단으로 규정되는 일부 종파와 비슷한 상황이 되었다.

지금도 발해의 사찰 유적에서는 십자가 목걸이를 한 부처의 조각상이 발견되고 있으며, 경주의 사찰 유적지에서는 십자가 문양을 한 기와조각이 발견되고 있다. 심지어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마리아와 불교의 보살상이 결합된 부조상도 존재한다. 이렇게 중국에서 사라진 동방기독교는 주변국의 불교 또는 토속신앙과 결합하여 잔존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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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때 집안에 장식하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시작은 로마의 해충퇴치 풍습과 게르만의 성목숭배 사상이 결합된으 것로 파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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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기독교와 토속 신앙과의 결합과정은 최근에도 나타나고 있다. 즉 기독교에서는 이단으로 취급되나 여전히 기독교적 교리에 바탕을 둔 민족 신앙이 존재한다. 또한 교회 안에서 진행되는 예배나 집회의 문화와 토속 샤머니즘이 깊이 결합되어 있다. 예를 들어 한국교회의 통성기도나 부흥회의 양상은 토속적 샤머니즘과 너무도 닮아있다.

이러한 다문화적 기독교의 모습은 동양에서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이단을 배척해 왔던 서양의 기독교에서도 다문화 융합현상은 불가피하게 일어났다. 대표적인 것이 예수의 탄생일이라고 알려진 크리스마스(12월 25일)와 축제문화이다.

사실 12월 25일은 예수의 탄생일이 아니다. 예수의 탄생일에 대해선 성경 어디에도 기록된 바가 없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그런데도 12월 25일이 예수의 탄생일로 된 것은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12월 24일 일몰부터 25일 일몰까지가 로마의 태양신인 미트라신의 탄생일이기 때문이다.

로마에서 기독교가 공인된 후(기원후 300여년 경)에 미트라신의 탄생일을 예수의 탄생일로 바꾸어 기념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로마에서의 하루는 전날 저녁 일몰부터 다음 날 일몰까지였기 때문에 24일 저녁을 크리스마스 이브로 삼게 되고, 25일 낮을 크리스마스로 삼게 된 것이다.

크리스마스 트리도 마찬가지다. 즉 로마시대에도 상록수를 해충퇴치 수단으로 문 앞에 걸어두었는데(우리나라에서 아기가 태어났을 때 대문 앞에 소나무 가지나 숯을 걸어놓는 것과 같은 풍습) 로마의 이런 풍습과 게르만족의 성목숭배사상이 결합되어 크리스마스 트리가 된 것이다.

즉 불교나 도교 또는 토속신앙과 결합되어 선교되었던 동양의 기독교는 물론 이단과의 투쟁의 역사를 걸어왔던 서양의 기독교조차도 ‘다문화 융합현상’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각 국가별 교회가 따로 있는 그리스 정교나 러시아 정교는 물론 독일의 루터교, 영국의 성공회, 미국의 프로테스탄트 등 각국의 기독교들도 그들만의 문화적 양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