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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속에 담겨진 다문화

불교와 다문화


글, 사진.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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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종교는 지구상에 흩어져 살고 있는 각 종족의 수호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등지에서는 각 지역, 마을, 도시마다 다양한 수호신이 존재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그 신들 중에서 최고신이 생겨나고, 그 외의 신들은 각 영역을 관장하는 하위 신이 되었다. 이집트에서는 태양신이, 수메르에서는 아누와 엘릴, 엔키가, 그리스에서는 제우스가 최고신의 지위를 차지했다.

그 최고의 신도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 수메르에서는 어느 도시가 패권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최고신이 달라졌고, 바빌로니아 시대에 와서는 아누와 엘릴, 엔키는 어디가고 마르둑이 최고신의 위치를 차지했다. 그리스에서도 제우스가 최고신을 차지하기 전에 농경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최고신에 크로노스가 있었다. 로마에서는 태양신 미트라가 최고신이었다.

이러한 지역, 도시, 종족의 신들이 어느 순간에 보편적인 신으로 바뀌었다. 유대민족의 유일신 야훼(야훼는 유럽에서 붙여진 이름이고, 고대 중동에서 불리어진 이름은 알루, 또는 알라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는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러 인류 보편적인 정신세계를 갖추게 되고, 야훼(알라)도 유일신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인도에서 최고신인 브라만의 정신세계는 석가모니에 의해 ‘무아’를 자각하는 보편적 세계관을 갖게 되어 세계종교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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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최고신인 제우스와 여러 신
 

이렇게 세계 보편종교로 탈바꿈된 지역과 민족의 종교와 신은 그 종교가 전파되면서 각 지역과 민족의 토속신앙과 결합하는 종교 융합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중국에 전해진 불교는 대승불교가 되어 중국 전통의 도교와 결합하였으며, 만주와 한반도로 전해지면서 유목민족의 샤먼과 결합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한반도에 존재하는 불교는 중국의 도교와 북방유목민족의 ‘샤먼’이 융합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다른 한편 우리 전통의 샤먼(무속)도 불교적 색채가 가미되어 불교의 정신세계와 무속의 정신세계의 경계가 모호하게 되었다. 지금 불교 제례의식의 하나가 되어 있는 49재는 원래 불교에 있던 제례의식이 아니라, 유교의 제사와 샤먼이 가미된 의식인 셈이다. 또 각 사찰의 칠성각, 삼신각은 어디까지가 불교이고 어디까지가 도교이고 어디까지가 무속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즉 49재는 죽은 영혼이 저승세계의 7대왕의 심판을 받게 되고, 그 심판을 통해 좋은 곳에 가게되면 이승에 있는 가족들에게 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으로 불교의 이론에서는 성립할 수가 없는 것이다. 즉 불교의 기본사상은 ‘무아’이고 영혼조차 없는데, 그 영혼이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49재는 조상신을 모시던 전통의 샤먼이나 유교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당나라의 신라방, 고려시대 절에서 천도재 지낸 기록이 있지만 조선에 들어와서 49재가 유행한 것을 보면 49재가 조상신을 모시는 유교와 샤먼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우리 토속의 샤먼과 유교의 조상신 그리고 불교의 윤회사상이 결합되어 불교적인 색채를 띤 종교의식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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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서 지내는 49재
 

이렇게 비불교적인 것이 불교적인 옷을 입고 정착한 것이 많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사찰마다 대웅전 뒤에 있는 칠성각 또는 삼신각이다. 그곳에는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신선과 함께 산신령이라 취급되는 호랑이 등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는 중국의 도교(신선사상)와 한국의 무속신앙(칠성각, 또는 삼신할미)이 불교 속에 들어앉은 것이다.

또한 염라대왕과 미륵신앙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염라대왕과 미륵신앙에 대해 불교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 기원과 내용에서는 불교와 거리가 멀다. 염라대왕은 인도 힌두교의 최초의 인간인 야마(기독교의 아담 같은 존재)에서 기원한다. 즉 가장 먼저 태어났기에 가장 먼저 죽어 저승세계를 주관하는 자가 되었다. 이것이 중국 도교와 결합되어 인생을 심판하고 저승세계를 관장하는 5번째 왕이 된 것이다.

그것이 통일신라에 전해져 시왕신앙(십왕신앙)이 되고, 고려와 조선조에 와서 죽은 자의 명복을 비는 49재와 연결되게 된 것이다. 지금도 제주도 등의 무속신앙에는 시왕맞이 굿 등이 존재한다. 이런 것을 볼 때, 힌두교에서 출발한 야마가 중국에서 염마가 되고, 인명을 주관하는 10왕신의 하나가 된 뒤 다시 한반도에 전해져 염라대왕으로 굳어진 것이다.

그리고 또 전혀 불교적이지 않으면서 완전한 불교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이 미륵불 신앙이다. 즉 미륵 신앙은 미래를 관장하는 페르시아와 로마의 태양신 미트라가 변형된 것이다. 지금 우리가 크리스마스라고 하여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것도, 예수의 탄생일이 12월 25일이어서가 아니라 로마 태양신 미트라의 탄생일(로마 동짓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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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무속신앙의 시조 설화인 바리데기 공주
 


즉 그 미트라신이 불교로 넘어와 미래를 주관하는 마이트레야신이 되고, 그 마이트레야신이 대승불교로 전해지며 미래 구원의 신 ‘미륵불’이 된 것이다. 즉 미륵부처는 부처 사후 56억 7천년 후에 찾아오는 미래 부처를 의미하는데, 그가 와서 석가모니불이 구제하지 못했던 나머지 중생들도 빠짐없이 구제한다는 사상이 미륵불 사상인 것이다. 즉 ‘무아’에 입각한 깨달음을 기본으로 하는 붓다에서 ‘중생구제’의 대승불교가 되고, 한걸음 더 나아가 미륵신앙이 된 것이다.

이렇게 불교에 다른 종교와 토속신앙이 결합된 예도 있지만, 거꾸로 불교적 이야기가 토속신앙 속으로 스며든 것도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바리데기 공주 설화이다.

불라국 바리데기 공주 이야기는 우리나라 무속신앙의 시조 설화로 여겨지고 있다. 설화에서 바리데기 공주가 아버지 오구대왕의 불치병을 치료하기 위해 동대산의 약수를 떠오는 과정과 이후 바리데기 공주가 저승을 관장하는 신이 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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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각 안에 그려진 벽화(신선과 산신령을 뜻하는 호랑이)
 

이렇듯 불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보편화되면서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토속신앙 속에 들어가 융합적인 토속신앙을 만들기도 했고(무속신의 조상인 바리데기 이야기), 다른 한편으로 불교속에 토속신앙과 각종 신앙이 결부되는 다문화 융합현상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어디까지가 토속신앙이고, 어디까지가 불교인지 경계조차 모호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는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해서 기념하는 날이 음력 4월 초 8일인데(실제 기록은 2월 8일로 되어 있다), 동남아에서는 각 지역의 건기가 끝나고 우기가 시작되는 4~5월 경 물 축제와 결합되어 진행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계절의 여왕인 5월 초(음력 4월 8일)에 기념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동남아의 소승불교와 중국 북쪽의 대승불교와 티벳과 몽골의 라마교뿐 아니라 한국불교와 일본불교의 성격이나 습속이 매우 상이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처럼 불교는 한국에 전해지면서 중국의 도교와 결합되고, 한국의 토속신앙인 샤먼과 결합하고 거기에 유교까지 더해져 그 경계조차 구분하기 쉽지 않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예는 한국에 전해진 동방기독교(경교), 천주교, 기독교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선 다음호에 이어서 계속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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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찰의 대웅전 뒤뜰에 있는 삼신각 또는 삼성각, 칠성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