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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라,

그리고

돌아오지 마라”


영화 <시간의 종말>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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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에게 가장 거룩하고 최상의 영광스러운 행위 순교(殉敎). 이 세상에서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을 것. 죽음으로 가르침을 알리고 증거하고 신념과 믿음을 지키는 행위이기에 ‘순교’라는 단어에는 숭고함이 담겨있다. 종교 박해가 심했던 조선시대 외국에서 파견된 많은 선교사는 낯선 이국땅에서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종교적 신념을 지켜냈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시간의 종말>은 그런 그들의 희생에 음악과 예술로 위로와 찬사를보낸다. 이 영화는 병인박해 15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파리외방전교회 오르간 연주자였던 구노의 ‘아베마리아’가 피아노와 첼론 선율을 타고 흐른다. 그러면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흑백사전이 점점 크게 비춰진다. “떠나라, 그리고 돌아오지 마라.” 이는 파리외방전교회의 모토였다. 선교지로 떠난다는 것은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 이는 곧 인간이 가진 시간의 종말을 의미했다. ‘선생복종(善生福終, 참되게 살다 복되게 마무리한다)’을 실천하기 위해 조선으로 향한 샤스탕 신부를 비롯해 피에르 모방 신부, 엥베르 주교는 조선에 입국한 지 3년 만인 1839년 새남터에서 순교하게 된다. 이후 1866년, 아홉 명의 사제와 8000여 명의 신자의 목숨을 앗아간 병인박해가 일어났다. 새남터에서 시간의 종말을 맞이한 이들의 시신은 수습되지 못하고 그곳에 묻혔다.

<시간의 종말>은 첼리스트이자 트리오 오원의 일원인 양성원 연세대학교 교수의 기획으로 시작됐다. 명동성당에서 공연을 마친 양성원 교수는 고찬근 주임신부로부터 성당에 쓰인 벽돌이 프랑스 순교자들이 묻힌 곳의 흙으로 구워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에 양성원 교수는 프랑스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대현 감독과 헌정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하고 기념 음반 제작에 나서게 된다.

영화 <시간의 종말>은 인터뷰를 포함해 회화, 음악, 퍼포먼스, 상황극 등이 복합된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첼리스트 클래식 뮤지션 그룹 오원의 음악에 기대고 있다. 대표적으로 올리비에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를 메인 테마로 하여 실제로 연주되는 가운데 현재와 과거의 파리와 조선을 오가는 장르로 펼쳐진다. 영화는 파리외방전교회와 명동성당을 배경으로 국내 순교지 곳곳에 이들의 음악을 배치해 놓고 잔잔한 내레이션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음악의 흐름을 타고 김대현 감독이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수많은 신부를 만나 질문한다.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파견된 프랑스 신부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선교를 위해 프랑스 외곽도시로 파견된 한국 신부들이 그 대상이다. 아무 연고도 없는 이역만리 땅을 위해 삶을 바친 이들을 쫓다 보니 영화는 150년 전과 반대로 한국에서 떠나온 사제들과 마주하게 된 것. 영화는 설명한다. “은총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 부흥기였던 프랑스 가톨릭이 ‘68혁명’ 이후 급격히 쇠락하고 그 정신을 잃어갔지만 반대로 그 씨앗을 품은 조선 가톨릭은 현대에 이르러 가장 역동적이며 사회 전반에 자리하게 됐다.

영화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샤스탕 신부는 1826년에 신부가 된 이후 1836년 무렵 조선으로 떠날 것을 스스로 희망했다고 한다. 그가 소속된 파리외방전교회 회칙엔 ‘전통에 따라 선교지역으로의 출발은 돌아온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파란 눈의 젊은 신부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머나먼 조선까지 와서 순교했을까. 신약성서 사복음서 중 마태복음 22장 37절 이하를 보면 이렇게 기록됐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예수의 계명 중 가장 큰 것은 ‘사랑’이었다. 영화 속에서 신부들은 하나같이 이런 고백을 한다. “사랑하기 위해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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