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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밖에 없는 근거

‘부활’


글.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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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 예수의 부활은 그저 신화나 전설 혹은 어떤 종교적 의미로 여겨질 수 있다. 영화 <부활>은 바로 그런 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예수의 부활을 다뤘다. 로마 군인 호민관으로 예수의 처형을 담당했던 클라비우스가 예수의 부활을 두고 속임수를 쓴 이들의 소행이라 여기며 추적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실’들을 색다른 관점으로 풀어낸 영화다. 종교를 믿든지 안 믿든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의 범주 내에서 세상을 판단하는 이들에게 그 ‘편견’이 바로 볼 수 있는 것조차 얼마나 왜곡하고 비틀어서 볼 수 있는지 가르쳐 주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영화는 로마 군인 호민관 클라비우스가 부활을 목격하는 관점에서 내용이 전개된다. 클라비우스는 예수를 믿지도 않고 부활도 모르는 사람. 오로지 그가 믿고 아는 것은 전쟁터에서 배운 것들이고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들이다. <부활>은 믿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 영화를 이끌어 가며 부활의 사건을 2000년 전 사람의 입장에서 생생하고도 실제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빌라도의 오른팔인 클라비우스는 예수의 십자가형을 주도하고 그의 시체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한다. 로마군은 예수의 시체를 훔쳐 간 뒤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헛소문이 있을 거란 생각에 두 병사를 무덤 앞에 세우고 무덤을 완전히 봉인한다. 그런데 예수의 시체는 사라졌고 클라비우스는 예수의 시체를 찾기 위해 온 시체를 다 뒤진다.

클라비우스는 제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가져갔다는 보초들의 증언에 따라 수사에 나서게 된다. 보초를 섰던 군사는 처음에는 제자들이 훔쳐 갔다고 말하고는 제사장들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고 말하는 등 횡설수설한다. 그러나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힌 군사는 실상을 실토한다. 술을 먹고 새벽쯤에 너무나 밝은 빛에 의해 잠이 깼는데 무덤 안에 마치 태양이 떠오르는 것 같았으며 말로 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는데 나사렛 예수가 부활했다는 것이다.

예수의 시체 도난 사건을 수사하던 클라비우스는 증언이 앞뒤가 맞지않는 점과 동굴의 밧줄이 칼에 의해 날카롭게 잘린 것이 아니라 터져버린 것과 7명의 장정이 겨우 옮길 수 있던 무덤을 막고 있던 돌덩이가 날아간 흔적 등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벌어진 현상에 혼란스러워한다. 클라비우스는 이 기이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생포해 사실을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예수가 나타났다는 정보를 듣고 제자들이 모인 곳으로 향한다.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던 예수가 과연 다시 나타날까 하는 의구심과 불안함의 눈초리로 클라비우스는 제자들과 함께 지내게 된다. 예수가 더디 나타나자 제자들은 배가 고파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아 허기를 채우자고 한다. 그러나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 배 위에서 밤을 지새우며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잠에서 깬 제자들을 향해 아직 동이 완전히 트기 전인데도 해변에 거니는 어떤 남자가 고기를 많이 잡았느냐고 묻는다. 베드로는 머리를 흔들면서 못 잡았다고 말한다. 그러자 남자는 그물을 오른편에 던져보라고 한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던 베드로의 눈빛이 갑자기 빛나기 시작한다. 배가 기울어질 만큼 그물에 가득 찬 고기들을 끌어 올렸다. 베드로는 즉각 그 남자가 예수라는 것을 알고 소리쳤고 물 밖으로 뛰어나가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나머지 제자들도 예수를 만나러 물가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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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경을 클라비우스는 배 안에서 놀라움으로 목격하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지만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예수님 하루 동안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에 머물며 식사도 하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날 밤 해변에서 예수와 클라비우스가 대화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치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를 찾아가 대화했던 것과 매칭이 되는 장면이다.

예수가 물었다. “무엇이 두려운가?” 그러자 클라비우스는 “이게 모두 진실인지, 제 모든 걸 걸어도 되는지요”라고 답했다. 예수는 그에게 “그렇다면 그분을 알기 힘쓰라”말하면서 “무엇을 찾느냐? 확신, 평화, 죽음없는 일상?”이라고 묻는다. 클라비우스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고 깊은 생각에 빠진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찬란한 광채와 함께 하늘로 올라가는 예수를 제자들과 이방인 클라비우스는 목격한다. 예수의 승천 후 제자들은 성령을 기다리라는 예수의 명령대로 예루살렘으로 떠나고 클라비우스는 함께 떠나자는 베드로의 권면에 응하지 않는다.

홀로 길을 떠난 클라비우스는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고 호민관 인장을 그 주인에게 음식값으로 준다. 음식점 주인은 “당신은 예수가 부활했다는 것을 믿는가?”란 질문을 던지는데 클라비우스의 대답이 인상적이다.

“확실한 것은, 전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

부활. 다시 사는 것. 이는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를 믿을 수밖에 없는 분명한 증거가 된다.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도 예수의 부활을 보고 진짜 믿음을 얻었다. 부활을 본 제자들은 죽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고 부활을 보기 전과 삶이 같을 수 없었다. 예수의 부활이 모든 가치관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기독교를 부활의 종교라 한다. 예수는 3년 공생애 가운데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부활과 영생이 있음을 목 놓아 외쳤고 그것을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보여줬다. 결국 예수의 부활은 믿는 신앙인들의 부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물어보자. 진짜 부활한 예수를 믿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