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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순교자들의 자취가 남아있는 곳,
솔뫼성지·해미성지를 찾다

오는 8월 14~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1984년과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이후 25년 만의 교황 방문이기도 하고, 파격적 행보와 소탈한 모습으로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에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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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가 많아 산을 이뤘다는 뜻의 '솔뫼성지'는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생가터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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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순교성지 기념관 벽에 조각된 신자들의 모습을 통해 당시 박해 모습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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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성지에 있는 김대건 신부 동상. 
 
 
당진, 서산, 홍성, 예산 등 충남 북서쪽 평야지대인 내포지방은 한국천주교에 있어 각별한 곳이다. 내포(內浦)는 바다가 뭍으로 휘어들어간 부분으로 예로부터 물과 통하는 지역이라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는 창구 역할을 해왔다. 프랑스 사제들은 바닷길을 따라 내포 지역으로 들어왔고 이 지역에 천주교 교리를 널리 퍼트렸다. 신자가 많았던 만큼 박해도 컸던 곳이다.
 
교황청과 한국천주교 주교회의가 밝힌 교황의 공식 방한 목적은 대전교구에서 열리는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참석과 서울대교구가 주관하는 ‘시복식(諡福式; 성인(聖人)의 전 단계인 복자(福子)로 추대하는 천주교 예식)’ 집전이다. 교황은 입국 다음 날인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충남 당진 솔뫼성지를 찾는다. 이어 17일에는 아시아 주교회의 참석을 위해 충남 서산 해미성지를 방문하고 해미읍성에서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 미사를 집전할 예정이다.
 
한국천주교 초기 순교역사가 그대로 남아있는 솔뫼성지·신리성지·해미성지·해미읍성을 미리 찾아가 봤다.
 
 
한국천주교 신앙의 출발점 ‘솔뫼성지’

소나무가 많아 산을 이뤘다는 뜻의 솔뫼성지(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제146호)는 수령이 200~300년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김대건(金大建, 1821~1846) 신부가 태어나 7살이 되던 해 박해를 피해 경기도 용인으로 옮길 때까지 살던 곳이다.
 
이곳은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1814년 해미에서 순교), 작은 할아버지 김종한(본명 김한현, 1816년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 아버지 김제준(1839년 서울 서소문밖에서 순교)등 4대의 순교자가 살았으며, 이 집안에서만 11명의 순교자가 나왔다. 현장서 발굴된 기와조각 등을 토대로 고증을 거쳐 2004년 생가를 복원했다. 이 외 김대건 신부 동상과 기념 성당 및 기념관, 솔뫼 아레나(원형공연장 겸 야외성당), 십자가의 길 등이 있다. 성지 가득한 소나무가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곳으로 순례객과 관광객을 위해 잘 꾸며놓았다.
 
김대건 신부는 16세 때 최양업·최방제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을 갔다. 상하이에서 사제품을 받고 1845년 조선으로 돌아와 선교활동을 하다 1년여 만에 군문(軍門)효수형(목을 베어 군문에 높이 매달아 놓는 형벌)에 처해졌다. 그의 나이 불과 스물다섯 살이었다. 김 신부는 1984년 한국천주교회 200주년에 맞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방한 때 시성(諡聖)됐다. 김 신부의 증조부인 김진후와 작은 할아버지 김종한은 이번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식’에서 시복(諡福)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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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은 수천 명의 천주교 신자들을 박해한 곳으로 유명하다. 넓은 성 한 편에 있는 커다란 회화나무(호야나무)가 눈에 띄는데, 옥사(뒤편 건물)에 수감된 천주교 신자들을 끌어내 이 나무에 매달아 고문하고 죽였다. 천주교에서는 이 나무를 순교목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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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순교성지에서 볼 수 있는 진둠벙의 모습. 당시 개울 한가운데에 있던 둠벙에 죄인들을 꽁꽁 묶어 물속에 빠뜨려 죽이는 수장 방법이 사용됐는데
그것을 표현하고 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기념관의 진윤기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는 “김대건 신부의 세례명 ‘안드레아’는 김종한의 세례명을 따른 것으로, 모범적이었던 작은 할아버지의 신앙의 열성을 본받고자 함이었다”고 설명했다. 진 신부는 “김대건 신부와 그의 가족이 있었던 솔뫼성지는 한국천주교 신앙의 탄생지이자 시작점,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솔뫼성지 근처에는 합덕성당과 신리성지 등이 있어 이들 성지를 걸어서 순례할 수 있는 버그내 순례길이 조성돼 있다.
 
충남지역 천주교의 중심지 내포 공동체는 박해가 있을 때마다 수많은 순교자가 나온 곳이다. 특히 ‘조선의 카타콤바(로마시대 비밀교회)’로 불리는 신리성지(당진신리다블뤼주교유적지, 충청남도기념물 제176호)는 400여 명의 신자들이 신앙공동체인 교우촌을 형성했던 곳으로, 삽교천 수계를 통해 중국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와 긴밀히 연결될 수 있었다. 천주교 서적을 번역하는 등 한국천주교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한 성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가 손자선의 집에서 수년간 거처하던 곳이다.

현재 당진시는 솔뫼성지 성역화사업, 신리성지 정비사업, 버그내 순례길 조성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교황 방문을 계기로 이 일대를 문화 관광지로 조성하고 있다.
 

수많은 무명 순교자가 묻힌 ‘해미성지’

한국천주교의 초기 100년은 실로 박해와 순교의 역사였다. 최초의 박해사건인 신해박해(辛亥迫害, 1791년, 정조 15년)는 이번에 시복되는 윤지충과 권상연이 북경 주교의 가르침을 따라 제사를 폐지하고 조상을 상징하는 위패를 불살라 관헌에 체포돼 사형을 당한 사건이다.

그 후 한국교회 최초의 선교사인 주문모(중국)를 비롯해 이승훈, 정약종 등이 사형된 신유박해(辛酉迫害, 1801년, 순조 1년), 한국인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를 처형한 병오박해(丙午迫害, 1846년, 헌종 12년) 등이 있었고, 가장 오랫동안 전국적으로 지속됐던 병인박해(丙寅迫害, 1866년, 고종 3년) 때는 프랑스 외방전교회 출신 선교사 12명 중 9명이 처형됐다. 이 때 천주교 신자는 대략 8000명에서 1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되는데 그중 대부분은 무명 순교자이다.
 
천주교 박해는 내포 지역이 심했는데 당시 해미현에 군사를 거느린 무관영장이 지역통치를 겸한 막강한 권력을 남용해 중앙의 시책과는 무관하게 박해를 가했다. 충남 서산에 있는 해미성지와 해미읍성은 천주교 박해 역사가 남아 있는 곳이다.

해미순교성지는 특히 생매장 순교지로 유명하다. 당시 내포지역 천주교 신자들은 사약, 몰매질, 교수형, 참수형 등을 당했는데 생매장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개울 한가운데에 있던 둠벙에 죄인들을 꽁꽁 묶어 물속에 빠뜨려 죽이는 수장 방법도 사용됐다. 해미성지에는 발굴된 유해를 전시해놓은 기념관과 진둠벙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시 끌려오던 교인들이 “예수, 마리아”를 외치는 것을 사람들이 ‘여수머리’로 알아들어 ‘여숫골’로 불렀다는 이곳은 당시 충청도 각지에서 끌려온 천주교 신자 1000명 이상이 생매장 당한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중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는 132명에 불과하며,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인 김진후,
인언민, 이보현 등 3명이 이번에 시복된다.
 
근처에 있는 해미읍성(海美邑城, 사적 제116호)은 조선시대에 건축된 성 중에서 보존 상태가 상당히 양호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또한 10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로 처형당한 순교 성지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성 안에는 천주교 신자를 가두고 고문했던 옥사가 남아 있다. 이 감옥터에는 손발을 묶이고 머리채를 묶인 교인들이 매달려 고문대로 쓰이던 호야나무가 지금도 남아 있다.

한국천주교회 중요 성지가 모여 있는 내포 일대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함에 따라 세계에서 많은 순례객이 모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해당 지자체는 관련 시설을 정비하는 등 손님 맞을 준비에 분주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