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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가르침이 품은

천년고찰

비구니 수행도량

봉녕사


글, 사진.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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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의 명산 광교산. 원래 이름은 광악산(光嶽山)이었으나 928년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평정한 뒤 귀경하던 중 이 산의 행궁에 머물면서 산 정상에서 광채가 솟구치는 모습을 보고 ‘광교(빛의 가르침, 光敎)’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영험한 산기슭에 비구니 수행의 요람인 천년고찰 봉녕사(奉寧寺)가 있다.

화엄의 세계가 펼쳐진 경내
산길을 돌아 조금 올라가면 봉녕사의 일주문이 나온다. 일주문에는 세속의 번뇌를 불법(佛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해 가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있다. 번뇌를 끊고 사찰로 들어가는 길로 접어드니 수행 중인 비구니 스님들의 모습이 보여 봉녕사 경내에 들어왔음을 느끼게 한다. 봉녕사의 구심점이 되는 대적광전(大寂光殿)의 안팎은 화엄(華嚴, 광대무 변한 불법을 의미하는 말)의 세계로 아름답다. 내부는 삼신불(三身佛)로 금빛 찬란하다. 화엄경에 등장하는 부처의 비로자나 부처를 주불로 좌우로 보신 노사나불, 화신 석가모니불을 모신 법당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비로자나불은 태양의 빛이 만물을 비추듯 우주의 삼라만상을 비추며 일체를 포괄하는 부처다. 내·외벽에는 80권의 화엄경에 따라 부처가 화엄경을 설파할 때 일곱 곳에서 아홉 차례 모임을 했다는 ‘칠처구회(七處九會)’의 설법장면을 그린 벽화(80화엄변상도)가 그려져 있어 눈길을 끈다. 대적광전 앞뜰에는 800여 년 동안 살아온 향나무가 있다. 현재 보호수로 지정돼 있으며 높이 8 , 둘레 270㎝에 이르는 커다란 크기에서 오랜 역사가 느껴진다. 대적광전 양 옆으로는 작은 법당이 두 채 서있는데 약사보전과 용화각이다. 이 세 법당이 있는 곳이 봉녕사에서 가장 높은 곳이며 옛 봉녕사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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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녕사 향나무
 


어리석은 마음에 배우지 아니하면 교만한 마음만 늘고
어리석은 생각을 닦지 아니하면
아상·인상(내로다, 너로다 하는 상)만 늘게 되네.

닦는 것도 없으면서 뽐내기만 하는 모습은 마치 주린 범과 같고
아는 것도 없으면서 방탕·안일하면 마치 거꾸로 매달린 원숭이 꼴이로다.

-자경문 中

대적광전 옆 ‘청운당(靑雲堂)’은 교육과 수행의 공간이다. ‘청운(靑雲)’은 아주 높은 하늘에 보일듯 말 듯 한 푸른 구름을 뜻하는데 아무런 사심 없는 깨끗한 마음을 지니고 한 가지 목표에 매진하려는 마음을 일컫는다. 청운당 1층은 교수스님들의 연구 및 수행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2층에는 금강율학 승가대학원과 금강율학 연구원이 있다.

봉녕사에는 현대식으로 지은 웅장한 건물 하나가 눈길을 끄는데 학교 도서관인 소요삼장(逍遙三藏)이다. ‘경율론 삼장(불교 전적에 대한 총칭) 속을 노닌다’는 뜻으로 봉녕사 주지를 지낸 묘엄스님이 이름을 지었다. 승가대 학승들이 공부하는 곳인 셈이다. 연건평 200여 평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에 독특하고 아름다운 현대식 건물이다. 그 속에는 불교 관계 서적 2만 권의 장서가 빼곡하다. 100여 명이 동시에 열람할 수 있는 열람석에 원격조정의 대형화면 비디오 등 시청각 교육시설까지 갖췄다. 규모나 시설 내실에서 종합대학 도서관을 능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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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녕사 석조삼존불
 

청운당 뒤편 큰 건물은 육화당(六和堂)이다. 이곳은 일요법회, 템플 등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육화(六和)란 몸(身), 말(口), 뜻(意), 견해(見), 계행(戒)을 같이하여 화합하고 또 이익을 고루 나눔으로써 화합한다는 여섯 가지 승가의 화합 정신을 뜻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여섯 가지 화합 정신인 육화정신(六和精神)이란 육화경행(六和敬行)을 일컫는 것이다. 첫째는 신화동주(身和同住, 몸으로 부처님의 행을 하여 서로 화합), 둘째는 구화무쟁(口和無諍, 입으로 부처님과 같은 말을 하여 서로 화합), 셋째는 의화무위(意和無違, 마음으로 부처님과 같은 생각을 하여 서로 화합), 넷째는 견화동해(見和同解, 바른 견해는 같은 이해로 서로 화합), 다섯째는 계화동준(戒和同遵, 바른 행동으로 서로 화합), 마지막 여섯째는 이화동균(利和同均, 이익은 잘 나눔으로서 서로 화합)한다는 뜻이다.

맞은 편 향하당(香霞堂)은 종무소와 요사채로 쓰인다. ‘향하(香霞)’란 부처의 가르침이 향기와 같이, 노을과 같이 온 우주 법계에 두루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뜻한다. 대중과 신도들이 방안가득, 도량가득, 마음 가득 불법의 향기를 가꾸는 곳이다. 채움은 버림에서부터 오는 것. 모든 것을 버린 후 얻어진 마음속 깊고 깊은 깨달음은 진정 향기가 되어 온 세상에 퍼지리라.

나라와 재물이며 모든 보물과 처자 권속, 국왕 자리 보살이 법을 위해 공경한 마음으로 모든 것 능히 버리고 눈, 귀, 코, 혀, 발, 골수, 혈육을 다 버림은 어렵지 않지만 바른 법 듣는 일이 제일 어렵나니라.

-화엄경 십지품 제3지 게송 中


빛을 가르치는 산속 천년고찰
봉녕사를 품고 있는 광교산은 빛 광, 가르칠 교, 뫼 산 곧 빛을 가르치는 산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산의 이름이 ‘빛의 가르침’ ‘진리’ 등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생각해보면 봉녕사에 승가대학이 있다는 것을 연관 지어볼 수 있다. 대한 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인 봉녕사는 고려 희종 4(1208)년에 원각국사가 창건했다. 이 절에는 100여 명의 학인이 수학하는 비구니 승가대학 뿐 아니라 최초의 비구니 율원(계율 교육 기관)인 금강율원이 있다.

30여 년 전 봉녕사는 지금과는 아주 달랐다. 다 쓰러져가는 작은 법당 몇 채가 전부여서 폐찰 직전에 이르렀다. 오늘의 봉녕사의 모습으로 일군 사람이 봉녕사 승가대 학장을 지낸 묘엄스님이다.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을 지낸 청담스님의 속가(출가하여 승려가 되기 전의 집안)의 딸이며 6·7대 종정이었던 성철스님의 유일한 비구니 제자로 2007년 조계 종단 사상 처음으로 비구니 최고 지위인 명사 법계를 받았다. 이후 많은 후학을 양성하다가 2011년 12월 2일 봉녕사에서 입적했다. 묘엄스님은 쇠퇴했던 봉녕사를 비구니 승가교육의 요람으로 중흥시켰다. 도심 속 자리한 봉녕사는 절이 위치한 광교산의 이름처럼 널리 가르침을 펼쳐 불성(佛性, 부처를 이룰 수 있는 근본 성품)을 연마하고 한국 불교의 초석이 되기 위한 수학, 정진에 여념이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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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녕사 대적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