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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바울의 삶,

부패한 기독교에 울리는 경종

영화 <바울> 리뷰


글.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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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을 손 안에 얹어놓으면
손가락 사이로 물어 다 떨어져서 남지 않습니다.
인간의 삶은 손바닥 위의 바닷물과 같습니다.
크리스천(christian, 기독교인)들은
손 위의 바닷물이 아닌 바다를 보고 삽니다.

- 영화 <바울> 대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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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울>은 신약성서를 가장 많이 기록한 사도 ‘바울’의 노년기를 다루고 있다. 시대적 배경은 67년으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부활한 지 30여 년이 지난 시점이다. 로마 제국의 황제 ‘네로’는 자신의 광기로 일어난 대화재 원인을 기독교인들의 책임으로 그들에게 무차별한 박해를 가한다. 사도 바울은 방화의 주범으로 몰려 옥에 갇히게 된다. 기독교인들이 받는 박해는 처참했다. 살아있는 사람을 불에 태워 로마의 밤거리 가로등으로 쓰는가 하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군인에게 맞아 죽기도 하고 엄마가 보는 앞에서 아이와 남편을 죽이는 등 기독교인들을 향한 로마인들의 학살이 심해져만 간다.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피해 브리길라와 아굴라의 집에서 두려움과 굶주림 속에 숨죽이며 공동체 생활을 한다.

바울의 동역자이자 의사였으며 사복음서 중 <누가복음>을 쓴 누가가 감옥에 있는 바울을 찾아가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누가는 간수를 매수해 박해 속에 희망을 잃어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울의 일생과 그가 얻은 지혜들을 <사도행전>으로 기록하고자 바울이 갇혀 있는 깊은 감옥 속으로 숨어든다. 박해로 고통 받고 있는 로마의 기독교인들은 혼란스러운 상황 가운데서 박해를 피해 로마를 벗어나 도망가야 하는지, 아니면 인내하며 버텨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들은 누가를 바울에게 보내 그의 지침을 얻고자 한다. 바울의 대답은 이러했다.

“내가 우로 가려고 하면 주님께서는 좌로 인도하셨고, 내가 좌로 가려고 하면 주님께서는 우로 인도하셨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주님께서 인도하실 것이네.”

천정에 난 작은 출입구에 비친 햇빛이 전부인 더럽고 습한 지하 감옥에 갇힌 바울. 참수형의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그의 잠을 방해하는 것은 처형이나 두려움이나 고문으로 인한 통증이 아니었다. 젊은 날 그의 이름은 사울이었고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을 박해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사도행전> 7장에 등장한 돌을 맞아 죽은 스데반 앞에도 사울은 있었다. 그가 죽인 사람들이 처형을 앞둔 그의 꿈속에 자꾸만 찾아온다.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바울은 유대인이지만 로마 시민권자였으며 유복한 환경에서 독실한 율법학자로서 소양을 쌓았다. 예루살렘 유학길에 오른 청년 사울은 충격에 휩싸인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예수를 통하지 않고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주장에 독실한 유대교인 사울은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강도 높은 탄압에 나선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향하던 중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라는 음성을 듣고 강렬한 빛에 눈이 멀어 말에서 떨어지고 만다. 사흘 후 눈을 뜬 그의 인생은 예수를 위한 삶으로 180도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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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의 무기력한 죽음이 계속되자 일부 과격한 신도들이 바울을 탈옥시키려 하다가 교도소장의 노여움을 샀고 누가마저 감옥에 갇혀 아침이면 콜로세움으로 끌려가 사자 밥이 될 운명에 처한다. 로마 교도소장 모리셔스 갈라스는 바울에 대한 호기심으로 뒷조사를 하지만 바울의 죄를 찾을 수가 없어 괴로워한다. 모리셔스에게는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어가는 딸이 있었다. 누구도 고칠 수 없는 병의 소식을 들은 바울이 누가가 그 병을 고칠 수 있는 적임자라 한 말이 생각나 누가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누가의 치료로 딸이 낫게 되자 모리셔스는 바울이 섬기는 신에 신뢰를 보이기 시작한다. 바울에게 딸과 아내가 감사의 뜻을 전한다는 모리셔스의 말을 들은 바울은 느닷없이 한마디를 건넨다.

“진리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아셨기를 바랍니다”라고. 바울은 배를 타 봤냐고 물으며 말을 이어간다. “거대한 바다를 바라본다고 생각해 보시오. 팔을 뻗어 물을 한 줌 쥐어 올린다면 올리는 순간부터 즉시 흘러가 빈손이 되겠지요. 그 물이 사람의 인생입니다. 태어나서 죽기까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없어지고 마는 것이죠. 세상에 아끼는 것들도 모두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목숨을 바치려 하는 이유는 그 왕국은, 나머지 전체의 바다와 같습니다. 사람들은 단지 그 흐르는 물 그 한 줌을 위해 살지만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은 나머지 광활한 바다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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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기복신앙이다. 그 ‘복’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땅의 복 아닌 ‘구원’이라는 하늘의 복이다. 구약성서 <시편> 133편 3절에는 죽음과 사망의 고통 속에 있는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리고 있고 그것이 곧 기독교에서 말하는 참된 복이자 구원이 되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2천 년 전 예수는 십자가에 자신의 목숨을 내던졌고 부활함으로써 인류에게 그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몸소 보여줬다. 그것은 곧 ‘사랑’으로 연결된다. 인류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준 사랑. 그 진정한 사랑을 깨달은 자 어찌 누구를 미워할 수 있으랴. 그래서 예수는 “원수도 사랑하라”했다.

바울은 그 사랑을 깨달았다. 영화 속 바울이 로마의 무자비한 폭력에도 사랑으로 맞서라며 감옥에서 갇혀 매를 맞고서 읊조리는 한마디 한마디가 <고린도전서> 13장이 되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중략)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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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바울은 처형당하기 직전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는 신앙 고백은 큰 울림을 준다. 목숨을 씨앗으로 바친 바울과 같은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있었기에 기독교는 뿌리내릴 수 있었고, 바울과 같이 목숨을 바친 사도들의 정신을 담은 누가의 기록은 2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살아있어 가르침을 주고 있다. 또 이들의 순교한 삶은 신도들의 머릿수를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해 교회를 몽땅 팔고 사고 목회자들의 성범죄 소식은 끊이질 않고 한국 개신교를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은 돈 선거로 회장을 뽑아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부패한 오늘날의 기독교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