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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의 명화

<최후의 만찬>에

그려진 요리는

생선이었다?


글. 신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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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nna - Mosaic of Last supper of Jesus by Giacomo Raffaelli from year 1816 as copy of Leonardo da Vinci work on January 15. 2013 in
 VIe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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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는 31세 때 밀라노 공국의 궁전 전속 화가이자 토목건축 및 군사 문제의 기술고문에 임명되었다. 다빈치가 밀라노에 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성 프란체스코 성당의 제단화를 그리는 것이었다. 그는 3년에 걸친 작업으로 <암굴의 성모>를 완성했다.

또한 12년을 바쳐 진행한 것이 프란체스코 기마상이다. 프란체스코 스포르차는 밀라노 공국을 다스리는 로도비코 스포르차 공작의 아버지였다. 로도비코 공작은 아버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다빈치에게 프란체스코 기마상 제작을 의뢰했다. 높이가 5미터에 이르는 이 기마상은 말의 점토 원형을 만들기는 했지만, 주조형 금속이 대포를 만드는 데 사용되어 그 작업이 끝내 중단되고 말았다. 밀라노 시절, 다빈치의 가장 큰 업적이라면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식당의 벽화를 그린 일이다. 이 벽화가 다빈치의 대표작인 <최후의 만찬>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날, 열두 제자와 한자리에 둘러앉아 마지막 식사를 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예수는 이 식사 자리에서 갑자기 제자들에게 충격적인 예언을 한다.

“너희들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신할 것이다.”

제자들은 깜짝 놀라며 경악과 의심과 분노에 젖은 얼굴로 술렁이기 시작한다. <최후의 만찬>은 이 장면을 포착하여 실감나게 표현한 불후의 걸작이다. 이 그림은 완성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림의 안료가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최후의 만찬>은 전통적인 프레스코 기법(벽에 회반죽을 바르고,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안료를 사용하여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기법)이 아니라 템페라 기법(달걀노른자로 안료를 녹여 그리는 기법)으로 그렸다. 템페라 기법으로 벽화를 그리면 안료가 떨어져 나가기 쉬운데, 이를 꼼꼼히 따져 보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그 뒤 <최후의 만찬>은 식당에 습기가 차서 곰팡이가 생기는 등 심하게 손상되었다. 보다 못해 곰팡이를 걷어내고 그림에 덧칠을 하는 복원 작업을 몇 차례 했다. 하지만 그 작업은 오히려 원형을 더욱 훼손시켜 원작을 망치는 결과를 가져왔다. <최후의 만찬>은 현대에 와서 마지막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다.

적외선을 사용한 과학적인 방법으로 다빈치의 원본만 남기고 모든 덧칠을 지우는 작업이었다. 하루에 동전 하나 크기만큼 복원되는 아주 신중한 작업이었다. 1999년 <최후의 만찬>은 22년의 작업 끝에 다시 태어났다.

이전에는 그림의 훼손이 심해 만찬 식탁에 오른 음식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복원 작업을 통해 이 그림에 그려진 요리가 생선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예수가 열두 제자와 함께한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 만찬이었다. 유월절은 유대인들이 애굽(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탈출해 자유를 얻은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날이 되면 유대인들은 어린양을 잡아 불에 구운 뒤 수프를 만들어 먹었다. 누룩 없는 떡, 쓴 나물과 함께 말이다. 그렇다면 예수는 유월절 만찬인 최후의 만찬에서 주요리인 양고기를 제자들과 함께 먹었을 텐데, 왜 다빈치는 양고기 대신 생선 요리를 그렸을까? 그 이유는 생선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에서 기독교가 박해를 받던 시절에 생선은 예수를 가리키는 암호였다. 그리스말로 물고기는 ‘익투스’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세주이고 하느님의 아들’의 머리글자를 따서 모으면 이 단어가 된다. 그래서 기독교 초대 교회 신자들은 은신처인 지하 공동묘지 카타콤베 벽에 물고기 그림을 그려 서로 신분 확인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물고기(생선)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에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 그림에 양고기보다 생선을 그려 넣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희생양으로 하느님께 바쳤으니 말이다.

 

 
“지금도 갈릴리 호수에서 잡히는 물고기를
‘베드로 물고기’라고 부른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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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는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갈릴리 호수에서 어부로 일하다가 예수를 만나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말을 듣고 사도가 되었다. 지금도 베드로의 고향인 갈릴리 호수에서는 이곳에서 잡히는 물고기를 ‘베드로 물고기’라고 부른다. 이 물고기는 음식점에서
정식 메뉴에 올라 관광객들이 시켜 먹는 명물 요리가 되었다.

갈릴리 호수에는 18종의 물고기가 잡히는데 ‘베드로 물고기’라 불리는 물고기는 틸라피아다. 베드로가 예수와 함께 갈릴리 호수 가버나움에서 성전세 납부를 강요당했을 때, 베드로가 예수의 명령으로 낚시를 던져 잡은 물고기의 입에서 은화 한 개가 나왔다. 그 은화로 성전세를 냈는데, 은화가 나온 물고기가 틸라피아라는 것이다. 이 물고기의 몸에는 동전 모양의 무늬가 있다. 따라서 틸라피아는 베드로가 잡아 은화를 얻은 물고기라고 ‘베드로 물고기’라는 이름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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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 Henri II of France mortally wounded, 마상 창시합 중 왼쪽 눈을 찔린 앙리 2세의 모습을 그렸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노스트라다무스의 동물 예언


노스트라다무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언가다. 그는 1547년부터 예언을 시작했는데, 1555년 운문으로 이루어진 예언집 <세기>를 펴내어 명성을 얻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이 책에서 “싸움터에서 단 한 번의 싸움으로 젊은 사자가 늙은 사자를 쓰러뜨리리라. 황금 우리 안에서 일격에 눈을 찌르니 두 군데의 상처가 하나 되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리라.”고 예언했다.

이 예언에 나오는 ‘늙은 사자’는 프랑스 국왕 앙리 2세였고, ‘젊은 사자’는 스코틀랜드 근위대장 몽고메리 백작이었다. 앙리 2세는 당시 기사들이 벌였던 ‘마상 창 시합’을 좋아했다. 기사들은 전쟁이 없는 평화 시에는 ‘마상 창 시합’을 했는데, 얼마나 치열하게 싸우는지 전쟁과 다름없었다. 수많은 기사들이 이 시합으로 목숨을 잃었다.

1559년 에스파냐 국왕 필립 2세와 딸 엘리자베스의 결혼식 때 파리의 생 탕투안 거리에서 마상창 시합이 열렸다. 앙리 2세는 이 시합에 직접 참가했다. 마상 창 시합은 토너먼트 경기였다. 앙리 2세는 느무르 공과 기즈 공을 차례로 물리친 뒤 결승전에서 몽고메리 백작과 맞섰다. 이때 그는 투구가 제대로 닫히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를 벌였다. 그러다가 그만 몽고메리 백작의 창에 왼쪽 눈을 찔렸다. 앙리 2세는 일주일을 앓다 세상을 뜨고 말았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젊은 시절에도 뛰어난 예언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다가 펠리체 뻬레띠라는 수도승과 길에서 마주쳤다. 노스트라다무스는 갑자기 수도승 앞에 무릎을 꿇더니 이렇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오, 교황님! 정식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이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1585년 펠리체 뻬레띠가 교황이 되었던 것이다. 그가 바로 교황 식스투스 5세다. 한번은 노스트라다무스가 드 플로랭빌이란 귀족의 저택에 초대를 받아 갔다. 드 플로랭빌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능력을 시험해 보려고 노스트라다무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에서 돼지 두 마리를 기르는데, 그놈들이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 한번 맞혀 보시오.”

노스트라다무스가 입을 열었다.

“검은 돼지는 우리가 먹을 것이고, 하얀 돼지는 늑대가 먹을 것입니다.”

드 플로랭빌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틀리게 하려고 요리사를 따로 불러 이렇게 지시했다.

“너는 저녁 식사 때 하얀 돼지를 잡아 그 요리를 식탁에 올려라.”

요리사는 귀족이 시키는 대로 하얀 돼지를 잡아 요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요리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나 그 요리를 먹어치웠다. 요리사는 할 수 없이 검은 돼지를 잡아 그 요리를 식탁에 올렸다. 드 플로랭빌과 노스트라다무스가 식사를 마쳤을 때 요리사가 귀족에게 진실을 밝혔다. 드 플로랭빌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적중한 것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이 동물 예언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 밖에도 그는 자신의 죽음을 비롯하여 18세기의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의 등장, 20세기의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예언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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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ardo's sketches and drawings: Virgin of the Rocks, 암굴의 성모

 


“르네상스 시대에 또 어떤 유명한 예언가가 있었나요?”


르네상스 시대에 뛰어난 예언 능력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예언가로 프랑스의 노스트라다무스와 함께 영국의 로버트 닉슨과 마더 십턴이 있다.

로버트 닉슨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평범한 농부였다. 이따금 밭을 갈다가 과장된 몸짓으로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 버릇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모두들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여겼다. 1485년의 어느 날, 닉슨은 밭을 갈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쟁기를 멈추더니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며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오, 딕! 불행한 일을 당했구나. 오, 해리! 행운을 잡았구나. 드디어 해리가 최후의 승자가 되었어.”

밭에 있던 사람들은 닉슨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이튿날이 되어서야 그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딕은 영국 국왕 리처드 3세의 애칭이고, 해리는 헨리 7세의 애칭이다. 닉슨이 소리쳤을 때 리처드 3세가 전쟁터에서 죽고, 그 뒤를 이어 헨리 7세가 왕이 되었던 것이다. 닉슨은 이런 예언으로 예언가로서 큰 명성을 얻었다. 그 뒤 영국 왕은 닉슨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를 궁전으로 불러들이라고 명했다. 하지만 닉슨은 궁전에서 사자가 오기도 전에 자신이 왕에게 불려갈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궁전으로 가면 나는 굶어 죽을 텐데.”


닉슨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풀이 죽은 얼굴로 사자를 따라 갔다. 왕은 닉슨이 정말 예언 능력이 뛰어난지 궁금했다. 그래서 닉슨이 오기 전에 다이아몬드를 궁전에 감춘 뒤, 잃어버린 다이아몬드를 찾게 해 달라고 청했다. 이 때 닉슨은 영국의 속담을 입에 올렸다.

“숨긴 사람이 찾을 수 있다.”

왕은 깜짝 놀랐다. 그제야 비로소 닉슨의 예언 능력이 뛰어남을 인정했다. 닉슨은 자신이 궁전에 머물면 굶어 죽는다며 집으로 보내 달라고 왕에게 여러 번 청했다. 그러나 왕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궁전 관리에게 명하여 닉슨의 식사를 꼭 챙겨 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어느 날 왕은 지방으로 사냥을 떠났다. 그러자 궁전의 시종들은 닉슨이 왕에게 특별대우 받는것을 시기하여 그를 구박하고 모욕을 주었다. 닉슨은 궁전 관리에게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했는데, 궁전 관리는 그를 보호하려고 궁전의 구석방에 숨겨 주었다. 그리고 끼니때가 되면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얼마 뒤, 왕이 사람을 보내 궁전 관리를 급히 사냥터로 불렀다. 그 바람에 닉슨에게 끼니를 챙겨 주지 못했는데, 사흘 뒤에 돌아와 보니 닉슨이 굶어 죽어 있었다.

마더 십턴은 스코틀랜드 여왕을 지냈던 메리의 처형, 제임스 1세의 즉위 등을 예언하여 유명해진 여자 예언가다. 그는 일찍이 1666년의 ‘런던 대화재’를 예언했는데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져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런던 대화재’ 때는 마더 십턴이 “런던이 잿더미로 변한다.”고 예언했다며 런던 시민들이 불을 끄려고 하지 않아 정부 당국이 아주 애를 먹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