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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세계,

영화로 말하다


글. 백은영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종교성이 강한 민족으로 불렸다. 이는 자연스레 선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과 ‘인과응보’의 세계관을 형성했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가치관을 심어 줬다. 동냥하는 사람이 “한 푼만 적선하십쇼~”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심리를 이용한 말이지만 동시에 고마운 말이기도 하다. 적선(積善)이란 말 그대로 선을 쌓는 것이니 “적선하십쇼~”라는 말은 “내게 돈 한 푼 주고 그대는 내세에 받을 복을 적립하시오”라는 말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 얼마나 ‘기똥찬’말인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떠한 힘에 의해 인생의 생사화복이 좌우되고, 누군가가 우리의 삶에 관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인간의 행동에 제약을 가져오기도 한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내세 혹은 신(神)에 대한 공포와 경외심 등이 얽힌 복잡한 감정에 기인하는 행동일 것이다. 물론 신은 없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자들에겐 먼 나라 얘기 같겠지만 말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은 문학작품이나 그림 등 여러 형태로 재탄생 했고, 가깝게는 권선징악의 대표적인 형태인 전래동화나 민담 등을 통해 민간에 전해져 내려왔다. 우리 안에 내재된 내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면서 그 모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여전히 ‘권선징악’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TV 브라운관이나 여러 인터넷 매체에 올라온 웹툰의 경우 ‘내세’나 보이지 않는 존재인 ‘도깨비’ ‘저승사자’ 등을 등장시켜 아주 오래된 담론인 신의 존재 유무에 대한 열띤 토론회장을 만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유독 최근 몇 년 사이 유사한 콘셉트의 이야기들이 유행하게 되었는가. 가깝게는 시끄러웠던 국내 정세도 한몫했겠지만, 전 세계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분쟁과 전쟁, 테러의 위협 등으로 하루에도 수 천, 수만명의 생명이 손 쓸 새도 없이 꺼져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어느 죽음인들 안타깝지 않겠는가마는 너무도 덧없이 허망하게 죽어가는 생명들을 보며, 적어도 내세가 있다면 그들의 억울한 죽음을 보상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그리고 힘 없고 빽(back)도 없지만 법 없이도 살만한 착하고 선한 사람들이 복을 받는 그런 세상이 있기를 바라는 염원의 발로가 아닐까 한다. 일종의 ‘보상심리’일 수도 있는 문화현상. 여기 그 ‘보상심리’를 달래줄 몇 개의 작품을 소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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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
지난 1월 23일 기준 관객수 1362만 4690명을 기록해 역대 박스오피스 3위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감독 김용화)>는 주호민 작가의 인기 웹툰 <신과 함께>가 원작이다. 개봉 당시 웹툰과는 다른 설정으로 호불호가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많은 호평을 받은 영화다. 일각에서는 너무 ‘신파’로 빠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관객은 바보가 아니다. 일부러 눈물을 쥐어짠다고 해서 눈물 한 방울 안 흘릴 사람이 눈물을 질질 흘리진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 신파라는 것이 인간된 도리에서 ‘내가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따끔한 일침과 같은 것이기에 찔림이 있으면 울 것이요, 아니면 너그럽게 넘어가주는 아량 정도는 베풀었으면 하는 정도다.

영화 <신과 함께>는 화재 사고 현장에서 여자 아이를 구하고 죽음을 맞이한 소방관 김자홍이 사후 49일 동안 7개의 지옥에서 7번의 재판을 받는 과정을 그렸다. 주인공 자홍이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의 7개 지옥에 설 때마다, 과연 나는 몇 번째 지옥에서 그만 ‘팽’ 당하고 말 것인가를 자연스럽게 생각해보게 되는 영화다.

“김자홍 씨께선, 오늘 예정대로 무사히 사망하셨습니다.” 자신의 죽음이 아직 믿기지도 않는 자홍 앞에 나타난 저승차사 해원맥과 덕춘. 게다가 자신을 보며 ‘정의로운 망자이자 귀인’이라며 치켜세우기까지 하니 얼떨떨할 따름이다. 여차저차 저승으로 가는 입구 초군문에서 자홍을 기다리는 또 한 명의 저승차사 강림. 차사들의 리더이자 앞으로 자홍이 겪어야 할 7개의 재판에서 변호를 맡을 변호사기이도 하다. 삼차사 앞에 나타난 48번째 귀인인 자홍을 그들은 과연 무사히 인간으로 환생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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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애니메이션 <코코>
픽사의 신작 애니메이션 <코코>는 뮤지션을 꿈꾸는 소년 미구엘이 전설적인 가수 ‘에르네스토 델라 크루즈’의 기타에 손을 댔다 ‘죽은 자들의 세상’에 들어가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뮤지션을 꿈꾸지만 사실 미구엘 집안에는 ‘음악 금지령’이 내려져 있다. 뮤지션이 되겠다며 가족을 등지고 떠난 외고조부 때문이다. 음악경연대회에 나가고 싶지만 기타가 없던 미구엘이 에르네스토의 기타를 훔치려고 손을 대는 순간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데 다름 아닌 ‘죽은 자들의 세계’다. 그곳에서 미구엘은 뜻밖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서로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한 의기투합이 시작된다.

물론 이 영화 또한 애니메이션이 갖는 ‘권선징악’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더불어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도 함께 던져 가족이 함께 보기에 좋은 영화로 손색이 없다.


#3 혼혈 천사와 혼혈 악마의 싸움 <콘스탄틴>
키아누 리브스 주연,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의 2005년 작 <콘스탄틴>은 인간의 형상을 한 혼혈 천사와 혼혈 악마가 존재하는 세상을 그린 영화다. 태어날 때부터 그들을 구분하는 능력을 타고난 존 콘스탄틴은 자신의 능력을 저주하지만 그 능력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천국과 지옥의 경계를 넘나들며 세상에 존재하는 악을 지옥으로 돌려보낸다. 세상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해야 지옥으로 가게 되어 있는 자신의 운명이 뒤바뀌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선악의 균형이 깨져가고 있는 세상에서 악의 세력이 점령한 이 어둠의 세계를 구원하기 위한 한 남자의 외
롭고도 처절한 절규가 맘 한구석을 짠하게 만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인 천사와 악마의 형상을 인간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부분과 조금은 과하다 싶은 컴퓨터 그래픽이 외려 영화의 몰입도를 더하는 역할을 한다.

영화에 커다란 반전이 있는데, 이는 기독교의 관점을 뒤엎는다. 성경과는 정반대의 내용이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드는데 그 반전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