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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편견과 문화 사이

그 어디쯤


글. 이지수



아랍에미리트의 구도심. 히잡을 쓴 여성이 문 앞에서 주변을 살핀 후 조깅을 시작한다. 이어 등장한 또 다른 여성. 무슬림 전통 의상을 휘날리며 스케이트보드를 즐긴다. 그녀도 히잡을 썼다. 이들을 응시하는 주변 사람들의 표정은 무언가 못마땅하다. 하지만 두 여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스포츠를 즐긴다. 올해 초 방영된 성공한 아랍 여성 운동선수들이 등장하는 스포츠 브랜드 광고 내용이다.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요?” 광고 영상 첫머리에 등장하는 질문이다. 이는 아랍의 젊은 여성들이 전통과 문화적 규범에서 벗어날 때 듣는 수사적 질문이기도 하다. 무슬림 여성이 머리에 쓰는 베일(veil)은 해묵은 논쟁의 소재지만 항상 뜨거운 관심을 끈다. 무슬림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보는 편견과 다른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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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핀즈버리 파크에서 테러 반대 시위하는 시민들과 테러 희생자 추모객 (뉴시스)
 



이슬람 포비아 확산
“직장 안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다.” 올해 3월 유럽연합 최고법원인 사법재판소의 판결이다. 사법재판소는 고용주의 재량에 따라 근로자의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것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발단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벨기에의 한 회사에 근무하는 이슬람 여성 사미라 아크비타는 근무 시간에 히잡을 쓰겠다고 회사에 알렸지만 회사는 불허했다. 이에 불복한 아크비타는 계속 히잡을 썼고 2개월 뒤 해고되자 무효소송을 냈다. 사건이 커지자 벨기에 법원은 유럽 사법재판소에 법률 해석을 의뢰했고 사법재판소는 위와 같은 판결을 내렸다. 이를 두고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고 문화의 상대성을 인정하지 않은 결과라며 비난 여론이 일었다.

무슬림 여성의 베일 논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4년 프랑스에서는 학교 내에서 학생들의 히잡 착용을 법적으로 금지했다. 무슬림 여성이 착용하는 베일은 히잡, 부르카, 니캅, 차도르 등이 있는데 특히 눈을 포함한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는 유럽의 많은 나라가 공공장소에서 착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가장 빠른 나라는 프랑스였다. 2011년 4월부터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것을 법으로 규제했다. 벨기에도 같은 해 6월부터 전신을 가리는 베일 착용을 금지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토마스 데메지에르 내무부 장관이 일부 공공장소에서 무슬림 여성의 베일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안한 상태다. 이탈리아, 스페인, 스위스 등에서도 지역에 따라 금지하고 있다.

이러한 거부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최근 유럽 등지에서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의한 테러가 ‘이슬람 포비아(이슬람 공포증)’를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6월 벨기에 수도 브뤼셀의 중앙역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폭탄이 터진 후 테러범은 무장군인이 쏜 총에 맞아 사살됐다. 당시 테러범은 폭발을 일으키며 이슬람어로 ‘신은 위대하다’는 뜻의 ‘알라 후 아크바르’를 외쳤다. 앞서 브뤼셀에서는 지난해 3월 공항과 지하철역에서 IS의 연쇄 테러 공격을 받아 32명이 사망하고 340명이 부상을 당했다. 같은 해 7월 프랑스 니스에서는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 축제 도중 트럭이 돌진해 84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다쳤다.

영국에서는 이미 올해 들어 세 차례나 테러 공격이 있었다. 이들 사건은 모두 극단주의 무장단체 IS가 그 배후를 자처했다. 3월 런던 웨스트민스터 다리 테러를 시작으로 5월 맨체스터 아레나 자살폭탄 테러, 6월 런던 브리지 테러 등으로 총 35명이 숨졌다. 2015년부터 최근까지 유럽에서 발생한 IS 테러 희생자는 370명이 넘고 부상자는 1500여 명이나 된다.

베일 썼다는 이유만으로
히잡은 반(反)무슬림 정서의 표적이 되고 있다. 지난 6월 영국에서는 한 남성이 무슬림 여직원에게 “검은색 히잡이 테러리스트 소속인 것처럼 보이니 바꿔라”라고 요구해 고소를 당했다. 사표를 제출한 무슬림 여성은 “그들이 히잡을 바꾸라고 한 이유가 충격적”이라며 “사무실의 유일한 무슬림 여성으로 적대적인 환경에서 불법적인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7월 레스토랑 주인이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들을 향해 “테러리스트”라고 말하며 서빙을 거부하고 쫓아낸 일도 있었다. 그해 5월 미국에서는 한 남성이 무슬림 여성의 히잡을 강제로 벗겨 종교적 자유를 침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사례가 있다. 이 남성은 여객기 안에서 자신의 앞자리에 앉은 무슬림 여성에게 다가가 “여기는 미국”이라며 히잡을 강제로 벗겼다.

이와 비슷한 일은 한국에서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KBS 2TV <안녕하세요>에서는 한국인들의 편견과 차별 때문에 상처받은 무슬림 여성 홍하나(32)씨의 사연이 공개됐다. 한국 드라마가 좋아 우즈베키스탄에서 귀화한 홍씨는 자신이 쓰고 다니는 히잡 때문에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며 고민을 털어놨다. 홍씨는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가 테러리스트로 오해받아 가방 검사까지 받는 최악의 상황을 겪었다. 또 마트에서 한 중년 여성이 자신의 히잡을 뒤에서 잡아 끌어당긴 일도 있었다고.

최근에는 무슬림들이 테러의 희생자가 되기도 한다. 지난 6월 한 백인 남성이 영국 런던 핀즈버리 모스크(이슬람 사원) 앞 도로에서 행인들을 향해 차량을 돌진했다. 이 사건으로 사원에서 기도를 마치고 나오던 무슬림 1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이 남성은 최근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의 테러가 반복되고 있는 데 불만을 품고 이슬람 집회를 표적으로 범행을 꾸민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범행을 저지른 뒤 “무슬림들을 다 죽이겠다”고 소리 지르다 경찰에 체포됐다. 올해 초 캐나다 퀘벡에서도 한 대학생이 이슬람 사원에서 예배 중이던 신도들에게 총기를 난사해 6명이 숨지고 19명이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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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퀘벡 이슬람 사원 총기난사 테러범인 알렉상드르 비소네트(뉴시스), 코란
 



히잡 대신 편견을 벗다
무슬림 여성들이 히잡을 쓰는 이유를 이슬람 경전 <코란>에서 찾을 수 있다. 히잡의 근거가 되는 구절은 33:59이다. “예언자여, 그대의 아내들과 딸들과 믿는 여성들에게 베일을 쓰라고 이르라. 그때는 외출할 때라 그렇게 함이 가장 편리한 것으로 그렇게 알려져 간음 되지 않도록 함이라. 실로 하나님은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심이라.” 이슬람 문화권 밖의 사람이라면 히잡을 ‘가린다’의 개념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무슬림 여성들에게 히잡은 종교적 신념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기에 종교와 문화적 의미가 크다.

이러한 논쟁 속에서도 작은 변화는 있다. 세계 여러 나라 국가의 경찰과 군인이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복장 규정을 바꾸고 있는 것.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서는 여성 경찰관에게 히잡을 쓸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5월 18일 피에테르-얍 알베르스베르그 암스테르담 경찰청장은 여성 경찰관에게 히잡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양한 문화가 있는 도시에서 더 다문화적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취지다.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도 무슬림 여성 경찰에 대해 히잡 착용을 허용하고 있다. 미국의 한 군사대학에서도 지난해 10월 한 여성 생도에게 군복에 히잡을 쓸 수 있게 전격 허용했다. 터키도 지난해 경찰들의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규정을 철폐했다. 유럽의 많은 나라가 공공장소에서의 베일 착용을 엄격히 금지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변화는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시나브로’란 말이 있다. 순우리말로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이란 뜻이다. 무언가를 이루는 큰 터닝포인트는 작은 변화에서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편견이라는 빗장이 조금씩 열려 그 속에 진짜 모습을 보게 되면 분쟁은 끝나고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하나를 이루는 평화로운 ‘공존’이 실현되리라 기대해본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 논쟁인 히잡은 편견과 문화 사이 어디쯤 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