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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교의 씨


글. 김일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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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두봉’ 위에 세워진 천주교순교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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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대받은 사람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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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림동 약현성당
 



영화 <초대받은 사람들>은 1981년 천주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150주년을 기념하여 카톨릭 신자인 최하원 감독이 만든 영화로, 조선 말엽 일어난 ‘신유박해’ 사건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1801년(순조 1) 신유년에 일어난 천주교도 박해 사건이라 하여 신유박해다. 이보다 10년 앞선 1791년(정조 15) 최초의 천주교 박해사건이 있었다. 바로 ‘신해박해’다. 당시 정조는 “사교(邪敎)는 자기자멸 할 것이며 유학의 진흥에 의해 사학을 막을 수 있다”면서 천주교에 대해 적극적인 박해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조가 죽고 1801년 순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어린 순조를 대신해 정사를 맡은 정순대비는 남인과 천주교를 묵인하자는 입장이었던 신서파를 몰아내고, 천주교도에 대한 탄압을 강화했다. 결국 이승훈과 남인에 속하는 권철신, 홍낙민, 이가환, 정약종 등 천주교도 수백 명이 처형되거나 귀양을 갔으며 중국인 신부 주문모 등도 참형을 당했다. 또 이 사실을 북경에 와 있던 주교에게 보고하려던 황사영도 참살 당했다.

초대받은 사람들
‘1780년대 주자학(성리학)이 중심이 되던 시대에 젊은 선각자들은 새롭고 진취적인 학문을 갈구하게 된다. 이른바 실학이다. 이는 조선 땅을 향한 천주의 깊은 뜻이었다’는 설명과 함께 영화는 시작된다. 한국인 최초로 중국에서 영세를 받고 돌아온 이승훈. 그의 세례명은 ‘베드로’였다. ‘조선 교회의 반석이 돼라’는 의미로 받았다고 했다.

며칠 뒤 한 초가로 갓 쓴 양반도, 상투 틀고 두건 쓴 평민도 모여들었다. 찰고(예비 신자에게 영세를 받을 준비가 됐는지 여부를 시험하는 일)를 받기 위해 둘러앉은 자리였다. ‘남녀의 높고 낮음이 없이 한 형제, 한 자매’라는 가르침대로 남녀유별이 없었다.

하지만 천주교 복음이 당쟁의 빌미로 이용되면서 천주교인들은 극심한 박해를 받았다. 동굴에 모여 예배를 드리다 관군들을 피해 도망치기도 하고, 관아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교세가 커져가는 것을 보고 누군가는 “그렇게 치명((致命, 순교)을 당했어도 교우가 늘어나니, 이 땅은 선택받은 땅이구나”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외국인 주교 또한 그들의 믿음을 높이 평가했다. “이 땅에서 목자가 없는 교회를 지키고자 목숨을 버려 치명했습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습니다”라고.

“하루살이는 불이 좋아 뜨거움을 모릅니다”
영화 속 주인공인 항주(이영하 분)와 정은(원미경 분)은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두 사람은 친구 사이였던 부친들이 정한 정혼한 사이였다. 하지만 항주의 아버지는 재상으로 천주교 박해에 앞장섰고, 정은의 아버지는 초기 천주교 선구자였던 정약종이었다. 서로 정혼자임을 모른 채, 우연히 위기에 처한 정은을 구해준 항주는 한눈에 마음을 빼앗겼다. 마침 정은이 떨어뜨린 묵주를 발견하고 찾아가 애절한 마음을 표현하지만, 정은은 그의 마음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했다.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이다.

다른 천주교인들과 마찬가지로 정은도 관아에 잡혀가 매질을 당하면서도 외국인 주교의 은신처를 발고하지 않았다. ‘천주학을 하는 금수’ 취급을 받으며 급기야 죄수들에게 능욕까지 당할뻔하게 되자, 베드로 이승훈은 천주를 향해 원망을 토해내며 발고하려고 했다. 하지만 정은은 오히려 담담히 그를 위로했다.

“그분은 우리 눈앞에 천국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게 은총이고 사랑입니다. 교우님의 죽음을 기뻐하세요. 신앙의 죽음은 천국입니다. 죽음이 기쁠 때 육신은 고통을 이기게 합니다.”

이게 바로 그들의 신념이었다.

잡혀간 정은을 두고 볼 수 없었던 항주는 급기야 관아에 잠입해 정은을 구해내고, 함께 갇혀 있던 사람들에게도 달아나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거부한다. ‘천주를 모른다’는 말 한 마디면 살 수 있음에도 죽음을 택한 것이다. 결국 정은만 데리고 나온 항주는 산속에 들어가 그를 보살피며 잠시나마 서로를 향한 애틋함을 표현한다.


날이 갈수록 박해는 심해졌다. 외국인 주교도 붙잡힐 위험에 처했다. 신자들은 도망치라 권했지만 주교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착한 목자, 자기 양떼를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이 땅의 양떼들, 외국인 목자 위해 고통받고 있습니다”라며 목숨을 내놓는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정은은 괴로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항주에게 눈물로 진심을 토해낸다. “불을 향해 뛰어드는 하루살이떼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루살이는 불이 좋아 뜨거움을 모릅니다. 진리도 그 뜨거움을 모르는 사랑입니다. 도련님이 위험을 무릅쓰고 나를 구해준 것이 사랑이듯, 사랑은 죽음도 고통도 잊게 합니다. 나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당신의 것입니다. 허나 도련님의 사랑보다 더 뜨거운 열정 때문에 괴롭습니다. 이토록 뜨거운 사랑을 주신 분의 사랑을 받아주세요. 바로 주님이십니다.”

결국 항주가 집을 비운 사이 정은은 서찰과 십자가를 남긴 채 그를 떠나 형장으로 향하는 무리 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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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순교자 기념관

 


믿음은 오직 한분과의 관계
영화는 또 말한다. 믿음의 관계성에 대해서, 믿음은 오직 한 분과의 일대일의 관계임을 말이다. 옥사에서 젖을 먹지 못해 죽어가는 갓난아이를 둔 한 여인이 극도의 불안으로 괴로워한다. 그 시각 옥사 밖에서 아들 넷이 자신 때문에 고문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던 여인은 급기야 “난 천주를 모르오”하며 절규한다. 덕분에 아이들과 함께 풀려났지만 여인은 다시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큰 아이에게 동생들을 맡기고 형장으로 향한다. 신앙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데다, 어린 나이에 동생들까지 책임져야 하는 아이가 어떻게 엄마의 그 신념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또 여인은 어떻게 아이들을 남겨둔 채 죽음을 택할 수 있었을까. 영화이기에 가능한 것일까. 일단 영화 속 아이들은 어머니를 이해했던 것 같다. 어머니가 참수당하기 하루 전날 아이들은 굶어가며 일해 모은 돈과 쌀을 가지고 망나니 집을 찾아간다. 그리고 간곡히 부탁한다. “어머니가 아프지 않게 단칼에 베어주세요”라고. 그러자 그 천하 모르는 망나니가 이렇게 답한다. 칼을 잘 갈아서 가져가겠다고.

항주 또한 정은을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만났던 외국인 주교와 다른 교우들의 말을 들으면서 차츰 그들이 말하는 믿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결국 정은이 남기고 간 편지와 십자가를 보고 형장으로 달려가 “사학 죄인, 여기도 있소!”라며 염주를 내보인다. 곧바로 주교에게 나아가 “천주의 가르침을 다 깨닫지는 못하였지만 천주 공경하며 영생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한 뒤 영세(領洗)를 받는다. 주교는 “우리 축복 받는 오늘, 천주의 잔칫상에 한 형제를 더 초대합니다”라고 말한다. 다른 천주교인들도 항주에게 축하를 건넨다. 하지만 곧 그들은 모두 망나니들에 의해 참수당하고 만다.

그런데 단 한 사람이 살아남았다. 주변에는 참수자들의 머리가 달린 장대가 널려 있는데, 그 아래 앉아 통곡을 하고 있다. 죽은 교우들에게 미안해서일까? 아니면 자신에 대한 원망에서일까. 그는 주교가 말한 ‘천주의 잔칫상’에 초대받지 못한 자이다. 아니, 초대는 받았지만 마지막에 와서 그 자리에 함께 하진 못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알았다. 왜 ‘초대받은 사람들’이라고 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