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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보경사 팔상도(八相圖)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불화


글. 신정미 사진제공. 불교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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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스승으로 삼아라,
진리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리라



팔상도 중 여덟 번째 상인 쌍림열반상은 부처님이 80세 되는 해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마지막 설법을 마치고 누워서 열반에 드는 광경을 나타내고 있다. 40여 년간 여러 곳을 다니며 깨달음을 전파했던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진리와 자신의 마음을 등불 삼아 정진하라는 법어를 남기고 열반에 들었다.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신 지 45년. 그동안 부처님은 항상 중생 속에서 동고동락했다. 그러나 80세가 되신 해에 부처님은 아난존자에게 “나는 이미 모든 법을 설했고 내게 비밀은 없으며 육신은 이제 가죽끈에 매여 간신히 움직이고 있는 낡은 수레와 같다”고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마지막 설법을 하셨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 자신에 의지하라. 내가 너희를 위해 45년 동안 설했던 진리에 의지하고, 진리를 스승으로 삼아라. 진리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리라. 이 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장아함경 유행경>

이것이 유명한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의 열반유훈이다. 부처님은 열반에 드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의심나는 것이 있는지를 세 번이나 물으신 후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니 부지런히 정진하여 고통의 속박에서 벗어나라”고 마지막으로 당부하셨다.

가장 오래된 문헌에는 부처님의 탄생, 성도, 입멸의 월·일에 대한 기록이 없지만 중국·한국 등지에서는 부처님의 탄생을 4월 8일, 성도를 12월 8일, 입멸을 2월 15일로 하고 있다. 남방불교에서는 탄생, 성도, 입멸 모두 바이샤카월(4~5월) 보름날의 일이라 하여 이날 성대한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다. 그의 탄생지 룸비니 동산, 성도지 부다가야, 최초의 설법지 녹야원, 입멸지 쿠시나가라는 4대 영지로서 중요한 순례지가 되고 있다.

올해는 불기 2561년이다. 부처님 탄생이나 정각이 아닌 부처님 열반을 기준으로 하는 불기는 육도윤회의 고리를 끊어 열반에 이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팔상도 마지막 화폭인 ‘쌍림열반상’은 부처님 열반에 관한 불화다.

그림은 크게 4장면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그림 오른쪽 하단에 열반에 든 부처님을 중심으로 슬픔에 잠긴 제자들과 그 주변에 비탄에 잠겨있는 사부대중·천룡·팔부중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불본행경> ‘대멸품(大滅品)’에 보면 대중과 함께하던 부처님은 쌍수에 이르러 아난에게 침상을 펴라 이르셨다. 부처님은 침상에 올라 오른쪽 옆으로 누워 얼굴을 서쪽으로 향하고 머리를 북쪽에 두고 다리를 포갰다. 부처님이 누워계신 장면은 곧 열반상으로 귀결되는데, 부처님이 머리를 북쪽으로 둔 이유에 대해 <증일아함경>

제36권 ‘팔난품(八難品)’에서는 “내가 열반에 든 뒤에 불법은 북천축(北天竺)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부처님이 열반에 들자 대중의 슬픔은 헤아릴 수 없었다. <불설장아함경> 권4 ‘유행경’에 따르면 모든 비구들은 구슬피 통곡하고 기운을 잃어 몸을 땅에 던져 뒹굴고 부르짖으면서 큰 법이 사라졌음을 한탄했다. 경전처럼 그림에서도 땅에 누워있는 비구의 모습이 확인된다.

두 번째는 그림 왼쪽 하단에 부처님의 관 위로 엎드려 있는 스님과 관 주변에 여러 명의 스님이 모여 있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곽시쌍부(槨示雙趺, 슬퍼하는 가섭을 위해 부처님이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보이시는 장면)를 표현한 것이다. ‘유행경’에 따르면 부처님 법구는 500겹으로 감싸서 황금관 안에 넣은 뒤 다시 쇠곽에 넣고 마지막으로 전단향나무로 짠 덧관에 넣어졌다. 다비를 하려 불을 붙였지만 관에 불이 붙지 않았다.

그때 가섭존자가 500명의 제자와 함께 서둘러 도착했다. 가섭이 부처님 몸을 다시 뵙길 청하나 아난은 여러 겹으로 쌓여 있어 불가하다고 대답했다.
가섭이 다가가자 부처님께서 두 발을 나란히 내밀어 보였다. 가섭이 예배하자 발은 사라지고, 관이 저절로 타올랐다.

부처님의 입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대반열반경>에서 볼 수 있는데, 마가다의 라자그라하에서 쿠시나가라로 향하는 최후의 여행길에서 이뤄졌다. 부처님은 쿠시나가라 근처의 파마마을에 있는 춘다라는 사람이 소유한 망고원에 머물 때 공양 받은 버섯의 일종인 수카라맛다바(sukaramaddava)를 먹고 중병을 앓았다. 수카라맛다바를 돼지고기라고 주장하는 서양학자도 있지만 버섯의 일종일 가능성이 높다.

세 번째는 그림 왼쪽 중앙에 관이 성 밖으로 저절로 들려 나가는 장면과 부처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 좌우 천녀 권속과 함께 하계로 내려와 관으로 향하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옆에는 과거 7불을 작게 묘사해 지난 인연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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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는 그림 상단에 불에 타오르는 부처님의 관을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오색광명이 관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장면이 그려져 있고, 오른쪽으로는 다비를 하니 8섬 4말이나 되는 불사리가 비 오듯 쏟아져 이를 받아 모으는 모습과 함께 부처님 사리를 골고루 나누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불본행경> ‘팔왕분사리품(八王分舍利品)’을 보면 일곱 국왕이 부처님 사리를 얻겠다고 군사를 일으켰다. 전쟁의 일촉즉발 위기 속에 향성이란 바라문이 중재에 나섰다. 부처님 제자로서 그 가르침을 실천하라고 설득한 향성 바라문은 사리를 여덟 등분으로 나눠 사리를 지키고 있던 역사와 일곱 국왕에게 평등하게 나눠준다. 사리를 이운해 간 국왕들은 각자의 나라에서 탑을 세웠다. 향성 바라문은 사리를 나누던 항아리를 봉안해 탑을 세우고, 귀족 바라문들은 재를 모아 탑을 세워 총 10개 탑이 조성됐다고 한다. 그림에서 사리나누는 것을 지켜보는 이가 바로 향성 바라문으로 보이며, 그의 지시에 따라 항아리마다 사리를 나눠 담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길에서 나서 길에서 살다 길에서 가신 이 날이 바로 음력 2월 15일 열반절이다. 열반이란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ana)에서 온 말로 ‘불어서 끈다’는 뜻이다. 무엇을 불어서 끄는 것인가? 바로 욕망과 번뇌의 불을 끄는 것이다. 지혜 제일이라 불리는 사리불은 열반이란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을 영원히 없애 모든 번뇌를 소멸시킨 것이며, 또 열반에 이르는 방법은 팔정도라 했다.

때문에 부처님은 성도를 이루신 그 순간부터 이미 열반에 드신 것이다. 세상에 인연으로 생긴 것은 반드시 소멸하는데 부처님은 이 무상의 진리를 스스로 따랐다. 원래 부처님은 업의 굴레에 매인 몸이 아니다. 깨달으신 부처님은 영원하여 태어나거나 죽은 일이 없다. 부처님은 “나의 육신은 설사 멸하더라도 제자들이 법과 계율을 잘 지키고 행하면 나의 법신(法身)은 영원히 상주하여 멸하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부처님의 생애는 누구든지 부처님 말씀대로 믿고 수행하면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이신 길이다. 이는 모든 중생이 지닌 불성으로 가능하며 열반은 그 최고의 경지를 나타낸 것이다. 이제 부처님의 육신은 소멸했지만 그 가르침은 어두운 밤에 등불처럼 중생의 앞길을 밝게 비추고 있다. 이 세상에 인류가 살아 있는 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