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루 | GEULMARU

로그인 회원가입 즐겨찾기추가하기 시작페이지로
글마루 로고


 

포항 보경사 팔상도(八相圖)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불화


글. 신정미 사진제공. 불교중앙박물관


01.jpg
불화
 



석가모니 부처
마왕을 물리치고 35세에 깨달음을 얻다


팔상도 중 여섯 번째 상인 ‘수하항마상’은 깊은 선정(禪定)에 들었던 태자가 마침내 보리수나무 아래서 온갖 방법으로 방해하는 마구니들을 항복시키고 깨달음을 얻는 장면을 나타내고 있다. 태자는 보리수 아래에 정좌한 후 깨달음을 얻기 위해 선정에 들었다. 태자가 평정의 경지에 이르자 그가 부처가 될 것을 염려한 마군이 갖가지 방법으로 유혹하고 공격을 해왔다. 그러나 연기(緣起)의 도리를 깨달은 태자가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자 땅이 흔들리며 지신(地神)이 솟아나와 성불(成佛)을 증명하자 마침내 마왕이 항복한다. 이로서 싯다르타는 ‘위대한 석가족의 성자’라는 뜻의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었다.

부처님이 정각을 얻기 전 마왕 파순을 물리친 이야기는 익히 알려져 있다. ‘수하항마상’은 보살의 수행을 방해하는 마왕의 온갖 행태와 함께 이를 물리친 부처님의 모습이 표현돼 있다. 그림은 <불본행집경> ‘마포보살품(魔怖菩薩品)’ <불본행경> ‘항마품’ <불소행찬> ‘파마품’ 내용과 유사하다.

그림은 크게 6장면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그림 왼쪽 중앙부에 천인이 보살에게 길상초를 바치는 장면과 두 정거천인이 합장을 하며 머리를 숙이는 모습이 같이 나타나 있다. 수행자 고타마는 고행을 포기한 뒤 수자타가 올리는 우유죽 공양을 받아 기운을 회복하고 목동 스바스티카(吉祥)가 바친 부드럽고 향기로운 풀을 보리수 아래에 깔고 그 위에 앉아서 굳은 다짐을 하였다.

“내 여기서 위없는 깨달음(무상정등각으로 생사윤회는 끝이 나고 수행 완성)을 얻지 못한다면 차라리 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마침내 이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으리라.” <수행본기경>

금강석보다 굳센 의지 때문인지 부처님은 그 자리에서 깨달으셨고, 깨달으신 그 자리는 훗날 금강보좌(金剛寶座)라 부른다. 수행자 고타마가 금강좌에 앉아 마지막 정진을 시작해서 깊은 선정에 들었는데 백호상에서 빛이 나오자 삼천 대천세계가 밝아졌고 그 빛이 마왕이 거주하는 곳까지 도달하게 됐다.

두 번째는 그림 왼쪽 하단에 보살의 광명이 마왕의 궁전을 비추자 마왕 파순이 32종류의 악몽을 꾸게되고, 마왕의 세 딸이 보살을 유혹하려다 실패하고 늙고 추하게 변한 모습과 보살이 왼손을 들어 마녀들의 모습을 바꾸는 동작이 표현돼 있다. 보살이 선정에 들어 깨달음을 얻으려 하자 가장 다급해진 자가 바로 중생을 욕망에 사로잡히게 하고 세상을 어둡게 만드는 마왕 파순이었다. 마왕은 “사문 고타마가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루려 한다. 그가 깨달음을 성취하면 일체 중생을 제도할 것이다. 그 깨달음의 경지는 나의 능력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가 깨닫는 것을 막아야 한다.”라고 생각해 먼저 자신의 세딸을 보내 고타마를 유혹하도록 했다. 마왕의 세 딸은 온갖 교태를 부리며 유혹했으나 고타마는 수미산 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너희들의 몸은 비록 아름답지만 모든 악이 가득해 견고하지 않고 부정이 흘러 생로병사가 항상 따른다. 손에는 팔찌, 귀에는 귀고리를 흔들면서 교태 섞인 웃음으로 탐욕의 화살을 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대들의 욕망을 독약으로 안다. 칼날에 발린 꿀은 혀를 상하게 하고 사악한 욕정은 독사의 머리와 같으니 내 이미 모든 유혹을 뛰어넘었다. 너희들은 모두 본래 모습을 드러내고 물러가거라.”  이렇게 말하자 마왕의 세 딸들은 모두 추한 노파로 변해 탄식하며 물러갔다.

세 번째는 그림 오른쪽 하단에 코끼리가 끄는 마차를 탄 마왕의 군대가 무력으로 보살을 항복시키려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호랑이도 사자도 아닌 짐승이 끌고 있는 마차에는 병기가 가득 실려 있고, 코끼리와 짐승의 모습이 힘차게 보인다. 무장한 마군들의 형상은 의기양양해 보인다. 마왕은 화가 나서 수행자 고타마를 향해 태풍, 폭우를 보내고 창칼, 불화살, 돌을 던지며 악귀를 동원해 수행을 방해했다. 그러나 수행자 앞에서 그것은 모두 연꽃으로 변하여 흩날릴 뿐이었다.

유혹과 폭력으로도 수행을 막지 못한 마왕은 직접 고타마 앞에 나타나 이렇게 회유하기 시작했다.

“석가족의 아들 고타마여! 그대는 속히 일어나 이곳을 떠나라. 그대에게는 전륜성왕의 지위가 보장되어 있지 않는가? 이제 곧 가서 세간을 다스리는 위대한 왕이 되어 그들을 지배하고 오감의 쾌락이 주는 미묘한 맛을 마음껏 즐기라. 석가족의 아들이여! 그대가 추구하는 도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피로만 더할 뿐임을 어찌 알지 못하는가?”

수행자 고타마는 마왕의 항복을 받은 후에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선 무기를 써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나 나는 중생을 평등하게 여기는 까닭에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평등한 행과 인자한 마음으로 악마를 물리쳤나니<수행본기경>.”

네 번째는 그림 오른쪽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바라보고 있는 보살과 그 앞에 놓은 정병을 쓰러뜨리기 위해 줄을 끌어당기는 마왕 부하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마왕의 군사들이 보살의 정병을 움직이려고 병에 세 가닥의 밧줄을 매어 끌고 있지만 정병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 장면은 <석씨원류응화사적>의 ‘마중예병(魔衆拽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옆에서는 북을 치면서 격려하며 소리치는 듯한 모습이고, 마왕은 긴 칼을 들고 이들을 지휘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힘을 쓰고 있는 마군들의 모습은 각기 다른 자세와 표정으로 힘차고 생동감 있게 표현돼 있다.

   


02.jpg

 



다섯 번째 그림 왼쪽 상단과 중앙에는 마왕을 물리친 부처님이 오른쪽 손으로 땅을 가리키는 장면과 하늘에서 바위가 떨어지고 불이 내려와 말과 마군들이 불에 타기도 하고 바위에 깔려 죽어가는 아비규환의 장면이 실감나게 묘사돼 있다. 또한 마왕의 무리들이 항복하자 보살 주위에 모든 천신·천왕·천중들이 지켜보며 찬탄하는 장면과 과거 7불이 보살로부터 표현돼 있다.

마왕의 방해를 지켜보던 보살이 전생에 무수한 공덕을 쌓고 여러 부처님께 공양을 드렸기에 악마의 군대를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하니 마왕은 그것을 누가 증명할 수 있는지 말해보라고 외쳤다.

보살이 결국 자신의 지난 수행을 증명하겠다며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켰다. 그러자 대지가 진동하며 지신(地神)들이 나타나 스스로를 장엄하고, 보살이 지난 생애 동안 법을 베풀며 수행했음을 증명했다. 이때 마왕과 그의 군대는 굴복하여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마왕에게 항복받은 이 손동작을 가리켜 불교미술에서는 ‘항마촉지인’이라고 한다. 항마촉지인은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고, 왼손은 선정인의 자세를 취한 것을 가리키는데, 항마촉지인을 한 불상을 석가모니 부처로 이해하는 게 일반적이다.

본 그림의 가장 중심 되는 표현은 마왕 파순이 구름에 싸여 요란스럽게 하계로 내려오는 장면이다. 중앙상단에 현란하고 뚜렷한 형상으로 거꾸로 곤두박질하는 표현이 극적이며 속도감을 나타내주고 있다.

부처의 깨달음을 방해한 악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들이 수행자 고타마가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한 세간에 대한 애착을 보여주는 듯하다. 끝까지 그를 붙들고 있던 욕망 가운데 가장 먼저 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육체의 욕망, 즉 색욕이었다. 마왕의 공격은 마왕의 여덟 가지 군대라고 표현된 욕망, 혐오, 기갈, 집착 등 마음속의 온갖 번뇌를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왕이 마지막으로 제시한 것은 전륜성왕의 자리였다. 이것은 곧 권력욕을 뜻한다. 권력욕은 한 개인이나 한 가정을 파멸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한 국가와 민족, 세계를 파멸로 몰아갈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욕망이다. 결국 이 세 가지 욕망을 극복한다는 것은 육체적, 정신적, 제도적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말한다. 마왕의 온갖 유혹과 물리적 위협 그리고 회유를 극복하는 이 장면은 우리가 가져야 할 불퇴전의 수행자세가 어떠한 것인지 잘 말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림 오른쪽 상단에는 정각을 얻은 부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수행자 고타마는 마왕의 항복을 받고 깨달음을 끝까지 방해하던 악마가 사라지자 깊은 선정에 들었다. 새벽녘 동방으로 계명성(啓明星)이 올라올 때쯤에 크게 도통을 하니 이때 *삼명육통(三明六通)과 육도사심(六度四心), 32상 80종호를 갖추었다. 이것은 과거 연등불이 장차 사바세계를 제도하게 될 것이라는 수기를 주었던 석가모니불인 것이다. 모든 구속이 사라진 수행자 앞에 세상의 이치가 확연히 드러났다. 그 이치는 ‘모든 것이 서로 의지하여 일어나고,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하기에 저것도 멸하는 것’ 이라는 연기(緣起)의 진리이다. 수행자 고타마는 바로 이 연기의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때가 부처님이 35세 되던 해 음력 12월 8일. 이날은 사실상 불교가 시작된 역사적인 날이며 불교에서는 성도절(成道節)이라 하여 뜻 깊은 날로 삼고 있다. 성도절은 수많은 마왕의 군대로부터 항복받고 깨달은 날이며, 인간이 몸으로 신의 세계를 뛰어 넘어 대자유인의 시대를 연 날이다.


*삼명육통(三明六通)
석가모니 부처님이 얻은 천안통, 숙명통, 누진통은 ‘세 가지 밝은 지혜’라는 뜻으로 ‘삼명’이라 한다. 삼명(三明)은 초저녁에 얻은 모든 것을 꿰뚫어볼 수 있는 천안통(天眼通), 한밤중에 얻은 마음을 자유자재로 움직여 과거를 알 수 있는 숙명통(宿命通), 새벽에 얻은 우주의 모든 진리와 법칙을 선명하게 꿰뚫어볼 수 있는 누진통(漏盡通)을 말하고 거기에 몸을 마음대로 나타내는 지혜인 신변통(神變通),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지혜인 타심통(他心通),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 지혜인 천이통(天耳通)을 합하면 육신통(六神通)이 된다.


0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