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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계〉는 감독 프레드 진네만(Fred Zinnemann,1907~1997)의 지휘 하에 오드리 햅번(Audrey Hepburn,1929~1993)이 루크 수녀로 열연했다. 미국의 여류작가 캐더린 흄(Kathryn Hulme)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1년 이상 촬영한 작품이다.

벨기에에서 유명한 의사를 아버지로 둔 가브리엘(오드리 햅번). 가브리엘은 사랑하는 청년과 결혼을 못 하게 되면서 평소 동경해온 수녀가 되기로 결심한다. 수녀원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가브리엘은 루크 수녀가 된다. 간호 수녀로서 벨기에령 콩고로 파견된다. 하지만 과로로 폐결핵에 걸려 본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 사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아버지가 독일군에게 죽임을 당한다. 신앙의 규율과 자아간의 갈등을 겪는 그는 결국 수녀복을 벗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영화 줄거리는 간단하다. 하지만 주인공 루크 수녀와 동화된다면 주인공의 복잡한 심경이 느껴진다.

루크 수녀는 유별나다. 환자를 진료하느라 기도시간에 매번 늦고, 환자들과 이야기하느라 침묵 수행을 어긴다. 환자들과 함께할 때 보람을 느끼고 신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루크 수녀는 수녀원 생활이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 순종의 이름으로 수녀들과 루크 수녀는 자기 자신을 엄격히 틀 안에 가두기 때문이다. 원장수녀와 선배 수녀들은 그에게 ‘신앙’에 무게를 더 두기를 바란다.
 
수녀원 역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신앙으로 감정을 추스르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 수녀들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는 질투가 존재한다. 이는 봉사와 헌신이 몸에 배인 루크 수녀가 하루에도 몇 번씩 번뇌를 하는 이유다.
 
성(聖)스러움을 실현하고나 노력하는 그에게 또 다른 난관은 아버지의 죽음이다. 그는 이성적으로 수녀로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했지만 비보(悲報)에 무너졌다. 나치에게 아버지를 잃은 그는 독일 환자에 연민을 느끼지 않음을 고백하고, 이런 자기의 모습에 괴로워한다. 인간이 나약하다는 사실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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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심심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하지만 오드리 햅번의 연기력에 눈을 뗄 수 없다. 다갈색의 눈망울로 또박또박 말하는 모습에 의식(ceremony)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 중 어느 것이 중요한지 고민하게 된다. 이러한 번뇌는 후반부에서 절정을 이룬다. 루크 수녀에서 다시 가브리엘로 돌아온 그.
 
가브리엘은 수녀원을 나서며 원장 수녀와 이야기를 나눈다.
 
“하나의 문제를 깨달았습니다. 순종입니다. 조건 없는 순종이요. 주님께서 시험하시는 완전한 순종은 제게 너무 버겁습니다.”

“주관에 따라 살다가 규율을 따라야 했죠. 미사종이 울릴 때마다 미사와 환자 사이에서 고민했습니다. 식사와 미사에도 항상 늦었고 야간 근무에는 대침묵도 어겼어요. 환자들의 이야기를 끊을 수 없었죠.”
 
“원장님, 우리들은 다섯 번의 벨이 울리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영혼을 외면해야만 할까요?”

가브리엘의 말에는 신앙인의 삶이 녹아들었다. 신앙하기 전의 모습은 내가 중심이다. 모든 것이 ‘나’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신앙을 결심하는 순간부터 중심은 신이다. 그렇다면 신을 어떻게 찾고, 신의 의중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답은 경서에 있다. 경서에 신의 뜻과 목적이 담겨있다.
신의 뜻도 모른 채, 무조건적으로 따라가는 신앙인을 간혹보게 된다. ‘믿기만 하면 천국’ ‘많은 금액으로 헌금해야지만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신다’는 등 비이성적으로 접근하는 모습이 신앙세계에 있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 가운데도 소수는 신앙세계에 발을 딛기만 하면 무조건적으로 믿어
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최근엔 경서를 알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다.

왜 겸손해야 하는지, 왜 순종해야 하는지조차 모른 채 행하는 것은 맹종이다. 그러나 신의 의도를 심도 있게 묵상하고 깨닫고 행할 때 비로소 순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끊임없이 겪어야지만 신의 성품을 닮고, 신의 모양과 형상으로 변화한다. 신앙인의 목적인 신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근간으로 한다. 믿음 역시, 서로 알아갈 때 신뢰가 형성되는 것처럼, 신을 알아야지만 신심이 싹트고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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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이 끊임없이 고민했듯, 의식(ceremony, 행위)이 마음보다 앞설 수 없다. 마음에서 우러날 때 드리는 의식이야말로 신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이다. 형식적인, 외식하는 행위는 결코 신이 받아주지 않는다는 내용을 경서에서도 찾을 수 있다.

가브리엘이 미사 종이 울릴 때마다 갈등했던 부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약 2000년 전(초림) 예수는 안식일에도 병자를 고쳤다. 당시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안식일을 지키라)을 어겼다”라며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는 “내 아버지(하나님)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한복음 5장 17절)”고 증거했다. 당시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만을 생각했을 뿐, 율법 내용 안에 담긴 뜻과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했기에 하나님이 보낸 예수를 보고도 믿지 못한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종교를 만든 창시자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알고 깨닫는 자만이 올바른 신앙을 할 수 있다.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가브리엘이 번뇌한 부분을 고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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