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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닮은 예배당과 영화관



스릴러 영화가 물밀듯 개봉되는 무더운 여름이다. 주말, 휴가철이 되면 대형 영화관에는 관객들로 가득 찬다. 여기 관객석에 흥미로운 점이 있다. 정면의 스크린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관객석이 교회 예배당을 모티프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글 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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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느 곳이든지 영화관의 자리는 스크린을 향해 일렬로 나열됐다. 영화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다. 게다가 영상에 몰입하기 위해 친절하게도 계단식으로 나열돼 누구나 쉽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영화관의 소통은 ‘일방통행’이다. 필름이 틀어주는 대로 관객은 보고 들으며 느낀다. 이러한 광경은 종교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목회자 또는 큰스님이 설교 하면 교인과 신자들은 경청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약2000년 전 예수가 배 위에 올라 많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한 것과 같이, 지금으로부터 3500여 년 전 하나님의 가르침을 히브리 민족에게 전하는 모세와 같이, 또 보리수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제자들에게 전하는 석가모니와 같이 ‘일방통행’의 소통 방식은 종교에서 비롯됐다. 특히 좌식 문화인 불교보다 입식 문화인 기독교의 건축 구조가 영화관, 대학 강의실 등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예배당의 구조는 교인 모두가 앞에 있는 강단을 바라보는 식이다. 예배시간 내내 교인들은 앉아서 설교하는 목사의 얼굴과 앞에 앉은 다른 이의 뒤통수를 보게 된다. 이러한 구조는 목사의 설교에 집중하는 효과가 있다. 예배당뿐만 아니라 교수의 수업을 듣고 배워야 하는 강의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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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하고 싶은 까막눈의 유일한 통로

3500여 년 전, 모세는 하나님께 말씀을 받은 후 히브리 민족에게 그 가르침을 전한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이는 모세밖에 없기에, 모든 이는 모세를 따를 수밖에 없다. 이로부터 약 1500년 후 예수 역시 천국 복음을 배 위에서, 산에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무리에게 전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역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이는 예수밖에 없었다. 오직 직접 신의 계시를 받은 자가 가르치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가 등장하기 전에도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듣는 식의 위주였다. 또한 예수의 부활 승천 후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여러 유럽 국가에서도 ‘일방통행의 소통’ 문화를 고집했다. 그 배경에는 바로 ‘높은 문맹률’이 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대부분 까막눈이었다. 성경을 읽고 싶어도 볼 수 없었고, 이 때문에 성경을 알고 가르치는 교황은 상대적으로 쉽게 지배층이 됐다. 더 나아가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를 인정하고, 381년 테오도시우스 1세가 국교로 제정하면서 그리스도교는 나라를 통치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수단으로 떠올랐다. 로마의 그리스도교 국교 제정은 유럽의 정치, 사회, 문화 등 전반적인 분야에 영향을 끼치면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자들의 지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글을 모르는 백성은 그저 들려주는 대로 신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면죄부가 성행하는 등 잘못된 신앙관이 널리 퍼지기도 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평등한 교육을 실시하면서 많은 이가 글을 읽을 수 있고 성경의 보급으로 많은 이가 성경을 읽고 있으나 그 뜻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목회자의 설교를 의존해야 하는데 그 가운데 잘못된 가르침으로 신앙을 중단하는 교인이 발생한다.

이처럼 예배당의 형태는 먼저 깨달은 자가 순수하게 사람들을 위해 가르침을 전하거나 권력을 휘두르는 양면성을 지닌다.

예배당은 ‘집중 효과’를 나타낸다. 설교자만 보고, 그의 말을 듣는 일방통행의 소통은 영화관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주어진 시간에 서라운드 사운드에, 스크린속 장면에 관객은 몰두한다.

어떠한 것이든 그냥 만들어진 것은 없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 새로운 것에는 늘 모티프가 되는 무언가가 있다. 종교는 사소한 것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종교와 그 문화를 알면 세상이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