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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塔), 하늘에 맞닿다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안정감을 주는 기단을 시작으로 점점 면적이 작아지면서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이 오른다. 이처럼 다 같은 모양의 탑인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재료에 따라
목탑·석탑 등으로 나뉘고 저마다 모양이 다르다. 지금은 하나의 예술품으로 그 가치를 인
정받지만, 불과 수백 년 전만 하더라도 종교 의식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글 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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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 서정리 구층석탑 (靑陽 西亭里 九層石塔) 보물 제18호
 


어르신들의 주요 장소인 서울 탑골 공원. 장소는 하나인데 ‘파고다 공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탑골은 ‘탑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며 파고다는 포르투갈어 빠고데(pagode)에서 유래한 것으로 ‘탑’을 지칭한다. 고로 탑골이니, 파고다니 어떻게 보면 일맥상통 한다.

탑은 불교 문화권 국가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다. 불교가 시작된 인도와 그 주변 국가, 불교가 전래된 중국, 한국,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탑의 어원은 고대 인도어인 범어(산스크리트어)의 ‘스투파(Stupa: 쌓아올리다)’와 팔리어의 ‘투우파(Thupa)’에서 비롯됐다. 중국에 전해지면서 중국인들은 ‘솔도파’ ‘탑파’라고 발음했으며, 이를 줄여 탑이라고 지칭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미얀마에서는 탑을 ‘파고다’라고 부르는데, 포르투갈어 빠고데(pagode)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강력하다. 15세기 이후 동양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포르투갈이 동남아시아의 탑을 보고 파고다라고 불렀다고 한다. 파고다의 또 다른 유래에는 범어의 바가바트(Bhagavat: 성스러운 자, 신), 페르시아어 부트카다(But-Kadah: 신이 사는 집)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있다.

생로병사의 근본을 찾기 위해 자신 앞에 놓인 부귀영화를 버린 석가모니. 그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탑이요, 불탑의 시초다. 80세에 열반한 그는 인도 장례 풍습에 따라 화장됐다. 그의 장례를 도맡은 말라족은 화장 후에 얻은 유골(사리)로 탑을 세우려 했다. 이러한 소식은 이웃 부족에게 전해졌고, 마가다국 왕을 비롯한 8개 부족이 석가모니 유골을 여덟 부분으로 나눠 각각 탑을 세웠다. 석가모니의 열반 소식을 뒤늦게 들은 모라족은 화장터에 남은 재를 가져가 유골 대신 재를 넣은 탑을 세웠다. 처음에 건립된 8개의 탑과 나중에 만들어진 2개의 재탑을 합해 총 10개의 탑이 최초의 불탑이다. 어찌 보면, 인도의 탑은 무덤인 셈이다.

수많은 부족이 있었던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아소카 왕(BC 273~BC 232)은 석가모니의 사리가 묻힌 8개의 탑을 찾아 영토 곳곳에 8만 4000개의 탑을 세웠다. 아소카 왕은 석가모니의 위대한 생애와 그가 깨우친 진리를 탑에 담아 백성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불교적 통치 이념을 굳건히 세우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인도에서 세워진 불탑은 중국, 한국,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의 자장 대사(590~685년)가 중국에서 사리 100립을 처음으로 가져와 곳곳에 탑을 세워 봉안했다고 전해진다. 부처의 사리를 넣는 것을 시작으로 공덕을 많이 쌓은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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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각사지십층석탑(문화재청 제공)
 
   

 

탑골(파고다) 공원

1919년 3·1운동의 발상지인 탑골 공원은 고려시대에는 흥복사(興福寺), 조선시대 태조 때 조계종(曹溪宗)의 본사였으나 폐지됐다. 세조 10년(1464)에 원각사(圓覺寺)로 중건됐으며, 사찰은 연산군 10년(1504) 폐사되기 전까지 도성 내의 3대 사찰로 이름을 알렸다. 원각사 터에는 원각사지십층석탑(국보 제2호), 대원각사비(보물 제3호), 앙구일부(해시계) 받침돌 등이 남아 있다. 예부터 탑골(탑이 있는 마을)로 불리던 이곳은 광무 1년(1897) 영국인 재무부 고문 J.M. 브라운이 원각사 터를 공원으로 꾸미면서 ‘파고다 공원’으로 명칭을 바꿨으나, 1990년대 초반, 다시 탑골 공원으로 불리게 됐다.


찾아가는 길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2가 탑골 공원 내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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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보물 제410호
 
 

부처의 사리가 봉안된 5대 적멸보궁

경남 양산 통도사, 강원 평창 상원사, 강원 인제 봉정암, 강원 영월 법흥사, 강원 정선 정암사에 부처의 진신사리가 봉안됐다. 사리가 있기 때문에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는다. 법당 바깥에 사리를 모신 탑이나 계단을 설치한다. 적멸보궁에는 신라의 승려 자장이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석가모니 사리와 정골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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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국보 제35호
 

불교에서 탑은 중요한 건축물이다. 불상이 만들어지기 전, 석가모니의 사리·경전·재 등이 봉안된 탑이 부처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탑돌이와 탑 앞에서 절하는 것 역시 부처를 모시는 행위다. 탑과 관련해 ‘불탑을 쌓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공덕을 쌓아올리고, 부처에 귀의한다는 의미로 쓰이게 됐다.

우리나라 탑의 생명력은 길다. 불교를 받아들인 이후,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늘을 향해 뾰족한 모양으로 탑을 만들어온 나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탑 모두가 천편일률적이지 않다. 자연과 주변 환경에 스며들어 조화를 이룬다. 탑을 부처라고 생각했기에 가장 아름답고도 과학적으로 한 층 한 층 정성스레 쌓아올렸을 것이다.

‘금강(金剛)’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를 뜻한다. 불가에서는 2500여 년 전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밑에서 깨우친 가르침을 진리라고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이가 진리에 목말라 있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석가와 고승들의 사리를 담은 탑을 이토록 소중히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진리는 늘 차원 높은 곳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인가 보다. 하늘에서 진리의 전파를 잘 받기 위해 오늘도 자리를 지키는 탑들이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모진 세월 속에서 오직 진리만을 바라보며 꿋꿋하게 서 있는 탑을 보며 마음 한 편으로 숭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