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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모르게 쓰는 불교 용어

글 김지윤


아기를 등에 업을 때 필요한 ‘포대기’, 아침과 저녁 사이에 먹는 ‘점심’, 마음을 울리는 ‘심금’. 지금은 일상용어로 한국인이라면 무심코 쓰는 용어지만 불가(佛家)에서 유래된 수행자, 구도자들의 말에서 유래됐다.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들어온 불교는 1400년 조선 태종이 즉위하기 전까지 1000여 년간 국교였다. 태종 이후, 조정에서 억불정책을 펼쳤으나 세조는 불교를 장려하는 등 불교의 힘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 결과 대한민국에서 불교는 산 역사요, 문화다. 꼭 불자(佛子)가 아니어도 불교의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언어다.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 중 불교에서 유래된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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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받쳐주는 ‘포대기’

세계에서도 인정하는 우리네 포대기 문화. 아이를 업는 데 필요한 포대기는 불교의 포단(蒲團)에서 비롯됐는데 이는 여러해살이 풀인 ‘부들’을 엮어서 만든 방석이다. 법당에서 절하거나 명상할 때 깔고 앉는 도톰한 자리로 종교적인 신성함을 강조하는 소품이다. 포단은 포대기뿐만 아니라 군대에서 모포와 짝을 이루는 이불을 가리킬 때도 쓰인다. 아기를 안전하게 받쳐주는 포대기와 오래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포단. 편리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어머니와 부처의 사랑과 자비를 한 뼘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물건이다.


많아도 정말 많아 ‘무진장’

“자갈이 무진장 많다” “차가 무진장 막힌다” 등 ‘양이 아주 많다’라는 의미로 통용되는 무진장. 없을 무(無), 다할 진(盡), 감출 장(藏)으로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다함이 없는 창고’다. 이는 닦고 닦아도 다함이 없는 부처의 뜻을 가리키는 말로 ‘부처의 무진한 덕이 광대해 한량없다’는 의미다. 불교 경전 <유마경> 중 불도품에는 ‘빈궁한 중생을 돕는 것이 무진장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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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 소리가 울리는 ‘심금’

진한 감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움직임을 ‘심금(心琴)’이라고 한다. ‘마음의 거문고’란 뜻을 지닌 심금은 부처의 제자 스로오나의 고행에서 비롯됐다. 스로오 나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행길에 나선다. 밤낮없이 수행에 매진했으나 깨달음은 그에게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서서히 지치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본 부처는 제자에게 “거문고를 타본 일이 있는가”라면서 “거문고는 줄이 너무 팽팽해도 너무 느슨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수행이 너무 강하면 들뜨게 되고 너무 약하면 게을러진다. 이와 같이 몸과 마음이 어울려 알맞게 해야 한다”며 수행을 거문고 연주로 비유해 설했다. 부처의 가르침으로 스로오나는 마음을 바로잡아 자신에게 맞는 수행을 찾아 깨달음의 경지에 올랐다. 이처럼 심금은 공감할 수 있는 일을 보고, 듣고, 느꼈을 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울림을 거문고 연주에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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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 그리고 ‘말세’

요즘 tvN ‘삼시세끼’가 시청자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유명 배우들이 나와 산촌에서 어촌에서 직접 재료를 찾아 나서고 정성을 다해 뚝딱뚝딱 밥을 해 내는 모습에 많은 이가 즐거워하고 있다. 불교에서 석가가 입멸한 뒤의 시대를 정법(正法), 상법(像法), 말법(末法)의 삼시(三時)로 구분한다. 석가가 입멸한 후 500~1000년간을 정법시대, 천 년 이후를 상법시대, 그 이후 이어지는 만 년은 말법시대다. 정법시대에는 가르침과 실천, 법이 모두 갖춰진 시대로 완벽한 시대다. 상법시대에는 가르침과 실천만 있고, 말법시대는 곧 말세(末世)로 가르침만 있을 뿐이다. 말세가 지나면 가르침마저 들을 수 없는 법멸(法滅)시대가 온다는 게 불가의 가르침이다. 말세에는 다섯 가지 혼탁하고 악한 일이 일어난다. 전쟁·질병·기근 등이 일어나고, 사회 환경이 어지럽혀지며, 그릇된 사상이 만연되고, 인간의 자질이 저하되며, 수명이 짧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패된 채로 세상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륵불이 나타나 중생을 구하는 ‘미륵불의 시대’가 도래한다.



아침·저녁과 다른 ‘점심’

삼시세끼에서 점심(點心)은 불가에서 승려들이 쓰는 용어였다. 아침과 저녁은 때와 끼니를 의미하지만 점심은 오로지 끼니만을 일컫는다. 선종에서 선승들이 수도를 하다가 허기가 질 때 정해진 시간 외에 아주 조금 먹는 음식을 일러 점심이라고 지칭했다. 점심은 ‘마음에 점을 찍듯 먹는다’는 의미로 하루 중 간단하게 먹는 간식을 뜻한다.


사랑의 속삭임 ‘밀어’

밀어는 사랑하는 연인이 은밀하게 속삭이는 달콤한 말이거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다른 이가 알아듣지 못하게 말하는 것을 뜻한다. 밀어에 쓰이는 ‘빽빽할 밀(密)’은 갓머리(宀) 아래에 쓰인 한자가 신전의 깊숙한 곳에 은밀히 신이 모셔진 모양을 나타낸다. 즉 신을 모신 집과 같이 ‘나무가 무성한 산’ ‘은밀하다’ ‘자상하게 널리미치다’라는 의미가 있다. 불가에서 밀어(密語)는 ‘부처의 가르침을 전한다’는 것으로 부처가 참된 진리를 중생이 알기 쉽게 설명한 말씀을 뜻한다.


개신교에서 더 많이 쓰이는 ‘장로’

성경 곳곳에 ‘장로’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또한 개신교 가운데 장로교를 중심으로 몇몇 교단에서 장로가 하나의 직분이다. 하지만 장로의 원조는 불교다. 불가에서 장로(長老)는 ‘지혜와 덕망이 높고 속세 나이가 아닌 불가 나이가 많은 스님’을 지칭한다. 선종에서는 사찰의 주지 스님에 대한 존칭으로 쓰이며, 불교 경전 중 <아함경>에는 연기장로·법장로·작장로 등으로 구분한다. 연기장로(年耆長老)는 부처의 가르침으로 출가한 지 오래된 스님, 법장로(法長老)는 교법에 정통하고 학덕이 높은 수행자, 작장로(作長老)는 세속에 거짓으로 출가한 그저 이름뿐인 장로를 말한다.

건달, 인연, 이판사판, 짐승, 천생연분, 현관 등 일상용어의 상당수가 불교에서 유래됐다. 불가에서 쓰이는 차원 높은 단어가 중생에게 내려오면서 이제는 일상적이고 친근하게 됐다. 부처의 밀어가 대중에게 다가온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