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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으로 본 1900년대
예루살렘
 
글 백은영 사진제공 정성길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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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진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무단 사용 시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The Grotto of the Nativity(예수가 탄생한 마구간)

2000년 전 한 아이가 태어났다. 유대 땅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에서 태어난 이 남자아이는 인류의 역사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세계 3대 종교 중 하나인 기독교의 시작을 알렸다. 아담 범죄 이후 죄악 많은 세상에서, 인류를 죄로부터 해방시키고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온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비록 초라한 말구유에서 태어났지만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진 그의 사랑과 희생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값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중략)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마태복음 2장 1~6절)”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누가복음 2장 4~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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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epherds' Fields and Bethlehem(베들레헴 목동들의 초원)

유대 베들레헴의 옛 지명은 에브랏(창세기 48장 7절)으로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약 8㎞ 지점에 위치해 있다. 미가 선지자는 메시아(예수)가 태어날 곳을 예언하면서 씨족의 이름을 따서(역대상 2장 51~54절) ‘베들레헴 에브라다’로 부르기도 했다(미가 5장 2절). 미가서의 예언은 2000년 전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남으로 성취됐다(마태복음 2장 1~6절).

베들레헴은 ‘떡(빵) 집’이라는 뜻이며, 예수 탄생 이전에도 이스라엘의 유명 한 왕 다윗의 고향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가 5장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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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ower of David(다윗의 망대)

최근 예수가 빌라도 총독으로부터 재판받았던 장소로 추정되는 건물이 발견돼 이슈가 된 바 있다. 이 장소는 다윗의 망대 안에 있는 박물관 확장 공사과정에서 발견하됐으며, 이곳이 재판장소로 확인되면 기독교인들의 순례길인 ‘고난의 길(Via Dolorosa)’의 출발점도 바뀔 것이라고 한다.

다윗의 망대는 예루살렘 성의 요빠문(Jaffa gate) 옆 성벽에 위치한 요새와 망루를 말한다. 다윗의 망대 안에는 히스기야시대(B.C. 7세기)의 성벽, 헤스모니안시대(B.C. 2세기)의 요새, 헤롯시대의 망대, 비잔틴시대의 유적, 십자군시대의 요새와 해자, 맘룩시대의 모스크, 오스만터키시대의 첨탑 등이 남아있다.

헤롯왕은 3년에 걸쳐(B.C. 37~34) 예루살렘의 방어 및 시온산 기슭에 위치한 왕궁 보호를 위해 파사엘(Phasael, 헤롯의 형), 미리암(Miriam, 헤롯의 부인), 히피쿠스(Hippicus, 헤롯의 친구) 등 세 개의 거대한 망대를 건설했다.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것은 높이 44m에 달했던 파사엘 망대로 아래 기초부분만 헤롯시대의 유적이며, 작은 돌들로 쌓여진 것은 맘룩시대(Mameluk)에 재건된 것이다.

오늘날의 파사엘 망대(다윗의 망대)는 직사각형 모양으로 1967년 6일전쟁이후부터 이스라엘이 통치하면서 문화적 기능을 회복했으며, 다윗의 망대 내부에는 예루살렘의 역사를 시대적으로 구분해 알기 쉽게 전시해놓은 예루살렘역사박물관이 있다.

방어와 보호를 목적으로 아무리 견고한 망대를 세울지라도 인간이 지은 성과 망대는 결국 무너지고 쇠하여질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성경 역사를 통해 익히 알고 있다. 또한 영원히 쇠하지 않는 견고한 망대는 오직 우리의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잠언 18장 10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찌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셀라) (시편 46편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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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ews' Wailing Place(통곡의 벽)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루살렘 성전의 서쪽 일부라고 여겨 ‘서쪽벽(Western Wall)’이라고도 부른다. 구 예루살렘 시가지의 동편에 있으며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성지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예루살렘 성전은 두 번의 건축과 두 번의 파괴를 경험하게 된다. B.C. 950년경 솔로몬에 의해 건축된 제1성전(솔로몬성전)은 B.C.586년 바벨론에 의해 파괴됐으며, 제2성전(스룹바벨성전)은 B.C. 515년경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총독, 즉 유다 총독인 스룹바벨의 지시로 재건하게 된다. 이 성전은 헤롯왕 시절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통해 웅장한 모습을 갖추게 됐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에 있던 성전이 바로 이 성전으로 A.D.70년 로마에 의해 파괴된다.

이 성벽이 ‘통곡의 벽’으로 불리는 데는 다음 두 가지 유래가 있다. 하나는 예수가 죽은 뒤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해 많은 유대인을 죽였는데 이 같은 비극을 지켜본 성벽이 밤만 되면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유대인들이 성벽 앞에 모여 성전이 파괴된 것을 슬퍼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다.

통곡의 벽은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 사이의 오랜 분쟁거리로 유대인들에게는 ‘약속의 땅’인 이스라엘의 상징이지만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에게는 바위사원과 알 아크사 모스크에 속한 이슬람 성지로 생각한다.
 
1948년 5월 14일 고토로 돌아와 나라를 재건한 유대인들은 그 옛날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나라를 재건했던 선조들처럼 성전 재건을 바랐지만 지금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자리에는 이슬람의 제3의 성지로 알려진 ‘황금돔 사원(the Dome of the Rock)’이 세워져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태복음 24장 1~2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요한복음 2장 19~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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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정성길(73)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관동대지진위령탑건립추진위원장
 
•기록사진보존연구소 소장
•제19회 문화공보부 추천도서 선정
•저서 : 사진자료집 百年前의 韓國, 韓國의 百年, 韓國의 100년年史
          日帝의 侵略史, 日帝侵略時代, 일제가 강점한 조선
•사진 자료 7만여 점, 유리원판 필름 3500장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