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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일라이>
 
무법시대 ‘희망의 씨앗’ 움트다
 
영화 <일라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문구가 떠오르게 한다. 인간은 있지만, 사람답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오직 주인공만이 깨어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은 꼭 맞나보다. 영화는 불운의 시대를 끝내고자 하는 이의 오랜 인내를 통해 희망을 암시하며 끝난다.
 
글 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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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43년. 알 수 없는 자연재앙으로 지구가 폐허가 된 지 30년이 지났다. 오존층의 파괴로 사람들은 선글라스 없이는 바깥에 나가지 못하고 부족한 물과 식량을 놓고 서로 싸운다.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사는 무법의 도시다. 재앙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글을 모른다. 책 앞에서 눈 뜬 장님이다. 영화 <일라이(2010)>의 배경이다.
 
알버트 휴즈와 알렌 휴즈가 공동 감독한 <일라이>의 원제는 ‘The book of Eli(일라이의 책)’다. 영화는 미국 작가 코맥 매카시의 <더 로드(The Road)>를 떠올리게 한다. 지구가 재앙을 당해서 생존자들은 야만적인 삶을 살아가고, 주인공이 희망을 찾으러 나선다는 점, 성경의 계시록을 따르는 것 등에서 두 작품은 유사하다. <더 로드>는 2007년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이후 영화화 된 작품이다.

영화 <일라이>는 조금 특이하다. 그날 이후 30년이 지났다는 설정에는 많은 것이 함축됐다. 끔찍한 대재앙에서 살아남은 인류. 하지만 그날 이전의 사람들, 즉 과거 정상적인 세상을 살았던 구세대는 별로 없다. 그날 이후 태어난 세대는 삭막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오직 생존하기 위해 길러졌다. 글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고,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지식과 문명의 혜택을 전혀모른 채 살아간다. 이들의 적은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인육을 먹는 식인들이다. 이러한 설정만으로도 공포스럽다.
 
   

일라이의 특별한 책

일라이(덴젤 워싱턴)는 소리 없이 강하다. 긴 칼과 총으로 무장하고 뛰어난 무술 실력까지 갖췄다. 서쪽 어딘가 있는 재건 도시로 향한다. 배낭에는 인류 최고의 희망 ‘일라이의 특별한 책’이있다. 하지만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 일라이가 갖고 있는 책을 찾는 카네기(게리 올드먼) 일당이 그의 앞길을 막는다.
 
그 특별한 책은 성경이다. 일라이는 성경을 늘 천으로 두르고 소중히 여긴다. 밤마다 자기 전에 성경을 보며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먼지처럼 날아가지 않도록 염원한다. 사람들에게 책은 아무 쓸모없는 것이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 글을 읽는 이들에게 성경은 가치 있다. 그렇기에 일라이도 카네기도 재건도시 사람들에게도 성경은 ‘잇 북(It Book, 꼭 필요한 책)’이다.
 
우여곡절 끝에 일라이와 그를 따라나선 ‘그날 이후’ 세대인 솔라라(밀라 쿠니스)는 알카트라즈 섬에 도착한다. 섬에는 인류의 책을 복원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오는 도중, 카네기에게 성경을 빼앗긴 일라이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머릿속에 있는 성경을 외우기 시작한다. 그렇게 복원된 성경은 도서관에 꽂힌다.
 
 
뚜렷한 선악 대비
 
일라이와 카네기는 선과 악으로 구분된다. 같은 성경을 중요시하지만 일라이는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카네기는 세상을 지배하기 위한 도구로써 사용 목적이 다르다. 성경은 어떠한 마음을 가진 이에게 가느냐에 따라 희망의 싹이 되기도 하고 지배자의 욕구를 채워주는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성경을 갖기 위해 사람 목숨도 수단으로 여긴 카네기.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또 죽인다. 반면 일라이는 사람 사냥꾼, 카네기 악당에 한해서만 살생을 저지르는데, 꼭 참회 기도를 한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들에 대한 죄책감을 신에게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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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라이가 솔라라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성경을 카네기에 건네는 장면에서도 일라이와 카네기의 차이점을 볼 수 있다. 영화는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자비,인: 仁)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이를 행하는 한 사람의 삶을 구도의 길로 그려낸다. 결국 성경에서도 사랑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성경을 가지려고 한 카네기는 결국 그간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인 원성으로 최후를 맞는다. 사실 일라이와 카네기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습이다. 알버트와 알렌 형제 감독은 인간의 선악을 일라이와 카네기에 각각 부여한 것이다.

권선징악. 영화의 결론은 그렇다. 카네기는 일라이의 특별한 책을 가졌지만 읽을 수 없다. 글을 읽는 카네기지만, 그는 점자를 읽을 수 없다. 자신의 볼모이자 부인으로 보이는 맹인 여자에게 읽고 말하라고 하지만, 그는 이제 이빨 빠진 호랑이다. 그간 수모를 겪은 맹인 여자는 그의 뜻대로 하지 않고 그를 떠난다.

 
 
눈 뜬 맹인
 
영화에서 세 부류의 눈 뜬 맹인이 있다. 사물은 보이지만 글을 모르는 ‘그날 이후 세대’와 글을 읽을 수 있으나 점자를 몰라 성경을 읽지 못하는 카네기. 그리고 정말 눈 먼 일라이. 반전이라면 반전일 수도 있는 대목이 일라이가 맹인이라는 사실이다. 일라이의 재빠른 무술과 싸움 기술은 그저 시각을 뺀 나머지 감각으로 진행됐다는 사실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성경에서도 여러 곳에서 소경(맹인)에 대한 내용이 등장한다. 일라이처럼 육적으로 눈 먼 소경, 성경 글씨는 읽어도 그 뜻을 모르는 눈 뜬 소경이다. 성경뿐만이 아니라 우리 역시 일상에서 보고도 모르는 게 많지 않은가. <일라이>는 여러 가지 생각할 점이 많은 영화다.

일라이가 누구인지, 왜 그 일을 해야만 하는지 등 논리정연하고 이성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일라이는 그저 신의 계시를 받고 신의 음성이 적힌 유일한 성경을 인류에게 다시금 전파할 수 있도록 하는 사명을 해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하지만 이보다 차원 높은 질문들이 관객에게 던져진다.
 
 
 
감상 ★★★★☆
액션보다 영감을 주는 영화입니다.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또는 나의 현재 모습이 선악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되돌아볼 수 있네요. 카네기가 성경을 소유하게 됐지만 점자 성경이어서 볼 수 없는 장면을 볼 땐 마치 신이 먹지 말란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로부터 생명나무를 지키려고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둔 장면(창세기 3:24)이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