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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삼계탕,

모던불고기?

한식 DNA는 그대로!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윤숙자 소장


글. 김일녀 사진. 박준성 사진제공. 한국전통음식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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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빛 저고리에 고동색 치마, 정갈하게 올린 머리와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는 말투와 표정.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느껴지는 모습이다. 부러 꾸민다고 해서는 전해지지 않는, 내면에서부터 어우러져 나오는 자연스러움이다. 40년 가까이 한 길을 걸어왔으니 당연한 모습일지 모르겠다. 한국의 전통음식을 제대로 계승하면서도 이를 재해석한 모던 한식을 통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일. 바로 윤숙자(69)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소장의 삶이자 비전이다.



오늘의 이 길을 걷게 해준 어머니
윤숙자 소장의 발은 특이하게도 두 번째 발가락이 양쪽 발가락 위로 올라가 있다. 어렸을때 어머니가 항상 한복을 입혔고, 버선을 신겼기 때문이다. 지금도 평소 한복을 입고 생활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그가 전통음식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종갓집 며느리였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4남매 중 막내딸이었던 그는 늘 어머니 곁을 따라 다니며 자연스럽게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다양한 전통 한식을 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당시 국민학교 선생님이었던 어머니 답게 다른 형제들에게는 엄했지만 막내딸에게만큼은 자애로우셨다고 한다.

윤 소장이 3살 되던 해, 6·25전쟁이 터졌다. 개성에서 부랴부랴 피난을 내려왔다. 그 길이 부모와의 마지막이 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버지는 그만 화병을 얻었고 몸도 많이 상했다.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꿋꿋하게 4남매를 키웠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윤 소장은 1980년부터 본격적으로 한식의 길에 들어섰다. 당시 요리의 대가였던 고(故) 왕준련 선생이 설립한 한국식생활개발연구회에서 근무하다가, 1988년 춘천간호보건전문대학(현 춘천한림성심대학)에 국내 최초로 개설된 전통조리학과 학과장을 맡아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이후 한동안 서울 배화여자대학교에서도 교수직을 맡고 있다가 2000년도 개관한 농림부 산하 사단법인 한국전통음식연구소의 교육생이 많아지면서 교수직은 그만두고 연구소에만 집중하게 됐다. 지난해 4월에는 한식재단 이사장에 취임해 더욱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치고 있다.
   
표준화란 맛의 획일화 아닌 조리의 과학”
한국전통음식연구소는 그의 열정의 집약체이다. 남편을 설득해 사비를 들여 건물을 마련하고, 전통 한식의 계승과 세계화를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설립한 지 20여 년, 이제는 전통음식을 연구·교육하고 홍보하는 전문기관이자 문화공간으로서 어엿하게 자리 잡았다.

1층 떡카페 ‘질시루’와 2~3층의 떡박물관, 사무실로 쓰는 2개 층을 제외한 나머지 층이 모두 교육 장소다.

연구소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우선 이곳에서 1400년대부터 600년간의 고조리서를 재현해냈다. 이후엔 한식의 표준화를 위해 힘썼다. ‘적당히’ ‘한줌’ ‘한소끔’ 등으로 애매하게 표현된 한식 조리법을 세계 공용 기준인 g, ㎜, ㎝, min 등으로 표기해 선보인 것이다.

재료의 양과 조리 시간뿐만 아니라 불의 세기와 조리 도구 등도 표준화했다. 이렇게 하면 전 세계 어느 누가 조리해도 한식의 맛을 재현해 낼 수 있으니, 한식 세계화의 기반이 마련되는 셈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조리법의 표준화를 맛의 획일화로 오해하는 시각도 있어 안타깝다는 그는 “표준화란 조리에 과학을 담은 것일 뿐”이라며 “전국의 향토음식은 그대로 유지하면 된다”고 말했다.



한식의 매력, 특징이 궁금합니다.
전통 한식은 상고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먹어온, 재료나 조리법, 담는 방법이 변하지 않은 음식을 말하고 이보다 광범위한 한식은 상고시대부터 오늘까지 우리가 먹었던 모든 음식을 의미해요. 한식의 특징은 서양음식과 달리 한 상에 여러 가지 음식을 차려내는 ‘반상차림’으로, 다양한 맛을 음미할 수 있고 고른 영양을 섭취할 수 있어요. 같은 재료를 쓰더라도 조리법이 겹치지 않아 다양한 요리가 가능하고요. 또한 우리나라는 4계절의 변화가 뚜렷해 철마다 다양한 식재료로 만드는 시절음식과 자연식이 특징이죠. 특히 즉석에서 해먹는 음식보다 간장, 된장, 술, 식초, 젓갈 등 숙성·발효된 음식이 많아요. 여기에 오방색의 식재료와 양념 및 고명은 음식의 맛과 멋뿐만 아니라 영양까지 더해주는데, 이는 ‘밥이 보약’이라는 ‘약식동원(藥食同源) 사상’을 실현한 것이죠.

최근 해외에서의
한식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요?

3년 전 일이예요. 프랑스 파리에 가서 체류하는 동안 한 비빔밥 집에 자주 갔었는데 손님은 거의 현지인이었어요.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밥을 먹은 후 K팝을 흥얼거리며 나가는 모습을 보고 ‘아, 이거다’라고 생각했어요. 한식을 통해 한국의 문화를 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해외에서 중국과 일본 음식에 이어 한식이 뜨기 시작한 지는 이제 4~5년 됐어요.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것도 2013년이고요. 현재 외국에서 가장 흥미롭게 보고, 또 배우고 싶어하는 음식이 바로 한국의 대표적 발효음식인 된장, 고추장, 식초, 전통주 등이죠.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어떤 일을 해오셨나요?
이미 수많은 외국에 가서 한식을 가르치고 전시하고 알렸어요. 또한 ‘아름다운 한국음식 300선, 100선’을 발간, 8개국 언어로 번역해 세계인들이 한식을 더 가깝게 접할 수 있도록 했고요. 해외 유명 호텔의 조리사나 현지 대학 교수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해 한식이 호텔 메뉴에 오르거나, 한식 과목이 개설되도록 하는 일도 추진 중이죠. 앞으로도 다양한 교육과 교류를 통해 한식의 부흥을 이어갈 생각이예요.

생활상이 변해 갈수록
한식의 자리는 좁아지는 게 아닐까요?
우선 한식당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시대에 맞는 단품 상차림을 개발해내야 해요. 많은 메뉴를 내놓기보다 약선, 한방, 향토 등 한식을 분야별로 나눠 세분화할 필요가 있어요. 한식 메뉴에 맞는 술을 서비스로 내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지방마다 민속주가 많아요. 실제 작년부터 서울·경기·강원지역의 식당 경영주들을 초청해 관련 교육을 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마침 작년 2월 소규모주류 제조면허제를 취득하면 누구나 술을 만들어 팔 수 있는 규정이 공표되기도 했고요. 그래서 올해부터는 서울부터 전국의 모범식당 등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에요. 이를 통해 한식당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국민이 먼저 한식의 가치를 알고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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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삼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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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불고기
 


1년여 앞으로 다가온 2018 평창동계올림픽 식음료전문위원을 맡고 있는 윤 소장은 한식재단을 통해 ‘세계인이 좋아하는 한식 10선’을 선정해 내놨다. 이를 통해 올림픽에 참가할 선수들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식의 매력과 우수함을 알리고자 한다. 10선에 선정된 음식은 전통 한식의 맛과 영양은 그대로 살리되,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고 먹는 이를 고려해 만든 모던 한식들이다. 그중 하나인 ‘롤삼계탕’을 예로 들어보면 재료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삼계탕 재료 그대로다. 다만 이름처럼 롤 형태의 삼계탕으로 한 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다. 닭의 뼈를 제거한 후 찹쌀, 인삼 등의 재료를 넣고 롤 형태로 말아 한약재를 넣어 끓인 맑은 국물과 함께 내놓는 요리다.


인터뷰는 윤 소장의 첫인상 대로였다. 한마디로 한식의 전통과 현대의 조화. 삼계탕이 롤을 만나고, 떡갈비가 번(Bun)을 만나 새로운 맛과 모양으로 탄생하면서도 그 안에 깃든 정체성은 그대로이듯 말이다. 연구소를 맡고 있는 이상 그의 첫인상은 더 짙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