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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세계적인 차
생산지를 꿈꾸다


윤여목 백두대간 우리차연구소 대표


글, 사진. 백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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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목 백두대간 우리차연구소 대표
 


따뜻한 차 한 잔이 생각나는 계절. 어쩌면 겨울은 그 이름이 주는 차가움보다 따뜻함이 더 어울리는 계절인지도 모른다. 찬바람에 옷깃을 한껏 여미며 인사동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전통찻집과 갤러리, 한국전통공예품을 파는 곳들이 즐비한 곳, 그 어디쯤엔가 위치한 ‘채다헌(彩茶軒)’. 사람들이 오가며 따뜻한 차 한 잔 나눌 수 있는 채다헌은 한국 차(茶)의 무한한 가능성을 꿈꾸는 윤여목 백두대간 우리차연구소 대표가 마련한 작은 다실(茶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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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목 대표가 출판사 한 켠에 마련한 작은 다실 채다헌에 있는 각종 다기(茶器)
 



30년 경력의 출판 편집자, 태백산에서 차농사를 짓다
“‘일상다반사’라는 말이 있어요. 어떤 일이 빈번하게 일어날 때 쓰는 말인데, 여기서 ‘다’는 차 다(茶)자를 써요. 차 마시는 일이 밥 먹는 것처럼 보통 있는 예사로운 일이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차 마시는 일이 흔하지 않죠. 차를 제대로 마시려면 다기(茶器)도 갖춰져야 하고, 차를 우리고 서로의 잔에 나누고, 그 향과 맛을 음미하며 마시는 일이 요즘 같이 바쁜 시대에 결코 쉽지 않은 일이 돼버렸어요.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문화 속에서 인문학도 살아나고,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지혜도 나눌 수 있는데 그 점이 못내 아쉬워요.”

17년 경력의 차 품종연구가이자 기후・지질 등 환경에 맞는 차 재배법, 품종에 따라 차를 만드는 제다법을 연구하고 있는 윤여목 대표. 태백산 봉화에서 직접 차를 재배하고, 덖고 있지만 사실 그의 본업은 30년 경력의 출판 편집자다.

30여 년 전 인사동에 자리한 초롱출판사의 실장이자, 베테랑 편집기술자인 윤 대표가 차를 가까이 접하게 된 것은 이십대 중후반쯤이었다. 그가 몸담고 있는 출판사가 주로 불교서적을 출판하는 곳이라 자연스레 많은 스님들과 교우하게 되고, 차를 좋아하시는 선방 스님들로부터 가랑비에 옷 젖듯 차를 접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때부터 ‘차 마니아’가 된 것이다.

“차를 많이 접하다보니 우리 차의 한계를 느끼게 됐어요. 우리나라의 과일이나 채소, 인삼, 약초 등은 중국이나 대만보다 맛에서나 영양에서 결코 뒤지지 않아요. 오히려 훨씬 더 좋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유독 차에 있어서는 중국이나 대만에 명함도 못 내밀고 있어요. 안타까운 현실이죠. 그래서 차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책을 출판하면서 종종 차에 대한 논문집도 만들다 보니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윤 대표. 오랜 공부와 연구 끝에 그가 찾아낸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먼저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질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었어요. 차를 재배하거나 차를 다루는 사람들, 소위 말하는 차인(茶人)들이 차를 문화적인 측면에서만 부각시켰다는 것이죠. 그렇다보니 다도(茶道)와 같은 외형에만 치중해 정작 차의 품종이나 재배법, 제다법에 있어서는 소홀하지는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번째 원인은 논문집을 편집하면서 접했던 학설들에서 찾았다. 예를 들어 차나무는 옮겨 심으면 죽는다든지, 꺾꽂이를 하면 뿌리가 깊이 내리지 못해 동해(凍害, 어는 피해)에 약하다든가 하는 학설이 근간을 이루다보니 차 품종이나 재배법 등에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윤 대표는 “나중에 알아보니 중국은 이미 송나라, 명나라 때 무성번식법을 쓰고 있었다”며 “이는 차를 연구한다는 사람들이 책상 앞에 앉아 펜으로만 연구했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중국에서 공부하고 온 사람들 중에도 ‘강남의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귤화위지, 橘化爲枳)’는 말을 인용해 품종이 다른 중국차를 우리 땅에 심으면 우리의 녹차 품종으로 변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라면서 “어떻게 이런 사고를 할 수 있는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윤 대표가 우리나라의 차 산업이 발전할 수 없었던 원인으로 찾은 것은 먼저 차 세계에 입문한 선배들이나 차를 파는 상인들이 하는 말에 현혹돼 차를 접하는 초심자들이 잘못된 사실조차 진실인양 받아들이게 됐다는 점이다.


결국 잘못된 학설들과 고정관념, 외형적인 부분에만 치중한 나머지 차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 윤 대표의 생각이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그는, 고민할 틈도 없이 차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보다 좋은 품종의 차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지식이 탄탄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차의 기원부터 시작해 차의 역사, 차의 품종 등 차에 관련된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그저 차가 좋아 시작했던 공부가 지금은 그를 차 품종 및 재배법 연구 등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루게 했다. 허나 그의 주장들 중에는 이미 차인들이나 차 재배 농인들 사이에 정설로 굳어있는 학설이나 이론, 재배법들을 뒤집어 놓는 것들도 있어 조심스럽다는 그다. 그럼에도 이제는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펼치겠다고 말한다. 이유는 단 하나다. 제대로 된 차를 만들기 위해서다.
   
커피에 밀린 차(茶), 대안은‘ 홍차’다
“제가 차에 푹 빠져있던 어느 날 ‘우리 녹차는 만들어야 팔리지 않고 차 농가들이 차밭을 갈아엎는다’는 얘기를 듣게 됐어요. 대세인 커피에 밀린 거죠.이때 제가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홍차’를 만들자는 것이었어요.”

물론 홍차를 만들자는 그의 말에 코웃음을 친 사람들이 적지 않다. 평생 녹차를 가꾸고 만들어 온 칠십대의 한 지인은 윤 대표에게 “우리 차는 홍차를 만들 수 없는 품종”이라고 못 박기도 했다. “그렇다면 내가 한번 직접 만들어보자!” 그렇게 윤 대표는 정읍에 내려가 다원을 하나 빌려 직접 홍차를 만들었다. 차를 만드는 기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시작했던 터라 처음에는 제대로 된 맛이 나오지 않았지만 노력하면 좋은 홍차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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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표가 만든 녹차의 향과 맛이 과연 일품이다.
 



아직 시판되고 있지는 않지만 그가 직접 재배하고 만든 홍차를 맛보니 그의 확신이 적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대표님이 만든 홍차 시판되면 정말 장난 아닐것 같아요”라는 말에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고 답하는 윤 대표.

그도 그럴 것이 윤 대표가 개량한 20여 종의 품종들 중에서도 좋은 품종들을 선별해 번식시키고 차농가에 보급하는 작업만으로도 할 일이 태산이다. 무성번식법으로 보급하고 재배하려면 시간도 만만치 않다. 일반 재배법보다 손이 많이 가는 데도 그가 무성번식을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차농가를 가보면 대부분 다양한 품종이 섞여 있어요. 그러니 같은 밭에서 딴 찻잎이라고 해도 저마다 맛이 천차만별이죠. 무성번식을 이용하면 단일품종으로 재배가 가능해요. 가령 A, B, C 품종을 각각 무성번식으로 재배하면 나중에 A와 B, B와 C를 블렌딩해도 차의 향과 맛에 대한 기준이 생기게 되는 거죠. 각 품종의 맛과 향에 대한 확실한 기준이 있으니 자기 입맛에 맞게 블렌딩할 수 있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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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표가 직접 재배해서 만든 홍차잎이 다실을 가득 채웠다.
 



윤 대표의 최종 목표는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차 생산지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대만의 경우 차의 청향(淸香)과 맛을 얻기 위해 해발 2000~3000m의 산 위에서 차를 재배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위도가 높아 지리산이나 남도의 경우 그냥 있어도 그들이 선택한 곳의 기후보다 더 좋다고 말하는 윤 대표. 그렇기에 조금만 신경쓰고 연구하면 그 어디에 내놓아도 절대 뒤지지 않는 맛과 향을 지닌 차로 세계속에 우뚝 설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특히 세계 차 시장의 75~80%를 차지하는 홍차를 우리가 직접 만들어 유통할 수 있다면 승산이 있다고 말하는 윤 대표. 그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차에 쏟아온 그의 열정과 시간 그리고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차 생산지가 되는 그날을 꿈꾸며, 차 복원과 차 문화 발전에 더욱 힘을 쏟겠다는 그의 말에서 맑은 향기(淸香)가 느껴진다. 가장 좋은 차를 만들어 ‘너도 좋고 나도 더불어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뛰어든 차의 세계. 그의 욕심 없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향기인가. 꽤 오랜 시간 진행된 인터뷰 내내 그가 내려준 차를 한 모금씩 넘길 때마다 은은하게 청향(淸香)이 느껴졌다. 아직도 그 향이 입가에, 그리고 코끝에 스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