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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판본,

의식을 깨우다


글, 사진. 박선혜 자료제공. 이태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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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판본 <사서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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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호남 지역은 쌀과 종이(한지) 생산의 70%를 차지했다. 당시 호남의 중심지였던 전주는 3대 도시 중 하나로, 유통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특히 전주 전라감영에서 찍어 낸 책들은 충청도와 한양(지금의 서울)까지 팔려 나갔고, 서민부터 양반까지 남녀노소 모두가 쉽게 책을 접할 수 있었다. 당시 ‘완산(完山)’이라 불렸던 전주는 ‘책의 고장’이었다.

완산에서 목판으로 찍은 책, 즉 ‘완판본(完板本)’은 전주를 대표하는 동시에 조선 사람들의 지식 수준을 높이고 개화에 성큼 다가가게 하는 진보한 문화였다.

“완판본을 본 순간 ‘옛 책이겠거니…’ 할 수도 있고, 먼지만 나고 썩어가는 책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단순한 책이 아닙니다. 그 속에 있는 자료 하나하나가 생명과 같이 중요한 역사입니다.”

빛바랜 고서가 가득 쌓여 있고, 오래된 종이 냄새 폴폴 나는 교수실에서 만난 이태영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완판본에 대해 자신 있게 말했다.

10년간의 전주 완판본 연구 내용 일부를 모아 지난 2012년에 <완판본 백선>을 펴낸 그는 전주에서 나고 자란 그야말로 ‘전주 사람’이다. ‘완판본’ 연구와 집대성을 누군가 해야 한다면 자신이 그 누군가라고 말하는 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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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판본 <동의보감>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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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판본 필사본 <심청전> 가운데 확대
 




다음은 이 교수와의 일문일답.

‘완판본’이란
완판본이란 말은 국어사전에 설명돼 있다. 사전에서는 서울에서 나온 경판본 고전소설과 대비 해 완판본 고전소설을 통틀어 말한다. 또 완판본 한글 고전소설에는 사투리가 많이 나온다고 돼 있다. 오래전 국문학 선배들은 전주 완판본 중에 <춘향전>과 <심청전>을 보고 경판본과 너무 차이가 나 놀랐다. 그래서 구분을 짓기 위해 서울에서 나온 것은 경판본이라 하고, 전주에서 나온 것은 완판본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완판본의 ‘완(完)’은 완산(옛 전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즉 전주에서 목판으로 찍은 책이다. 그러나 고전소설로 한정 짓지 않고 전주에서 나온 옛 책을 모두 완판본이라 한다. 더 넓은 의미로는 책을 찍어 내던 국가 기관인 전라감영이 전주에 있었기 때문에 호남에서 나온 옛 책을 완판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호남의 중심지였던 전주 입장에서는 ‘완판본은 전주에서 나온 옛 책’이라는 의미로 굳어졌다.

전주에서 찍은 책은 정말 많다. 같은 제목의 책을 두세 권 찍어내기도 했다. 완판본 종류 중에 현재 확인된 집계는 감영본(전라감영에서 찍어 낸책) 70여 권(책 제목만), 방각본 100 종류 이상(1본만), 주문받아 판매하기 직전에 찍은 사간본은 300 종류가 넘는다. 사찰본도 100여 종류가 있다.

‘완판본’은 어떻게 등장하게 됐나
전주는 쌀과 종이 생산이 잘 됐다. 이 지역 사람들은 쌀농사를 많이 짓다 보니 중농(부유해지는)이 되고, 한지를 생산해 장사한 이익을 남겼다. 그래서 생존의 문제를 벗어나니 여가 문화를 통한 즐거움을 찾게 되고 ‘판소리’라는 음악과 가까워졌다. 음악을 듣다 보니 음악의 내용이 소설처럼 정말 재밌었다. 예로부터 옛이야기가 많았는데, 남원의 ‘춘향 이야기(춘향전)’가 대표적이다. 바다에서는 무가(무속인 노래)가 나왔고, 이 이야기들에 음을 붙여 발전된 것이 판소리다.

판소리 내용을 보면 그 시대에 서민은 물론이고 양반들이 추구했던 유교문화, 충(忠), 효(孝)와 상당히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열여춘향수절가’ ‘심청가’ ‘적벽가’ 등이 충과 효를 다뤘다. 그러다보니 양반뿐만 아니라 서민들도 듣게 됐고, 서민들을 위해 한글로 보고 읽기 쉬운 완판본을 펴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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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에 양각으로 새긴 글씨
 



전라감영에서 숙련된 각수(판에 글씨를 새기는사람)들이 나라의 명을 받아 책을 만들었는데, 이들이 후에는 감영을 나와 완판본을 찍었다. 판매용 책을 ‘방각본’이라 한다. 전주에서 찍은 방각본은 ‘완판방각본’이라고도 부른다. 서울과 전주는 가장 많은 방각본을 찍는 곳으로 유명했다.

전주에서 출판한 ‘완판본’은 서민들도
볼 수 있었나
한글 정자체로 반듯하게 쓴 완판본은 서민들이 보고 읽기 쉬웠다. 또 소설은 내용이 재미있어 호감이 가고, 읽기 쉬울 뿐만 아니라 한글 공부하는데도 도움이 됐다. 고전소설을 포함해 의서, 백과사전, 소설, 어린이 교육용 천자문, 옥편, 천기 관련 책 등 종류가 매우 다양해 남녀노소 누구나 볼 수 있었다.

당시 지역 사람들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책을 찍은 것이 아니라, 수요자가 있으므로 찍은 것이다. 그 수요자는 서울 사람이 아닌 호남 사람(전라도, 제주도)이었다. 그래서 호남 사람은 책을 통해 제일 먼저 혜택을 받았고, 충청도 등지로도 소문이 퍼져 책 판매를 위해 많이 찍게 됐다. 많은 사람이 책을 자주 보니 당연히 지식인이 돼 가고, 근대화가 진행됐으며, 생각이 넓어지면서 의식 수준을 높였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시대에 중국 상해에서도 많은 책을 찍어 냈다. 중국의 책들도 서울을 거쳐 전주로 들어왔다. 그만큼 유기적 관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단순한 책이 아닙니다.
그 속에 있는 자료 하나하나가
생명과 같이 중요한 역사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박람회나 세계도서전을 통해 각 나라에서 역사를 뽐낸다. 책을 보면 우리 조상들이 외국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 드러난다. 명나라에 대한 좋은 관계도 나와 있고, 중국 책들도 많이 읽은 것이 드러난다. 그러나 주체적으로 중국의 연호를 쓰지 않으려고 했던 독립된 정신도 엿볼 수 있다.

완판본 연구는 언제부터,
<완판본 백선>은 어떤 계기로 엮게 됐나
국어사를 전공했다. <훈민정음>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등의 고문헌을 자주 볼 수밖에 없는데, 저절로 서지학을 공부하게 된다. 전주가 고향이다 보니 전주에서 나온 책에 관심을 두게 됐고, 완판본에 대한 연구와 수집을 계속하고 있다. 책을 모으고 수집한 것은 25년, 책을 어느 정도 모으고 본격적으로 연구한 것은 10년 정도다. 학회지에 논문 발표하며 완판본을 꾸준히 알리고 있다.

<완판본 백선>의 표제는 ‘열여춘향수절가’에서 집자한 것이다. ‘열녀춘향수절가체’라 할 수 있다. 전주의 수많은 완판본을 한 번에 볼 수 있게 모은
책이 없었다. 사진과 짧은 설명을 덧붙여 한 권의 책으로도 보기 쉽게 도록으로 만들었다. ‘백선’은 상징적이다. 앞으로 추가해 나갈 계획이다. 완판본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도록 전문연구서도 엮고, 종류별로 묶어 내는 작업도 해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
완판본 관련 논문을 20편 썼는데 10편을 더 모아 30편이 되면 이미지를 함께 넣어 책으로 만들 계획이다. 책을 많이 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 완판본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우리나라의 출판 인쇄 문화를 보며 조상들이 해 놓은 업적이 훌륭한 문화였다는 것을 국민이 알게 하고 싶다. 전주시에서는 완판본에 실린 글꼴을 개발해 시(詩), 비석, 책등에 많이 활용한다. 조선시대 소중한 문화유산 인 ‘완판본’에 대해 전주시민들뿐만 아니라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자부심을 느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