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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맺어준 인연,
두 나무꾼과 나눈 진솔한 이야기


글. 박선혜 사진. 이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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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종보, 김태기 서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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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은산방’ 내부 벽에 걸린 작품들
 



나무향이 진하게 코끝을 스친다. 강원도 원주 흥업면 산자락에 자리한 ‘초은산방’은 나무에 다시 생기를 불어 넣는 곳이다. 단초 심종보 명인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나무들이 의미심장한 글과 어우러져 더욱 진한 향을 내뿜는다.

‘깊은 산 속에 숨은 나무꾼.’ 단초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푸르름이 고리를 두른 화창한 날. 전통서각・장승 명인을 만나기 위해 강원도 원주로 향했다. 단초(端樵) 심종보 명인과 미목(美木) 김태기 명인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초은산방 대표이자 한국예술・문화명인 전문위원, 강원전통문화연구회 회장, (사)한국민술협회전통공예 서각분가 이사, (사)한국각자협회 상임이사, 대외협력위원장, 강원지회장, 심사위원 등 여러 직책을 맡고 있는 단초 심종보 명인은 장승과 인연을 맺고 서각을 하기까지 30여 년간 나무와 벗하며 지금도 함께하고 있다.

미목 김태기 명인은 목조각을 30년간 해왔다. 그러다 나무에 글씨도 새겨보면 어떨까 싶어 수소문해서 찾은 곳이 초은산방이다.

“사부-김태기 명인은 심종보 명인을 이렇게 불렀다-를 만나 서각을 하면서 ‘바로 이거야’ 했죠. 목조각은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았다면, 서각은 또 다른 즐거움을 주더군요.”

미목은 지난 6월 10일 의정부예술의전당 국제회의장 전시장에서 열린 ‘제8회 대한민국 남북 통일 세계환경예술대전’에서 ‘천년바위 아픔은 소리 내지 않으니까’라는 작품으로 종합대상 국회의장상을 수상했다.

   


단초, 단정할 ‘단’ 뗄나무 ‘초’가 저의 호에요.
뗄나무 ‘초’는 나무꾼을 의미하는 명사죠.
저는 깊은 산 속에 숨은 나무꾼입니다.

-<단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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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종보 서각가
 



다음은 심종보(이하 심), 김태기(이하 김) 명인과의 일문일답.

서각이란.
심) 서각은 말 그대로 글을 새기는 겁니다. 전통각과 현대각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통각은 글씨를 그대로 모각하는 것으로, 현판을 예로 들 수 있어요. 전통각은 깊이를 일정하게 하기 위해 칼의 기울기를 40~45°로 일정하게 해야 해요. 그러나 현대각은 글자를 마음대로 조형할 수 있고, 색도 다양하게 쓸 수 있어 요즘에는 현대각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2~3개월만 배워도 쉽게 현대각을 할 수 있어요.


서각은 언제부터 시작.
심) 나무 다루는 것을 워낙 좋아했어요. 특히 ‘장승’을 좋아해서 원래는 장승 조각부터 해왔어요. 어느 날, 장승을 터득하고 몸체에 명문을 넣는데 그냥 쓰면 안 되겠더라고요. 글씨가 악필이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서각을 배워 양각 또는 음각으로 새기면서 나무에 글씨를 새기게 됐어요. 장승은 28년째, 서각은 25년째입니다.

김) 목조각을 30여 년 했어요. 직업이 아니어도 손에서 놓지 않았죠.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조각소도 운영했었어요. 그러다 서각을 알게 됐고, 사부를 만나 세계 대회에서 대상도 받고, 문하생이된 게 영광입니다.

서각의 매력은.
처음 서각할 때나 지금이나 서각에 대한 마음은 똑같아요. 서각의 매력이 바로 이거죠. 서각을 하다 보면 섬세한 각을 위해서 집중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집중하다 보면 온전히 나무와 글씨, 나 자신 이렇게만 남게 되요. 그 순간을 즐기는 거죠. 높은 산을 보면 못 올라갈 것 같지만, 등산을 좋아한다면 거침없이 올라가잖아요. 오랜 작업으로 몸이 아파도 집중하면 몰입하게 되고, 완성하면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죠.


김) 서각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정말 재미있어요. 내가 즐겁고 좋아서 하는 것이지 누가 시키면 안 하죠. 서각은 정말 재미있는 작업이에요. 글만 써서 새기는 것이 다가 아니에요. 색도 칠하고, 전각(도장 새기는 것)도 넣어야 서각을 완성한 겁니다.

심) 서각은 각을 하는 방법에 따라 표현이 달라지지만, 무엇이든 각을 할 수 있어요. 원칙이 없는거죠. 하지만 어우러짐은 있어요. 내가 돋보이고 자 한 것이 남들 눈에도 돋보이면 각을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있죠. 돋보이게 하는 것이 각의 멋이에요.


‘천년바위 아픔은…’ 작품으로 대상을 받았다.
김) 전화로 통보받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시상식에서 “종합대상 미목 김태기”라고 호명한 순간이 떠오르니 또 감격스럽네요. 사부님과 ‘천년바위 아픔은 소리 내지 않으니까’ 작품을 출품할 때는 장려상이라도 받아보자는 생각이었어요. 기대 이상으로 종합대상을 받았으니 정말 감사하고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심) 미목의 출품작은 각의 깊이가 1.5㎝ 깊이로 새겨져 돋보였어요. 남들 보다 조금 더 깊이 판것인데, 여기에 은은한 색감이 잘 어울러져 심사위원들의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아요. 저도 아직 받아보지 못한 상인데, 제가 더 기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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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종보 서각가 작품
1. 쪽동백, 관솔
2. 장승, 관솔




서각을 할 때 주의할 점은.

심) 글씨를 각 할 때는 나무결을 따라 해요. 결을 따라 하지 않으면 각을 한 것이 쉽게 떨어지기 때문이죠. 심사할 때도 그 결을 따라 각을 했는지 봅니다. 또 연장이 날카로워야 해요. 무디면 각을 할 수 없어요. 판매하는 연장은 기울기가 45°에요. 일반적이죠. 하지만 저는 기울기를 65~70°로 더 갈아서 사용해요. 음각은 45° 기울기로는 좋은각이 나올 수 없거든요.

지금도 장승을 정말 좋아해요. 장승의 해학적이면서도 불규칙적인 조화에 매료됐죠. 나무가 가진 특성을 살려 나무가 웃고 있는지 찡그리고 있는지 나무를 보면서 장승 각을 합니다. 나무의 흐름대로 장승을 만들어야 하는데, 흐름을 거스르면 그 매력적인 어우러짐이 나올 수 없거든요.

각을 위한 나무가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아요. 주로 쓴다면 느티나무나 고급 수종을 쓰죠. 또 대추나무, 향나무 등 강한 성질의 나무에 예리한 칼을 쓰면 칼이 100% 부러지기 때문에 나무에 따라 연장을 달리 사용해요. 현대각은 은행나무를 주로 써요. 은행나무가 제일 구하기 쉽고, 너무 무르지도 않고, 단단한 정도도 알맞거든요.

김) 사부는 연장도 예술이죠. 사부를 보면서 연장부터 달라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무엇이든 가장 기본적인 준비부터 하고, 제대로 지도를 받아야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오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정말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고 싶거든요. 또 각을 할 때 작가의 혼이 담겨있으면 그 이상 완벽한 것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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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종보 서각가 작품
1. 반야심경, 은행나무
2. 관세원보살, 은행나무
3. 내탓네덕, 다릅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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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태기·김주연·심종보 서각가. 김주연(가운데) 명인은 ‘천년바위 아픔은 소리 내지 않으니까’의 붓글씨(호서체)를 썼다.
 



서각은 서(書)로부터 비롯되어 각(刻)을 한 것으로, 조각가와 명확히 구별 짓는다. 전통서각에서는 서예가나 다른이의 글을 받아 나무에 각으로써 글을 새겼기에 옛날에는 예술가이기보다는 장인으로 보았고, 지금의 독립된 예술로 인정받지 못했다. 현대서각은 서(書)를 바탕으로 하지만 ‘조형성’을 제일 중시하며, 서(書)의 기본 의미는 지키면서 글자를 미적으로 추상화해 예술적 감동을 더하는 데 의미가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심) 서각 전시를 위한 공간을 만들 계획이에요. 배우고자 산방을 찾아 주시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지금도 초・중・고등학생, 직장인 등 여가 취미 생활이나 전공을 위해 많이 배우러 오세요. 가르치는 방식은 앞으로도 같아요. 제가 완성한 것을 보고 글, 색감, 각 모두를 따라하게 하는 것이죠. 그러다 보면 자기만의 작품도 만들 수 있어요.

김) 서각을 알리는 데 일조할 수 있는 개인 전시관을 꾸미려고 해요. 예전부터 생각해오던 계획이죠. 또 내년 4월쯤 거주지인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공근면민의 날’에 저와 아내의 이름으로 500만 원 장학금을 전달할 계획이에요. 그동안에는 마음은 있었지만 명분이 없었는데, 이번 대상 수상을 계기로 내년부터 1년마다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시행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