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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를 접하는 순간
역사 속으로 빠져들었죠”


글. 김일녀 사진. 박선혜 제공. 풍산 화동양행


“유통화폐든, 기념주화든 만들어질 당시의 시대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녹아 있어요.
화폐를 접하는 순간 역사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죠.”


화폐를 접하는 순간 역사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죠.”
- 풍산 화동양행 이제철 대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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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 화동양행 이제철 대표

 



이제철 대표는 1986년 당시 잘나가던 동아건설을 그만두고 직원 서너 명 남짓한 화동양행으로 옮겨왔다. 때문에 주변에선 하나같이 미쳤다고 했다. 실제 그랬다. 화동양행의 창업주 이건일 전회장을 만나 화폐가 가진 역사와 가치에 매료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공학도였다. 중앙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후 건설회사를 다녔던 그가 화폐에 대해 알리 만무했다.

“여기에 모든 걸 걸어야 했어요. 한 마디로 ‘돈 장사’를 해야 하는데 화폐도 모르고,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고객이 무얼 좋아하는지도모르니… 그때부터 집에 들어가지 않고 화폐책을 붙들고 공부했어요. 그만큼 열정을 쏟았죠.”

그렇게 30년이 흘렀다. 그는 스스로를 ‘행운아’ 라고 했다. 1986년 화동양행에 첫발을 내딛은 뒤한 세대를 살아오면서 86서울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에 이어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치렀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발행된 기념주화나 기념메달을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 소개하고 판매해 온만큼 그에게는 의미가 남다른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스포츠를 좋아한다고 했다.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금메달을 땄을 때 기념주화가 많이 판매 됐어요.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누가 메달을 딸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라며 웃어보였다.

화폐수집은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수집 취미 중 하나로 2000년 전 동·서양에서 거의 동시에 시작됐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정착된 것은 불과 20년 안팎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수집용 화폐시장(기념메달 포함) 규모도 경제 및 인구 규모가 비슷한 국가들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라고 한다. 이는 단지 역사가 짧기 때문일까.

그는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김연아 선수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그는 김연아 선수를 기념하는 기념주화를 제작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큰돈을 들였음에도 ‘매국노’ 소리를 들어야 했다. 해당 기념주화가 우리나라가 아닌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호주 퍼스 조폐국)에서 제작돼 역수입된 데다, 주화 뒷면에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초상이 새겨졌기 때문이다. “김연아 주화에 영국 여왕이라니!”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법률상 기념화폐는 기념메달과 달리 법정통화이기 때문에 수익성 사업을 목적으로 하면 판매가 불가하다. 때문에 김연아 선수의 기념주화뿐만 아니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기념주화는 노르웨이에서, 고(故) 김수환 추기경 기념주화는 라이베리아에서 만들어졌다. 다만 국내에서 올림픽, 월드컵 등 국제대회가 열렸을 때 주최 측 등의 요청에 따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기념화폐가 발행되기도한다. 이에 반해 세계의 조폐국들은 국내보다 기념주화 발행이 훨씬 수월한 편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법률적으로 주화 발행이 제한된 만큼 화폐수집 시장 또한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연아 선수의 기념주화 논란 이후 기념화폐 발행 관련 법안 개정안이 잇따라 국회에 제출됐지만 아직까지 진전은 미미한 상태다. 그는 “미국, 영국 등에서 기념주화 발행을 100년, 200년 넘게 지속하는 이유는 단순히 외화벌이가 목적이 아닙니다. 기념주화를 통해 그 나라의 인물, 문화, 역사 등을 자연스럽게 자국뿐 아니라 국외에도 알리는 것이고, 나아가 수익은 물론 새로운 산업과 고용을 창출하는 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며 규제에 묶인 국내 현실을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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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기념주화
 



이후 그는 주화용 소전(음각을 넣기 전 반제품 동전) 제조업체인 풍산그룹을 찾아갔다. 그리고 2012년 화동양행은 풍산에 인수됐다. 풍산은 현재 국내 시장은 물론 해외 60여 개국에 소전을 공급하는 세계 최대의 소전 수출업체로 부상했고, 그만큼 전 세계 화폐산업을 꾀고 있다. 그런 풍산과 함께하면 국내 화폐시장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화동양행의 최근 주요 관심사는 ‘나라 사랑’이다. 지난 3월엔 조폐공사와 통일기금조성사업 공동추진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조폐공사가 통일기원메달을 만들면 화동양행이 판매해 수익금일체를 통일과나눔재단에 기부할 계획이다. 그는 민간 교류 차원에서 화동양행이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도 했다.

“북한에 문화유산이 많은데 이를 기념주화에 담아 남한에 알리고, 마찬가지로 남한의 문화유산이 담긴 기념주화를 북한에 알리면 서로의 문화와 역사를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실제 그런 기회가 있었다. 1980년대 싱가포르에서 열린 코인쇼에 참가한 북한이 기념주화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는 그들의 부탁으로판매를 도와줬다. 이후에도 해외 코인쇼에서 여러 차례 도움을 주며 북한과 교류를 해왔다. 그러다가 2000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으로 기회가 왔다. 북한 측과 기념주화 관련해 논의를 하고 수입 승인만 남은 상황이었다. ‘드디어 북한 주화를 국내에 처음으로 들여와 수집가들에게 소개할 수 있겠구나’하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문제가 생겨 결국 무산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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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 기념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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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몇 년 지나지 않아 동전 없는 사회가 된다고 하는데, 그때가 되면 주화를 만드는 조폐공사는 문을 닫게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대해 그는 오히려 기념주화 사업이 더욱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동전이 줄어들수록 조폐공사는 기념주화 사업에 더 집중하게 될 겁니다. 유럽의 경우에도 같은 유로화를 쓰기 때문에 없어지는 조폐국이 많아요.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 기념주화 사업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화동양행에서 30년을 몸담은 그에게 이제 남은 주요 과제 중 하나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다. 화동양행은 이번에 평창 동계올림픽 기념주화 판매대행사로 선정됐다. 그는 88서울올림픽 이후 국내에서 치러지는 첫 올림픽인 만큼 사람들의 호응도 높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념주화 발행량도 당시의 20분의 1 수준으로 희소성도 높다. 또 지난 월드머니페어나 해외 코인쇼등 해외에서는 한국의 전통(고로쇠썰매), 평창의 이미지(ㅍ, ㅊ) 그리고 동계올림픽 스포츠의 역동적인 모습을 잘 나타냈다는 평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서울올림픽 당시 기념주화로 1300억원의 수익을 냈고, 올림픽에도 큰 도움이 됐다”며 “이번에도 국민들이 기념주화에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화동양행은 전 세계 24개국 주요 조폐국이 발행하는 기념주화 및 메달에 대한 공식 판매권을 가진 기업으로, 세계 각국의 기념주화와 수집용 화폐를 국내에 소개하며 화폐시장의 저변 확대를 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