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루 | GEULMARU

로그인 회원가입 즐겨찾기추가하기 시작페이지로
글마루 로고


 

 
 
 
 
 
 
 
 
 
 
 
 
 
 
 
 
 
 
 
 
나는 작가다. 일곱 살 때부터 나는 오직 작가만을 꿈꿔왔다. 그러므로 좋은 글을 쓰는 것은 내 생의 목표다.

지난 2011년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의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최인호 작가가 했던 말이다. 작가로 생을 마감하고 싶은 그였다. 바람을 이뤘다. 특히 <낯익은 타인들의도시>는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손발톱이 모두 빠져버려 손가락에 골무를 끼고 만들어낸 작품이다. 작년 12월엔 유고집 <눈물>이 발간됐다. 같은 해 9월 별세한 그의 책더미 사이에서 발견된 원고지 200장 분량의 글을 묶어낸 작품이다. 영원히 잠든 후에도 작품은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러니 그의 바람이 이뤄진 셈이다.

작가는 2005년 설암(舌癌) 진단을 받고 오히려 암에 감사해 했다. 암을 절망이 아닌 삶 일부로 받아들인 셈이다. 그러면서 삶을 더 사랑하게 됐다. 최인호. 그는 누구인가. 샛별로 등단해 70~80년대 청년문화를 이끈, 한국 현대문학계에 큰 획을 그은 그가 아닌가.
 
누구보다 열심히 쓰는 작가
최 작가는 누구보다 열심히 글을 쓰는 작가로 정평이 났다. 두 살 위인 조정래 작가는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문학적 열정을 불태운 작가”라고 최인호 작가를 평가했다. 최근 유고집 <눈물>을 비롯해 <할>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길 없는 길> <상도> <유림>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잃어버린 왕국> <해신> <깊고 푸른 밤> <불새> <견습환자> <별들의 고향> <고래사냥> 등 수많은 글이 그에게서 쏟아져 나왔다. 천성이 이야기꾼이었다. 그리고 그는 정말이지 펜대를 놓지 않았다. 시대가 변해도 컴퓨터가 아닌 손글씨를 고집했다.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것은) 기계로 만든 칼국수 같다”며 원고지와 펜을 사랑했다.
201403_01.jpg
 
 
 
201403_02.jpg
 
 
1945년에 태어난 그는 해방둥이다. 변호사였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도 문학을 꿈꿨다. 1963년 서울고등학교 2학년 학생의 신분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했다. 이후 반세기(50여 년)를 외도하지 않고 오로지 문학만을 바라봤다.

‘청년문화의 기수’ ‘영원한 감수성의 작가’라는 찬사와 함께 ‘상업주의 작가’ ‘호스티스 문학을 통해 이름을 알린 통속적인 작가’ ‘소비 지향적 도시문화에 매몰된 작품’이라는 혹평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시류에 떠밀리는 글쟁이가 아니었다. 1970년대 문인들이 산업화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드러냈다면 <타인의 방> <무서운 복수> <이상한 사람들> 연작에서 볼 수 있듯 최인호 작가는 우회적 방식과 도회적인 감수성을 글에 녹였다.

‘상업성이 짙은 작품’이라고 오해받은 이유는 그가 대중 친화적인 작가였기 때문이 아닐까. 그를 청춘 작가로 이름을 알리게 한 <별들의 고향>을 시작으로 <바보들의행진> <도시의 사냥꾼> <고래사냥> <적도의 꽃> 등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특히 역사소설인 <상도>와 <해신>은 드라마로 장기간 방영되면서 최 작가는 국민의 작가가 됐다.

베이비붐 세대는 최인호 작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독자들이다. 중고교 때엔 학원소설 <우리들의 시대>를 읽었으며, 군사정권 시절 70~80년대엔 일간지 전면에 실렸던 연재소설을 탐독했다. 작가의 연재소설이 실린 신문을 가장 먼저 읽기 위해 사무실과 병원 등에서 서로 먼저 신문을 읽으려는 경쟁이 있었을 정도였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리고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면서 젊음을 보냈으니 최인호 작가는 적어도 7080세대들에겐 영원한 청춘이다. 그래서 그를 더욱 예찬하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
 
201403_03.jpg
 
 
 
 
- 어느새 그(최인호)는 미니스커트, 송창식의 통기타, 칸막이가 있는 생맥주 집 등과 함께 70년대 저항적인 청년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돼 있었다.                             장석주 <나는 문학이다>-

구도의 삶을 그리다
최인호 작가는 구도자의 삶도 살았다. 일찍이 명성을 얻었다고 삶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았다. 1987년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받으며, "풍요로움 속에서 황폐해져 가는 내면이 종교로 이끌었다"는 고백이 인상적이다. 그는 故 김수환 추기경, 정진석 추기경 등과 가까이 지냈다. 그가 신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1993년 서울대교구 주보에 ‘말씀 이삭’을 연재하면서부터 알려졌다. 이후 <길 없는 길> <할> 등 종교를 소재로 삼은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평소 “내 정신의 아버지가 가톨릭이라면 내 영혼의 어머니는 불교”라며 “(자신을 )불교적 가톨릭 신자”라고 소개해왔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면서 불교를 각별하게 생각했다. 그에게 신앙은 절대적이었다.

저는 주님에게만은 거짓말쟁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진실로 인정받고 칭찬받고 잊히지 않고 싶은 분은 오직 단 한 사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그러하오니 주님. 만년필을 잡은 제 손 위에 거짓이 없게 하소서. 제 손에 성령의 입김을 부디 내리소서.

투병 중에서도 강인한 정신력과 여유는 신앙에서 비롯된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손발톱이 빠진 상황에서도 골무를 차고 두 달에 걸쳐 육필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쓸 수 있었을까. 이 작품을 통해 투병 직전 역사소설에서 현대소설로 전환하고 싶어 했던 꿈을 이뤘다. 이어 묵상 산문집 <하늘에서 내려온 빵> <인연> <천국에서 온 편지> 등을 출간했다.

교복 차림으로 등단한 최인호 작가는 ‘최연소 신춘문예 당선’ ‘최연소 신문 연재 소설가’ ‘작품이 가장 많이 영화화된 작가’ ‘잡지 역사상 최장기간 연재한 작가’ 등 기록을많이 남겼다.

최인호 하면 담배 대신 시가를 물고 반달같이 휘어진 눈웃음을 짓는 모습이 떠오른다. 날카로움보다 부드러움이 그와 어울린다. 음침한 어둠보다는 천진난만한 빛이 어울리는 이야기꾼이다. 조용하지만 강하다. 작품세계가 그러하다. 운명하기 보름 전, 그가 아내에게 말한 한마디가 있다. “먼지가 일어난다. 살아난다. 당신은 나의 먼지. 먼지가 일어난다. 살아야 하겠다. 나는 생명, 출렁인다.”

그는 구차한 삶이 아닌 정신적 삶을 원했을 테다. 최인호, 최 베드로 모두 그다. 그리고 그의 세계가 오롯이 담긴 수많은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또 다른 희망을 선사한다.
201403_04.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