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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 땀 그리고 흙과 불의 결정체
그 매력에 어찌 아니 빠질 수 있으랴!


글. 박선혜 사진. 백은영 작품제공. 오만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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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묵향이 좋아 동양화에 빠지고, 흙의 촉감이 좋아 도자기를 굽는 화가 오만철(54). 국내에서 유일한 도자화가인 그는 홍익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단국대 대학원에서 도자기와 고미술감정 공부까지 마쳤다. 이론을 많이 알아도 실천으로 옮기지 않으면 완벽하게 빛날 수 없다 했는가. 그래서 감히 그의 그림은 온화한 빛을 낸다고 말할 수 있다.

‘도자기’와 ‘회화’를 접목한 ‘도자화’는 도자기의 주체인 흙을 고온에 구운 백자도판에 우리가 흔히 봐 온 수묵화, 산수화, 동양화 등의 회화가 그려진 새로운 장르다. 도자화의 화선지가 도판 즉, 도자기판이다.

개척정신과 실험정신으로 20여 년간 도판 작업을 진행해 온 오만철 화가. 2015년에 이어 지난달에도 ‘흙과 불의 사랑은 얼마나 눈부신가’라는 주제로 18일간 ‘도자화’ 개인전을 열고, 백자도판에 담긴 한국 산수화의 매력을 다시 한 번 알렸다.

전시 오픈 다음 날인 3일, 인사동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연회색 계량한복으로 정갈하게 입고 기자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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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22 × 81cm, 백자도판, 1330℃, 환원소성, 2015
 




전시 주제가 독특하다.

‘흙과 불의 사랑은 얼마나 눈부신가’라는 전시 주제는 지난 2015년 전시 주제와 같아요. 작년에도 아라아트센터에서 도자화 작품만으로 전시를 크게 했었어요.

말 그대로 흙이 고온의 불을 만나 더욱 아름다운 색과 느낌을 표현해내니 얼마나 눈부신가라는 것이지요.

개인전시는 이번 전시까지 총 25회 에요. 이외에도 한국과 일본에서 140여 회 초대전으로 활동도 했어요. 초대전은 일본에서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대부분 회화 전시를 주로 했는데, 회화와 함께 도자화 작품도 선보이긴 했죠. 하지만 지난 2008년부터 2015년에 이어 올해까지 세 번의 개인전시에는 도자화 작품만 선보였어요.

특히 작년에 아라아트센터에서 크게 전시를 했을 때는 언론의 주목도 받았어요. 그림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도자기고, 회화인데 도자기 같아 모두들 신기해했어요. 또 도자기에서 수묵의 농담과 번짐이 완벽하게 표현됐다는 것이 놀랍다는 반응이었어요.




‘도자화’를 시작한 계기는.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운영하는 도자기 공장이 따로 있었어요. 관요라고 불렀습니다. 관요에는 도공들이 있었어요. 또 나라에서 운영하던 도화원에는 화가들이 있었지요. 도화원 화가들이 길일(좋은 날)을 정해 관요에 가서 그림을 그렸고, 그렇게 만들어진 도자기들이 바로 지금의 국보, 보물들입니다.

구한말을 거치면서 관요, 도화원은 점점 모습을 감췄어요. 사라졌습니다. 대학에서 관련 공부를 하다보니 어떤 식으로든 재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림을 계속 그려왔던 터라 도자기에 대한 공부만하면 가능하다 싶었어요. 또 도자기 작업도 하고 싶기도 했고요. 당시 대학에는 부전공이란 게 없어서 다시 대학원에 들어가 도자기 공부를 했고, 그러면서 도공과 화공을 같이 하게 됐어요.

늘 내 손으로 ‘명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는데, 그릇에 그림을 그리고 만드는 것은 성에 안찼어요. 그래서 스스로 도자기와 회화를 접목해보자는 생각을 했고, 여러 시도 끝에 ‘도자화’를 완성하게 됐어요.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지요. 지금도 제가 유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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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철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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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2015년 개인전 24회
초대전 150여 회
현재
세종조형연구소 소장
서원대, 홍익대 출강
유연회, 시연회, 시공회, 미협, 정글프로젝트 회원
 




어려운 작업임에도 ‘도자화’를 고집하는 이유는.

도자기 만드는 사람들은 많아요. 하지만 도자화를 하는 사람은 저뿐이지요. 회화와 도자기를 접목해 한국을 더욱 알리고 싶었고, 자신이 있었어요. 노력하는 사람에게 안 될 것은 없지요. 또 도판에 표현했을 때 더욱 실감이 납니다. 도자기의 느낌이 함께하기 때문이지요. 회화하는 사람들은 색을 표현하는 것으로 끝이지만, 도자화는 그 색이 불에 구워져서 다시 나오니 회화의 색과는 색 자체와 느낌도 달라요. 차분하고, 온화하며, 따뜻하기도 하고…, 스며들고 번지는 수묵 표현을 그대로 살릴수 있지요.



노하우나 따로 주의해야 하는 것은.

예를 들어 청화를 작업할 때 청화는 배경이 청색인데, 굽기 전에 그림 그리고 시술할 때에는 회색이에요. 불에 구워졌을 때 청색이 나오게 하려고 회색을 쓴 것이죠. 또 그냥 회색만 써서 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색이 나오도록 추가 계산을 해서 작업합니다.

가마에 들어가기 전과 후는 전혀 달라요. 또 흰 눈을 표현할 때 어떻게 색을 써야 원하는 색이 나올까 이러한 고민과 계산을 해야만 합니다. 가마에서 구우면 도판이 15~20%가 줄게 되는데, 채색할 때도 불에 구워져 쪼그라드는 것을 미리 계산해요.




중국 가마의 온도와 한국 가마의 온도 차이는.

우리나라에도 제가 쓰는 가마가 있어요. 한국 가마는 최고 온도가 1250℃에요. 중국은 1330℃에서 굽고요. 도자기는 온도 10℃만 차이나도 타거나 엉켜 버려 제대로 완성할 수 없는데, 80℃ 온도 차이는 어마어마한 것이에요. 그래서 크고 넓은 도판의 도자화를 완성하기 위해 중국에서 작업할 수밖에 없었고, 고온 1330℃에 맞는 안료를 구입해 색깔 하나하나를 계산하고 실험해 보며 지금의 작품들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중국 경덕진의 고령토가 다른 이유는.

중국 경덕진은 고령토의 원산지에요. 근교에 있는 고령산에서 채취한 흙이 고령토이며, 우리나라에서 명사화해 고령토 즉, 백자토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죠. 경덕진의 고령토는 치밀하며 밀도가 있어 쉽게 깨지지 않아요. 우리나라에서는 도자기를 구울 때 초벌과 재벌을 하는데, 중국에서는 흙판에
밀어 단벌로 바로 구워도 안 깨집니다. 고온에 견디는 흙을 쓰기 때문이지요.

한 번은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던 도자기 안료를 중국 작업실에 가지고 가서 실험해봤어요. 그런데 엉키고, 뭉치고, 결국에는 전부 타버렸어요. 우리나라 도자기 안료도 중국 가마 온도 1330℃를 견디지 못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흙 자체가 달라서 도자화의 백자도판 폭은 얇아요. 5mm 정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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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녹원의 겨울 44 × 81cm, 백자도판, 1330℃, 환원소성,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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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설죽(月下雪竹) 22 × 81cm, 백자도판, 1330℃,
환원소성, 2015
 


새로운 장르 ‘도자화’를
완성하기까지 우여곡절은 없었나.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누구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고, 오로지 저 혼자 연구하고 계산해야했죠. 개척자의 정신이랄까요.

도자화에는 백자토(고령토)를 쓰는데, 우리나라 백자토는 도판 크기를 크게 하니 금방 깨어져 버려요. 그래서 중국에서 ‘도자기 공장’이라 불릴 만큼
도자기로 유명한 경덕진(징더전)의 고령토를 수입해볼까 알아봤지만, 수입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중국에 직접 와서 하는 것은 괜찮다고 하여 중국경덕진에 작업실을 두고 한국을 오가며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작년에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작년 12월 16일에 한국신지식인협회에서 ‘도자화’ 장르를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아 ‘신지식인’으로 선정됐어요. 내가 개척한 도자화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알릴 책임이 막중해졌지요. 앞으로도 선구자적 역할과 후배 양성이라는 책임감으로 한국 미술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겁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올해 6월 9~12일에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최되는 ‘제14회 국제차문화대전’에 초대를 받았어요. 작품 제작 시연과 특별전시를 합니다.

우리 문화를 계속해서 알리고 싶어요. 세계적으로 알리려면 해야 할 일이 많지요. 앞으로는 산수뿐만 아니라 풍속, 민화, 건축, 가구 등 우리나라 전통 문화를 접목해서 알리고 싶습니다. ‘문화 전도사’가 되는 것이라고 할까요.

또 후학 양성도 해야지요.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 알려줄 것이고, 제대로 가르쳐서 앞으로 계속 도자화가 이어졌으면 합니다. 도자화가 어려운 작업이지만 어떻게든 이어나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