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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맞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최진철, 박태하, 설기현 등 젊은 감독의 눈높이 리더십
포용과 애정으로 자율성과 책임감 키워주는 지도자 많이 나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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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철 감독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고 했다. 스포츠에서도 시즌을 마감하면서 재미난 소식들이
많이 들려왔다. 한국과 일본의 프로야구가 단연 화제였다. 우승을 한 팀 선수들은 올
겨울이 더없이 따뜻할 것이고, 패배한 팀에서는 절치부심하며 다음 기회를 준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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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을 뒤흔든 이대호 선수
 





일본 프로야구의 이대호 선수는 소속 팀인 소프트뱅크를 일본 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선동렬, 이종범 등 일본에서 활약한 우리나라 선수들이 많았지만 일본시리즈에서 최우수선수가 된 것은 이대호가 처음이다.

이대호는 어릴적 부산에서 할머니와 살았다. 할머니는 밤새 콩잎을 된장에 버무려 시장에 내다 팔았다. 이렇게 해서 손자를 야구 선수로 키웠다.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시장에 나가는 할머니의 손수레를 끌어주고 학교가 끝나면 시장에 들러 할머니를 도와드리는 착한 아이였다. 야구를 그만둘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할머니를 생각하며 꿋꿋하게 이겨냈다. 일본에 처음 진출했을 때 부진했지만 결혼을 한 다음에는 안정을 찾고 성적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대호가 오늘날의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와 형 그리고 아내등 가족의 사랑 덕분이었지 싶다. 사랑보다 좋은 약은 세상에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는 두산이 5연패를 노리던 삼성을 꺾고 우승했다. 두산그룹 회장의 남다른 야구 사랑도 새삼 화제가 됐고, 선수단도 두둑한 보너스를 챙겼다. 대가 없이 열심히 응원한 두산 팬들도 기뻐했다. 대리만족이라는 것이 그런것이다. 류중일 감독은 삼성을 맡은 이후 4년 동안이나 우승하며 삼성 시대를 이끌었지만 이번에는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한국시리즈 직전 터진 선수들의 도박 스캔들로 팀 전력이 맥없이 주저앉아 버린 탓이었다. 많이 아쉬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류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 3루 덕 아웃 앞에 나란히 도열해 우승팀을 축하해 주었다. 박수를 받고도 남을 일이었다. 류 감독은 아시아리그에서 일본의 소프트뱅크 선수들이 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아 그대로 따라하게 됐다고 밝혔다. 일본이 좋다 싫다 해도, 장점은 배우고 따라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발전하는 것이다.

축구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17세 이하 대표 선수들이 세계 최강 브라질을 잡고 무실점으로 일찌감치 16강에 올랐다. 모처럼의 쾌거였다. 8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우리 축구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경기였다. 세계 무대에서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는 어린 선수들의 모습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월드컵 등 세계 대회에 나가면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기가 죽어 있는 선수들을 보면서 우리들 가슴이 저렸던 때가 있었다. 제 풀에 주눅들었던, 초라한 시절이었다.

이승우 선수는 벨기에와의 16강전에서 페널티킥을 넣지 못 했다. 한국 팀의 핵심 공격수로 맹활약하며 발군의 실력을 뽐냈던 터라 실망이 컸다. 응원한 국민들도 그랬지만 선수 자신도 속이 더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어린 선수가 큰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 쓰디쓴 보약 한 사발 마셨다며 등을 두드려주었다. 사람 사는 인정이라는 게 그런 것이다. 잘 할 때는 영웅처럼 떠받들다가 잘 못하면 역적 취급하는 것은 졸장부나 하는 짓이다. 우리 모두가 성숙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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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감독
 





축구 대표 팀을 이끌었던 최진철 감독도 칭찬을 많이 받았다. 최 감독은 2002년 월드컵에서 홍명보, 김태영 선수와 강력한 수비라인을 꾸려 4강 신화를 이끌었던 스타 선수였다. 2006년 스위스 월드컵에서는 머리 부상으로 과일 싸는 스티로폼 비슷하게 생긴 붕대를 감고 투혼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번 대회 직전까지만 해도 그의 지도력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회 전까지 치렀던 경기 결과가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대회의 뚜껑을 열자 의외의 상황이 전개됐다.

히딩크 감독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히딩크는 2002월드컵을 앞두고 유럽 등의 강팀들과 잇따라 평가전을 치렀고 무수히 패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오대영’이란 수치스러운 별명을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그는 “우리의 목표는 월드컵”이라며 의연했다. 오히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뻔뻔스럽다고 말했다. 감독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가 끝까지 믿고 밀어 주었고, 결과는 의외의 대성공이었다.

모든 것은 결과가 말해 준다고 했다. 히딩크가 4강 신화를 이루고 나서 “강팀과 평가전을 한 것은 팀을 강하게 만들기 위한 전략적 단련”이었다고 말하자, 사람들은 “과연 명장”이라며 치켜세웠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히딩크야말로 이 시대 기업과 개인의 성공 모델이라며 입에 침을 튀겼다. 용장 밑에 약졸 없다고 했다. 최진철 감독도 히딩크에게 제대로 배운 셈이다. 목표를 월드컵에 두고 차근차근 과정을 밟으며 팀의 완성도를 높였던 것이다. 이번에 감독을 맡으면서 어린 선수들과 함께 힙합을 부르고 문자를 주고받으며 교감하는 등 소통 리더십의 모범을 보였다.

올해 중국 조선족들도 무척 기분이 좋았다. 중국프로 축구 2부 리그에 활약하고 있는 연변 팀이 매년 꼴찌를 했는데, 올해는 1등을 했다. 덕분에 내년 시즌에는 1부 리그에서 뛰게 됐다. 연변 팀이 승승장구하며 우승하자 중국의 200만 조선족들이 열렬한 팬이 되었고 자부심도 커졌다고 한다. 늘 텅 비어있던 관중석이 꽉 들어차고 운동장에는 꽹과리 소리가 울려 퍼지고 아리랑이 메아리쳤다. 가슴 따뜻한 순간들이 이어졌다.

연변 팀을 이끌고 있는 박태하 감독은 ‘연변의 히딩크’라는 별명을 얻으며 스타로 떠올랐다. 박 감독은 선수 시절에는 히딩크와 인연을 맺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그의 리더십은 히딩크와 쏙 빼닮았다. 박 감독은 연변 팀의 많은 선수들이 부모와 떨어져 외롭게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사랑과 관심이라고 판단했다. 박 감독이 마음을 열고 다가가자 선수들도 감독을 믿고 따랐다. 선수들이 묵을 호텔과 음식 그리고 월급을 잘 챙겨줄 것을 구단에 요청했다. 선수들의 사기가 절로 높아졌다. 체격이 작지만 발이 빠르고 기동성이 좋은 선수들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전략도 구사했다. 이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뤄 달콤한 열매를 맺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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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하 감독
 




히딩크의 애제자 중 한 명이었던 설기현 감독의 리더십도 주목받고 있다. 그는 성균관대 축구 팀 감독이다. 그는 광운대 출신이다. 통상 모교 출신이 감독을 맡는다. 하지만 성균관대 측에서 설 감독을 선임했다. 출신 학교보다는 그의 자질에 주목한 것이다. 학교의 믿음 덕분이었는지, 설 감독은 기대에 부응했다. 대학 리그에서 하위권에 머물렀던 성균관대의 성적이 몰라보게 좋아진 것이다. 이제 성균관대는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강호로 자리 잡았다.

성균관대 축구팀의 비상은 설 감독의 독특한 리더십 덕분이다. 그는 선수들에게 철저한 자율을 주문한다. 코치나 선배들의 지시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게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조절하라는 것이다. 대개는 단체 연습을 의무적으로 많이 하지만, 이 학교 선수들은 단체 연습 대신 개인 연습 시간을 대폭 늘렸다. 자신의 단점을 스스로 파악해서 보완하라는 것이다.

휴식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쉬는 날에는 확실히 쉬라고 한다. 쉬는 날에는 단체 합숙을 하지 않고 반드시 집으로 돌려보내 마음껏 쉬라고 한다. 쉬는 날에는 개인 연습을 절대 하지 말라고 한다.

만약 쉬고 온 다음날, 휴일에도 연습한 티가 나면 혼이 난다. 쉬는 날에 쉬기만 했다고 혼을 내던 예전의 지도자들과는 정반대다. 일사분란하게 열을 맞춰 달리고 단체 연습을 하면서 위계질서를 강조하던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대신 선수들 스스로 알아서 기분 좋게 운동한다.

아침식사를 강제로 하지 않아도 된다. 밥 먹는 것도 선수들의 기강을 세우는 일이라며 정해진 시간에 식당에 모이도록 하던 풍경도 사라졌다. 밥대신 휴식이 필요하면, 밥을 걸러도 된다. 밥을 먹든, 잠을 더 자든, 선수 자신이 판단할 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선수들에게 자율과 권한을 주자 선수들의 자존감과 책임감이 더 커졌다. 형식에 매여 과도하게 연습하고 막상 대회에서는 제대로 뛰지 못하는 일도 없어졌다. 선수단의 분위기가 좋아지고 유대감도 커졌다.

설 감독의 이런 리더십도 히딩크로부터 배운 것들이다. 히딩크는 군대처럼 딱딱한 규율과 상명하복에 익숙한 우리 스포츠 문화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설 감독은 형식보다는 내용에, 명령과 복종보다는 자율과 권한에 기반한 리더십을 배우고 실천한 것이다.

아직도 스포츠 현장에서 감독이 선수를, 선배가 후배 선수를 구타했다거나 가혹하게 다뤘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가슴 아픈 일이다. 때린 사람들은 교육적 차원에서, 성적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스포츠의 근본 목적을 망각한 것이다. 스포츠는 육체적 활동을 통해 인격의 완성을 지향하는 것이다. 젊은 지도자들이 소통하고 공감하는 시대에 맞는 리더십으로 스포츠 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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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jpg  전경우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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