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루 | GEULMARU

로그인 회원가입 즐겨찾기추가하기 시작페이지로
글마루 로고


 

한옥 처마 선에 매료된

법학도,

나무냄새 풍기는

목수가 되다

양태현 한식목공 대목수


글, 사진. 이예진 사진제공. 양태현 대목수


01.jpg
 

최근 몇 년간 한옥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높아졌다. 한옥은 드라마나 영화 곳곳에서 인물이 사는 집이 되기도 하고, 예능의 중심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 종영한 카카오M 드라마 <도시남녀의 사랑법>에서는 남자 주인공의 집으로 신식 한옥이 등장했으며 tvN 예능 <윤스테이>에서는 전남 구례의 ‘쌍산재’가 예능의 중심이 돼 큰 관심을 받았다. 이외에도 전주 한옥마을, 서울 북촌과 익선동, 은평 한옥마을 등이 관광지로 변모하면서 예스러움을 간직한 한옥을 향한 대중들의 관심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한옥은 누구의 손에서 탄생하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양태현 한식목공 대목수를 만나러 전라북도 임실을 찾았다.


02.jpg
본인이 지은 완주 송각사 종탑을 소개하는 양태현 한식목공 대목수
 
03.jpg
양태현 목수가 만든 완주 송광사 사운당
 


나무향을 풍기는 사람
“저는 잘 모르겠는데 일 하다가 누구를 만나면 나무향이 난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나무를 항상 옆에서 다듬고 만지니까 자연스레 몸에 나무향이 배였나봐요. 좋은 나무향을 낼 수 있는 목수 일을 한다는 것에 항상 설레요.”

목수 일이 설렌다는 양태현 한식목공 대목수(목수). 그는 어떻게 목수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일까. 원래 양 목수는 법학을 전공하던 학생이었다. 군대를 제대한 후 복학하기까지 시간이 남았을 때 주변 지인을 통해 한옥을 짓는 현장에서 우연히 일을 하게 됐다. 그렇게 한 걸음 한옥을 짓는 일에 다가갔다.

양 목수는 “처음에는 쉽게 말해 육체적 노동의 일만 했다. 주로 허드렛일을 하면서 나무 나르고 옆에서 보조하는 일”이라며 “그런데 학교를 다시 가려고 하는데 나무와 나무를 조립하고 집이 완성되는 과정을 보니까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간단한 아르바이트가 아니라는 생각에 복학을 1년 늦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목수의 길. 1년 동안 현장에 빠져 일을 배우다 보니 이론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양 목수는 전준헌 선생, 김영성 선생과 한국목조건축학교에서 기술을 익히고 2003년에 예원예술대학교로 편입학을 했다. 문화재에 대한 건축 분야 수업을 들으면서 건축에 대한 눈이 조금 떠지는 것 같았다.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었지만 유독 집을 만드는 일에 빠져 들었어요. 처음부터 이 직업을 선택하기 위한 각본처럼 느껴질 만큼 운명인 것 같았죠.”

처마선을 아름답게 하는 대목수
도편수, 대목수, 목수 등 이 직업을 지칭하는 여러 단어가 있지만 양 목수가 가진 직업명은 정확하게 ‘한식목공 대목수’다. 목수는 굉장히 넓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 일반 건축, 목조 주택 등에서 나무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을 가리켜 ‘목수’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한옥을 짓는 이들을 한식목공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도 대목수와 소목수로 나뉜다. 대목수는 말 그대로 큰 나무를 가지고 건축을 하는 반면 소목수는 건축된 집 내부에 두는 문과 같은 소품을 만드는 일을 한다.

양 목수는 “성격상 와일드하고 웅장한 일을하는 대목수에 더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사찰 건축이나 관아 건축에 대한 애착심이 더 생겼다”며 대목수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거기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점심 때 기둥 밑에서 잠깐 쉬고 있는데 처마선이 눈에 들어오면서 더욱 대목수의 일에 매료됐다. 처마를 아름답게 하는 것 역시 대목수의 역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배움을 익혀가던 중 26살에 처음으로 경남 하동의 조그마한 법당을 건축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기억이듯 베테랑이 된 지금 생각하면 규모가 크지 않았지만 당시 양 목수에게는 설렘과 동시에 긴장의 연속이었던 일이었다. 지금은 3D 작업으로 미리 설계도를 만들고 건축된 이후의 모습을 이미지화 하지만 그때는 그런 기술이 부족하던 시절이었기에 건축을 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했다.

양태현 목수는 “처음 초석 위에 기둥을 세우고 작업을 시작으로 치목한 모든 부재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딱 들어맞고 서까래를 들어 올려 지붕을 만들었을 때의 긴장감은 목수가 아니면 느낄 수 없을 것”이라며 “엄청난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렸다”라고 당시의 기분을 회상했다.

작은 건물이었지만 기둥을 세우고 마지막 지붕을 형성하는 것까지 단계를 밟을 때마다 긴장을 하고, 그 단계가 완성이 되면 잠시 긴장을 푸는 일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완성될 때의 희열은 누구보다 온전하게 느낄 수 있었다.


04.jpg
양태현 목수가 만든 미니어처
 
05.jpg
전통건축의 꽃이라고 불리는 다포계 양식을 이용한 완주 송광사 종각
 

미니어처로 완벽하게
그렇게 대목수의 길을 꾸준히 나아가고 있을 때 그에게 꿈과 같은 일이 생겼다. 전통건축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다포계 양식을 이용한 건축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이전에 선생님 밑에서 간접적으로 배웠던 기술이었는데 다포계 양식은 한옥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로 어렵다”면서 “생각을 많이 해야 하고 오랜 경험이 있어야만 구현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어려운 작업인 만큼 고민도 깊어졌다. 3D로 작업을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수를 줄이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이에 양 목수가 선택한 것은 먼저 미니어처를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대학 때도 미니어처를 먼저 만들어 보면서 실수를 최소화 했어요. 미니어처로 먼저 만들어 보면 어떤 부분에서 실수를 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 실제로 작업을 할 때 좀 더 주의 깊게 하면서 실수를 줄일 수 있었죠.”

실제 건물의 1/10 크기로 미니어처를 만들면서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다. 미니어처를 완벽하게 만들면 실제로도 잘 만들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옛날의 목수들이 했던 방식이기도 했다. 그렇게 미니어처로 먼저 만들었던 건물은 실수 없이 성공적으로 만들었다. 사찰 건물이었던 이 건물은 당시 스님들에게서 인정을 받기도 했다고.

“보이지 않는 것에서 실제로 완성하기까지의 일이 쉽지 않지만 구현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쾌감은 목수만이 느낄 수 있잖아요. 그게이 일의 매력인 것 같아요.”

대목수의 일을 20년이 넘게 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매력에서 빠져 나오기는 쉽지 않다.

그는 “건축물을 제 손으로 짓는 것도 있지만 지어진 건물을 연장시키는 일 또한 하고 있다”며 “과거의 건축물을 내 손에 의해 그 생명을 연장시키고 건축 문화를 내 손으로 전승하는 데 일조를 하는 정말 매력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가치 있는 일이자 누군가는해야 할 일. 그 일을 양 목수는 꾸준하게 묵묵히 하고 있었다.


06.jpg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든든한 버팀목이 된 가족
그가 이렇게 꾸준히 대목수의 길을 걷는 데에는 가족의 사랑이 뒷받침됐다. 다른 분야도 꾸준히 하는 것만이 답이겠지만 대목수 역시 기술자로 거듭나기 위해서 적어도 10년의 세월이 기본적으로 필요했다. 허드렛 일부터 시작해 대패 날을 갈고 몸이 부서져라 나무를 옮기는 육체적인 고통을 먼저 겪어야 하며 기술을 익히기까지 많은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양태현 목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사찰을 주로 짓는 대목수는 깊은 산 속에서 작업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그런 어려움을 가족의 희생과 사랑으로 이길 수 있었다.

그 역시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둔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는 “옛말에 ‘목수의 아내는 죽어서 옹이가 된다’고 한다. 그만큼 이 일은 객지를 떠돌아야 하고 집을 돌아보기 힘들다”면서 “가족의 이해가 반드시 필요한 직업이다. 그래서 아내와 아이에게 많이 미안해 지금은 나의 최종 목표를 조금은 멀리 두더라도 가족을 우선으로 두려고 한다”며 애틋함을 표현했다. 이전까지는 타 지역에서 일을 해 가족을 만나기가 많이 힘들었는데 다행히 지금은 남원인 집과 가까운 임실에 작업장이 있어 저녁에는 가족을 볼 수 있는 여건이 조금은 마련됐다.




07.jpg
양태현 목수가 지은 남원 실상사 화엄전
 

이런 그가 최종으로 두는 목표는 ‘명장’이 되는 것이다. 이조차 순전히 자기의 영예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명장이라고 하는 당당함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명장은 목수의 전반적인 업무를 관장하는 ‘마스터’의 개념”이라며 “무형문화재가 되는 목표도 있지만 우선은 명장이 되기 위해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또한 지금처럼 동료 목수들과 즐겁게 좋은 한옥을 짓는 목수생활을 지속적으로 하고 싶어 했다.

직업적으로 ‘명장’ 또는 ‘무형문화재’를 목표로 한다면 인생의 목표로 두는 것도 있었다. 바로 은퇴 후 본인이 지었던 건축물을 보러 다니는 것. “저 때문에 고생한 아내의 손을 잡고 제가 열정을 쏟았던 건물을 다시 보러 다니면서 건축주들을 만나 건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그러면 목수로서의 제 삶을 돌아보는 보람된 시간이 되지 않을까요?”


08.jpg
양태현 목수가 지은 구례 화엄사 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