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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에

따스함을 담다

<천사는 바이러스> 김성준 영화감독


글. 백은영 사진. 박준성 사진제공. 김성준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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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이면 따뜻한 정(情)이 더욱 그리운 사람들이 있다. 정부의 지원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운 이들, 혹은 정부의 손길조차 미치지 못한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주변의 작은 도움이 큰 힘과 위로가 된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향해 온정의 손길을 펼치는 이들. 우리는 그들을 ‘얼굴 없는 천사’라고 부른다.

‘얼굴 없는 천사’를 아시나요
전북 전주시 노송동에는 ‘얼굴 없는 천사’가 산다. 지난 2000년 성금 58만 4000원을 낸 것을 시작으로 2020년 12월까지 21년째 한해도 거르지 않고 찾아온 그를 사람들은 ‘얼굴 없는 천사’라고 부른다. 천사가 지난해까지 기부한 성금만 총 7억 3863만 3150원에 달한다.

지난 2019년에는 천사의 성금을 도난당했다가 4시간 만에 되찾는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천사는 어김없이 찾아와 한겨울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2020년 12월 29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천사는 노송동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어 성금 박스가 둔 곳을 알렸다. 성금박스 안에는 “지난해 저로 인한 소동이 일어나서 죄송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힘들었던 한해였습니다.

이겨내실 거라 믿습니다. 소년소녀가장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라는 메모가 들어있었다. 천사가 전한 메시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더욱 힘든 시간을 보냈을 사회취약계층에게는 더 없는 힘이 됐을 것이다. 매년 연말이면 따스한 정을 나누고 가는 ‘얼굴 없는 천사’의 이야기는 어쩌면 추운 겨울보다 더 강퍅했을지 모를 사람들의 마음까지 녹여주는 힘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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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를 꿈꾸었던 김성준 감독. 그는 이제 영화를 통해 세상과 공존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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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6일 개봉한 영화 <천사는 바이러스(감독 김성준, 2021)>가 바로 이 노송동의 ‘얼굴 없는 천사’를 소재로 한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만큼 영화 촬영도 천사의 활동지인 노송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코로나19로 힘들고 지친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될 영화 <천사는 바이러스>의 김성준 감독을 만나 영화 촬영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만화가를 꿈꾸던 청년
미대 출신으로 만화가를 꿈꾸었던 김성준 감독은 캐나다 어학연수 중 우연히 독립영화 스텝을 하게 되면서 영화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만화도 스토리랑 그림이 있듯 비슷한 요소를 갖고 있는 영화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캐나다에서 경험이 계기가 됐는지, 그 뒤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고향 부산에서 단편영화부터 시작한 그는 우연한 기회에 부산시의 지원을 받아 만든 영화 <오디션(2009, 김성준, 이제철)>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에 가게 된다. 영화 <오디션>은 자신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고 생각하며 마음의 문을 닫은 청각장애를 가진 소녀 현지가 비보이 원준을 만나면서 다시 세상과 소통하며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성장드라마다.

그가 찍은 두 번째 영화 <오하이오 삿포로(2011)> 또한 청각장애를 가진 ‘모레’가 화상 채팅을 통해 만난 일본인 조각가 친구 ‘히로’를 만나기 위해 삿포로로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영화다. 우연찮게도 그가 만든 영화 두 편이 모두 청각장애인이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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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사는 바이러스> 스틸컷
 


“아이템이 정해지면 상상력으로만 해결이 안 되는 부분들이 있어요.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대화하면서 점점 구체화되는 거죠. <오하이오 삿포로>는 처음 만들었던 영화에서 부족했던 부분들, 정보가 많지 않아 실수했던 부분들, 감독으로서 아직 무르익지 않았기에 놓쳤던 부분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반성으로 만들었던 것 같아요.”

김 감독은 실제로 청각장애인 커플을 만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중 한 명이 일본인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화 속에서도 일본으로 가는 이야기를 쓰게 됐다고 한다.

영화 외에도 이창재 감독의 다큐멘터리 <길위에서(2012)> 제작에 연출(조감독)로 참여하기도 했다. <길 위에서>는 일 년에 단 두번만 문이 열리는 비구니 수행도량 ‘백흥암’과 그곳에서 비구니와 함께한 300일 간의 여정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절에 1년 가까이 있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다큐와 극영화의 차이를 다시금 발견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기도 했고, 실제 공간과 사건 안에서 또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던 시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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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사는 바이러스> 스틸컷
 

천사는 바이러스, 위로가 되다
<천사는 바이러스>는 ‘2015 전북 문화콘텐츠 융복합 사업’ 선정작으로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또한 전주 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를 소재로 다룬 동명의 연극을 영화화한 작품이기도 하다.

“3편의 연극 중 하나를 각색해서 영화로 만드는 지원사업이 있었어요. 그중에서 유독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천사는 바이러스>였죠. 지원작으로 선정된 후 전주에 내려가 일정 기간 머물면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따뜻한 사람들이 사는 따뜻한 동네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인가. 김 감독은 영화 촬영을 위한 장소 섭외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말한다. 외려 직접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주는 아주머니가 계셨는가 하면, 많은 분들이 늦은 밤진행되는 촬영에도 불편한 기색 없이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셨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사실 영화 촬영을 하다보면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주변 분들에게 피해를 안 줄 수가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촬영할 수 있었죠. 그래서인지 영화를 찍을 때 그곳만의 따뜻한 감성들이 잘 표현됐던 것 같아요.”

영화가 만들어진 지 한참이 지나서야 극장에 걸리게 됐지만, 코로나19라는 악재는 이미 극장가에도 분 터다. 이로 인해 촬영 및 제작이 연기된 영화들도 많다. 전 세계가 코로나19와 전쟁 중에 있는 것처럼 많은 영화인들 또한 마찬가지고, 김 감독 또한 그렇다.

본래 영화계가 힘든 곳이기도 하지만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그 또한 여타의 다른 일들을 병행하기도 한다. 연기학원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카메라연기 수업을 지도하기도 하고, 시나리오 학원 강의도 기회가 될 때마다 나간다. 그저 영화가 좋기에, 좋아하는 그 마음으로 역경을 해쳐나갈 수 있는 것. 그것이 마음이 가진 힘, 열정이 가진 힘일 것이다.

“극장에서 내리면 아마도 OTT(Over The Top, 인터넷으로 영화, 드라마 등 각종 영상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통해 영화를 만나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시국이 시국인 만큼 영화관을 찾는 관객의 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장기화된 코로나19로 코로나 블루를 넘어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암담하다는 ‘코로나 블랙’에까지 이르렀다.

남을 돌아볼 여유는 어쩌면 사치처럼 느껴질 수 있는 코로나19 시대에 영화 <천사는 바이러스>가 따뜻한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는 김성준 감독. 마지막으로 그는 충분히 좋은 영화, 따뜻한 영화가 많다며 요즘 같은 시국에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추억의 영화를 찾아보는 것도 코로나19로 인한 우울함을 이겨낼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것 같다고 귀띔해준다. 그동안은 인물에 초점을 둔 영화를 만들었다면, 차기작으로는 비트코인을 소재로 한 ‘사건’에 초점을 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김성준 감독. 색다른 옷으로 갈아입을 그의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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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시국에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추억의
영화를 찾아보는 것도 코로나19로
인한 우울함을 이겨낼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