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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융합의 시대,

전시에 미디어를 더하다

지성욱 미디어앤아트 대표


글. 이예진 사진. 남승우 사진제공. 미디어앤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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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욱 미디어앤아트 대표
 


내가 좋아하는 웹툰의 캐릭터가 내 눈앞에 나타난다면? 내가 즐겨 읽었던 소설 속 주인공이 전시의 주체가 된다면? 그리고 명화가 만약 살아 움직인다면 어떨까?

과거에는 원화전이나 사진전과 같이 걸려있는 작품을 보는 형태의 전시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최근에는 눈으로만 보고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영상과 음악 등을 도입한 전시가 늘어난 가운데 이 흐름을 선두에서 이끌어가고 있는 제작자를 만났다. 바로 지성욱 미디어앤아트 대표다.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지 대표는 전시기획사를 이끌고 있지만 이쪽 전공이 아니다. 그는 공대를 나와 엔지니어 일을 했던 사람. 하지만 그에게 전시는 먼 분야가 아니었다.
“중학생 때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나와서 뭘 보자고 하시는 거예요. 가보니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이었어요.

처음 본 뮤지컬이었는데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다 보고 나와 테이프를 사서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들었죠. 당시에 여러 극단들이 돌아가면서 공연을 했는데 쫓아가면서 다 봤어요. 그걸 보면서 생각했죠. 이걸 만드는 사람은 누굴까?”

처음 뮤지컬을 본 지 대표의 머리에서는 <아가씨와 건달들>이 떠나가지 않았다. 그러면서 공연을 만든 사람이 궁금해졌고 처음으로 연출가를 직업으로 삼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쉽게 그 길로 들어서지 않았다. 당시에는 이과 계열이 붐을 일으킬 때였고 지 대표도 시류에 따라 공대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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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욱 대표가 기획한 전시 위)<ALICE:In The Rabbit Hole>, 아래)<반고흐 인사이드 : 빛과 음악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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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살까지 엔지니어로 살았던 그는 IMF시절 회사를 옮기면서 콘텐츠 분야를 결국 만나게 됐다. 여러 회사를 거치면서 그는 콘텐츠 유통, 제작, 판매 등을 경험했고 이것은 지금의 그를 만드는 양분이 됐다. 지 대표는 “30살에 콘텐츠 산업으로 넘어왔는데 드라마, 영화, 예능 등의 상품을 직·간접적으로 제작하고 유통하는 과정 등을 경험했다”면서 “할리우드를 보면 셀럽이나 유명한 연예인들이 자기만의 브랜드들을 만드는데 왜 우리나라에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브랜드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는 셀럽들의 브랜드 런칭을 고민하면서 선후배들에게 이야기를 하니 다들 아이디어는 좋다고 하면서도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직접 배우 고현정을 중심으로 하는 화장품을 만들어냈고 소위 대박을 터트렸다. 하지만 거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지속적인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움직였다. 그게 바로 지금의 회사인 미디어앤아트다.

“저는 여기저기 관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갖고 나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생각을 해요. 아마 이런 호기심을 갖는 것이 창조의 재료가 되는 것 같아요.”

미디어앤아트를 설립한 지성욱 대표는 새로운 전시형태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창조력은 자신이 갖는 호기심에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꾸준히 생각하고 찾도록 노력해야한다고 말했다. 지 대표는 “물리적으로 나이가 드는것과 달리 호기심이 없어지는 것도 나이가 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요즘 수명이 늘어나면서 평생직장이라는 것이 없어졌고 미래를 계속 생각해야하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이건 내가 했던 분야가 아니야, 잘 모르는 분야라서 못해’라고 안주하고 있기에는 남은 삶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어’라고 스스로 팔, 다리를 자르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라며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익힌 경험, 결정력, 네트워크 등은 사회초년생들이 쉽게 가질 수 없는 자산이다. 이런 것을 현실의 트렌드와 맞추는 촉을 계속 세운다면 어느 순간 내가 잘 하는 일을 좋아하면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 이런 말을 그가 할 수 있는 건 유년시절 꿈꿨던 ‘콘텐츠 제작’이라는 분야를 돌고 돌아도착한 그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전시에 미디어를 도입하자 아트(Art)가 됐다
그가 처음으로 기획한 전시는 2014년에 열었던 <반 고흐: 10년의 기록 展>이었다. 1881년부터 1890년 반 고흐가 죽기 직전 10년의 이야기와 명작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등 350여 점의 작품을 미디어아트로 선보인 전시였다. 이전에 있던 전시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전시였다. 전시장도 반 고흐의 그림이 전혀 걸릴 것 같지 않은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이었고 전시장의 모든 벽은 거대한 스크린마냥 고흐의 그림을 물 흐르듯 표현했다. 마치 관람객을 고흐의 그림 속으로 빨아들이는 모양이었다.

이러한 미디어아트 기법은 친숙하지만 명화에 어려움을 느꼈던 일반 관람객에게 아주 친절하게 다가갔다. 엄마 손을 잡고 간 아이들마저 명화가 나오는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획기적인 전시 형태의 첫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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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시소 성수 개관전으로 진행하는 <무민 오리지널 : 무민 75주년 특별 원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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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반 고흐 인사이드> 전시가 열리던 문화역서울 284 앞, 우)<앨리스> 전시를 보러 모여든 사람들
 


지 대표는 “미술 전공 출신이 아니었기에 이런 전시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마 미술 전공이었다면 선입견으로 이런 전시가 안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스스로 “나는 변화와 융합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보통의 전시는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이 없이도 전시장에 오기만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전시를 보여주고 싶은 그였다. 그랬기에 자연스레 영상과 음악 등을 함께하게 됐다고. 그런 그에게 2016년에 있었던 <반 고흐 인사이드: 빛과 음악의 축제>는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다. 장소도 용산 전쟁기념관처럼 독특했다. 바로 구(舊) 서울역에서 문화 전시장으로 탈바꿈한 ‘문화역서울 284’였다.

그는 “우리가 전시하기 전에는 상업전시를 한 사례가 없었다. KBS 등이 진행을 했었지만 전부 공용의 목적으로 했던 것”이라면서 “직접 문화체육관광부에 가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설득을 했다. 그렇게 진행한 전시가 3개월 동안 월 5만 명씩 관람객을 불렀다”고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매일 줄이 길게 서 있는 진풍경이 펼쳐졌어요. 문화역서울 284가 주는 압도감과 분위기를 관람객이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느낄 수 있도록 음악을 준비했는데 저 역시 그 문을 열 때마다 전율이 흘렀어요.”

이렇게 고흐의 명화로 전시를 만들었다면 다음은 우리가 잘 아는 소설 <앨리스>가 전시의 주체로 변했다. 그는 <ALICE: Into The Rabbit Hole(앨리스)>를 “정말 고생했던 전시”라고 회상했다. 기존의 고흐나 클림트 전등은 미디어로 바꿀 수 있는 원화들이 있었다면 앨리스는 모든 것을 재창조해야 됐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앨리스의 이미지는 흑백 삽화 또는 디즈니예요. 그것들을 저작권 때문에 사용할 수 없으니 작가들과 협업해서 처음부터 캐릭터를 만들어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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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의 세포들 특별전>을 찾은 사람들
 


고전 소설 속에 존재했던 앨리스는 개성 넘치는 일러스트, 음악, 영상을 통해 일상을 탈출하는 욕구를 나타내는 매체로 나타났다. 23명의 작가들과 서강대학교 아트앤테크놀로지 교수 등이 모여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지 대표는 “섹션마다 한 땀 한 땀 손이 갔다. 전시를 개최하는 당일 날 2시간 전까지도 뚝딱뚝딱 만들고 있었다”면서 “덕분에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전시의 시초가됐고, 전 세계에 수출까지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앨리스는 2017~2018 전시 티켓 판매 1위를 기록하면서 최종 스코어 25만 명이라는 기염을 토해냈다. 그리고 중국 8개 도시와 홍콩, 대만 등에 수출되면서 해외로 수출을 원했던 지 대표의 목표와 맞아 떨어졌다.

지속성을 위한 발걸음, 그라운드시소
지성욱 대표는 더 많은 전시를 기획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정되어 있는 전시장이 문제였다.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장소를 빌려 전시를 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미디어아트를 구현할 수 있는 대형 전시장을 잡기 위해서는 대기표를 뽑고 있어야했고 그러기엔 작품들이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라운드시소’라는 복합문화공간을 직접 만들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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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전시로 유명해진 <엘리스> 전시
 


“놀이터에 있는 시소를 타면 올라갔을 때랑 내려왔을 때 보는 장면이 다르잖아요. 하지만 바라보고 있는 장면은 결국 같은 거죠. 그처럼 그라운드시소에서는 일상의 소재에서 새로운 재발견을 하는 것들을 보여주고 싶어요. 예술에 트렌드를 더하는 거죠.”그렇게 장소는 3군데로 정했다. 서촌, 성수, 명동. 그리고 지난 7월 서울시 서촌에 개관한 ‘그라운드시소 서촌점’을 오픈하면서 첫걸음을 뗐다. 그라운드시소를 처음 알리는 것이니 만큼 많은 관람객들을 모으면서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개관전을 진행했다.

바로 네이버 웹툰 <유미의 세포들>을 전시의 주체로 올린 것이다. 웹툰을 전시로 만든 것은 업계에서 처음으로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앨리스 전시 이후 비슷한 형태의 전시들이 늘어났고 그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전략이었다. 웹툰을 보는 인구들을 전시 관람객으로 모으기 위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 만화이자 네이버 토요일 연재작 중 1위를 놓친 적 없이 5년 연재동안 누적 32억뷰를 달성한 <유미의 세포들>이 딱 맞았다.

그렇게 진행한 <유미의 세포들 특별전>은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2개월 만에 5만 명이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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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인사이드> 전시
 


코로나19로 모든 업계가 상황을 미루고 있었지만 서촌에 이어 성수에도 그라운드시소를 열었다. 그는 “해외를 다녀보니 문화가 발달한 곳은 무료, 유료를 막론하고 전시장이 많았다. 그걸 보면서 우리나라도 곧 전시 수요가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라운드시소를 생각했다”면서 “관람객들에게 ‘그라운드시소에서 새로운 전시를 하는데 꼭 보러 가야해’라는 생각을 만들기 위해서는 개관을 하루라도 더 늦출 수 없었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렇게 열린 그라운드시소 성수점의 개관전은 지난 11월 13일에 <무민 오리지널: 무민 75주년 특별 원화전>으로 진행됐다. 이번 전시는 작가 ‘토베 얀손’의 원화를 중심으로 하지만 이들의 주특기인 미디어까지 더해져 풍부한 내용을 담았다. 4면 프로젝션 맵핑으로 꾸민 ‘무민의 겨울’은 음악, 영상, 미디어가 모두 합쳐져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을 또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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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욱 미디어앤아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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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시소 성수에서 개관전으로 열리고 있는 <무민 오리지널>
 


“이제는 우리나라 콘텐츠를 해외에 많이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그의 머리에는 내년까지의 계획이 펼쳐져 있었다. 오는 1월에 그라운드시소 명동점을 개관해 이를 해외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을 예정이다.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첫 해외 그라운드시소를 열 계획이다. 그렇게 지성욱 대표의 머릿속에는 국내를 넘어 해외로, 우리의 전시를 또 다른 한류로 만들 계획이 가득 차 있었다.

“전시는 언어적 장벽이 없어서 해외로 나가기 좋은 분야예요. 그런데 작은 전시 제작사들은 해외 유통망을 트는 게 쉽지 않아요. 해외 주요 파트너를 만나기가 쉽지 않고, 직접 두드리는 것도 어렵죠. 그래서 전시가 해외로 개척하는 길을 정부가 ‘전시’라는 하나의 콘텐츠를 제도적으로 마련하고 도와준다면 또 다른 한류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