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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호국정신을 이어 받아
전통무예를 살리다
남한산성 전통무예 무사단 김동희 대표

글. 이예진 사진제공. 남한산성 전통무예 무사단 김동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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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는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다. 예로부터 몸이 건강해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고 지금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스포츠는 우리 삶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고 올림픽이나 월드컵은 국가의 축제처럼 즐긴다.

지금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우리 조상들도 
몸을 단련하기 위해, 자기 수양을 위해 무술을 익혔다. 신라시대의 화랑부터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 전법까지. 우리나라는 반만년의 역사를 겪어오면서 수많은 외침을 당했고 이를 이기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단련했다. 

이에 지난 8월에는 활쏘기가 국가무형문화
재로 등록됐으며 태권도는 전 세계가 즐기는 스포츠가 됐다. 이러한 전통무예의 정신을 남한산성에서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가 있으니 ‘남한산성 전통무예 무사단’을 이끌고 있는 김동희 대표다. 그는 우리 고유의 스포츠인 태권도 7단과 신라시
대 화랑으로부터 전해지는 본국검 7단을 보유하고 있다.


작고 약했던 어린이
김 대표는 어렸을 때 작고 약했다고 한다. 지금은 다리를 쭉쭉 뻗는데 모자람 없는 키를 가졌지만 중학교 1학년 때는 반에서 중간쯤올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많이 맞기도 했다고. 그는 “어느 날 같은 반 친구가 괴롭혀서 맞고 있었는데 이러다가 죽겠다 싶었다. 그때부터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라고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사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꽤 의외였다. 지금
의 그를 봤을 때는 전혀 맞고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우리 막냇동생 친구가 태권도를 다니기에 어떻게 운동하는지 물어봤다”면서 “동생이 알아오길 다리 찢기를 하더라고 전해줘서 그때부터 다리만 찢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리 벌리는 유연성 운동”이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때부터 그는 다리 벌리는 유연성 운동만
하고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그 덕분이었을까. 하늘로 쭉쭉 뻗는 그의 팔·다리는 그가 선보이는 태권도 품새를 시원시원하게 보이도록 해준다.

그렇게 시작한 운동은 고등학교 진학 후 체
육관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비록 대학 전공을 체육계열로 진학하지 않았지만 방학 때마다 산에 들어가 혼자수련을 하면서 수련의 끈을 놓지 않았다. 덕분에 군대에 입대해서도 같은 병사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고 이는 제대한 뒤에도 태권도 사범의 길을 가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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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전통무예 무사단 김동희
 

굴곡진 무예인의 길
김 대표는 군 제대 후 서울 대치동에서 사범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부모님이 많이 반대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사셨던 강원도에서 체육관도 몇 군데 없다보니까 돈을 못 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의 꾀를 냈죠.”

부모님의 반대와 지원도 끊겠다고 하는 말에 그는 우선 부모님께 운동을 그만두겠다
고 했다. 그러면서 군대 다녀오면서 옷이 없으니 옷이라도 살 돈을 달라고 해서 받은 돈이 25만원. 그는 그 돈으로 구두, 속옷, 자켓하나를 산 뒤 나머지 돈을 들고 서울로 도망쳤다. 그는 “운동을 계속 안 하면 인생에서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밤에 야반도주했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서울로 도망 온 그는 알고 지냈던 대치동 관장님 밑에서 사범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강원도 출신이었던 그의 사투리를 학생들이 많
이 놀렸던 것. 그는 “군 제대하고 거의 바로 서울로 왔다보니 강원도 사투리가 그대로 있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했더래요, 그랬더래요’라고 하니까 애들이 킥킥 웃으면서 놀렸다”고 말했다.

그렇게 부족한 부분은 실력으로 인정받았다. 당시 거둬주신 관장님을 쫓아다니면서 
체육관을 운영하는 방법에 대해 배웠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도 실력이 점점 늘었다. 김 대표는 “그때 다른 체육관 가서 그곳 원생들을 가르치면 다 나에게 올 정도였다”면서 “덕분에 회사 다니는 친구들보다 돈도빨리 모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대치동에서 9~10년을 보낸 후 성남
에 체육관을 개업하면서 독립했다. 원생 23명에서 1년 만에 100명으로 늘릴 정도로 열심이었다. 입소문도 잘 탄 덕분에 태권도 체육관뿐만 아니라 검도 체육관도 개업하면서 승승장구했고 대학원도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무리했던 탓일까. 체력에 한계가 오기 시작했고 조금 더 지속가능한 직업
을 원하기 시작했다. “조금 더 안정된 삶을 원하게 됐고 한마디로 외도를 했죠.”

풍력발전으로 눈을 잠시 돌렸지만 중심이 흔들리자 삶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무예인
이었던 그의 중심인 체육관을 등한시하게 됐다. 그러자 다시 생각하게 됐다. 원래 무엇을 가장 하고 싶었는지. 그래서 그는 무술에 열심을 내던 시절 하고 싶었던 전통무예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남한산성에서 자리 잡기
김 대표가 전통무예를 본격적으로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자리를 잡은 곳은 남한산성 아래다. 남한산성은 신라시대 때부터 있었던 오래된 산성으로 현재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돼 있다. 현재 경기도 광주시와 성남시, 하남시에 걸쳐져 있는 이 산성은 수많은 외침을 막으면서 많은 이들의 피를 흘린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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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남한산성은 옛날부터 군사요충지”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면서 지켜낸 곳으로 이곳에서 전통 무예를 지켜나가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작년에 주소지도 이곳으로 옮겼다”며 남한산성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남한산성에서 자리 잡은 그는 2017년에 남한산성 전통무예 수련원을 세웠다. 그리고 다음해 5월 남한산성 체험학습장도 만들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무예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김 대표는 “남한산성 자체가 체험하고 학습할 수 있는 장소”라며 “옛날 무인들이 입었던 옷을 입어보고 활도 쏴 보
면서 우리의 옛 정신을 깨달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이곳을 체험학습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까지 함께하자는 마음에 ‘남한산성 무예촌’으로 법인을 냈다.

그 성과는 지난해에 바로 나타났는데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수학여행으로 이곳을 
찾은 것이다. 당시 색다른 체험을 찾던 한 선생님이 지인을 통해 이곳을 알게 됐고 김 대표는 인근에 있는 도자기공원의 글램핑 체험장과 함께 연계해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당시 학생들은 장수의 갑옷을 입고 선생님은 용포(임금 옷)를 입으면서 무예체험을 했는데 반응이 엄청 좋았다. 김 대표는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프로그램 진행이 어렵지만 지난해를 돌아보면 앞으로 충분히 발전 가능성이 있다”며 “남한산성 무예촌만의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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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복체험
 
전 세계를 모으는 힘, 전통무예
무예촌에서 함께하는 무사단은 현재 15명정도이다. 세계적인 무인들이 모여 각자의 실력을 보이는 대회에서 여러 번 입상할 정도로 개개인의 무술 실력은 훌륭하다. 그래서 김 대표는 이들과 함께 남한산성에서 세계의 무예인들을 모아 우리나라의 무예도 알리고 무술축제도 여는 것이 목표다.

“무예단에 소속된 한 사람 한 사람의 실력이 뛰어난 만큼 우리 무사단의 수준도 높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세계무술축제를 이곳에서 열어 무예로 하나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김 대표가 이끌고 있는 무사단은 조선 정조의 명으로 만들어진 <무예도보통지>를 중심으로 한다. <무예도보통지>는 정조 당시 동 아시아의 모든 무예를 국가적 차원에서 집대성한 조선 무예의 결정판과 같다. 책에는 단순히 무예만 기술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무기에 대한 설명과 함께 검·창·권법·마상무예까지 24기 무예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으며 이해하기 쉽도록 글과 그림을 함께 기록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것도 일제강점기로 나라를 빼앗기면서 맥이 끊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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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전통무예 무사단 김동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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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과 시험 재현 행사
 
대표는 “우리나라가 여태까지 어떻게 존립할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글(文)로만 이끌어 온 것이 아니라 칼(武)로도 버텨왔다. 각 나라의 무예는 그 나라의 기둥과도 같은 것”이라면서 “이러한 기둥이 없어지면 결국 나라도 무너지고 만다. 일제강점기 동안 뺏겼던 우리의 무예를 다시 살리고 이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이러한 전통을 이어 나가기 위해 옛날 무
인들이 쳤던 ‘무과시험’을 프로그램에 넣기도 했다. 이는 무인들의 실력을 점검하기도하면서 전통의 방식을 고수하고, 관람객들에게는 재미 또한 줄 수 있어 기획했다. 지난 8월 15일 광복 75주년을 맞아 진행된 무과시험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관람객들을
모을 수 없어 영상과 사진으로 남겼다.

김 대표는 “일제강점기 이후 잊히고 있던 전
통무예의 위상을 높이고 싶다”며 “더욱 대중화되고 우리의 삶 속에 함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