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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는 공간,

같이 그려 볼까요?”

최윤아 작가


글. 장수경 사진. 장수경, 최윤아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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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눈망울에 푸르름을 담아둔 걸까. 아니, 그 이상의 깊은 것을 바라 본 걸까. 작품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작가의 시선이 궁금해졌다. 다양한 색채와 형상으로 표현한 변형된 숲과 나무, 그리고 하늘과 물속을 배경으로 한 신비로운 풍경은 마치 꿈속을 보는듯 했다. 초현실적인 풍경에 담긴 미지의 공간. 최윤아 작가는 언제부터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두게 된 걸까. 맑은 햇살에 세상이 반짝이던 날, 서울 마포구 합정역 부근 작업실에서 최윤아 작가를 만났다.

보이는 세계 너머의 공간
작업실 곳곳에는 최윤아 작가의 손길이 닿은 작품이 놓여 있었다. 지난 3월 서울 종로구 사이아트 갤러리(전관)에 전시된 ‘숨’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그런데 화면에 담아낸것은 사람의 몸 형태나 숨에 대한 어떤 표현이 아니었다. 그가 그려낸 것은 숲이었고 그 숲을 구성하는 다양한 나무였다. 단지 숨을 연상시키는 표현이었다면 물속이나 하늘의 어떤 흐름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시선은 달랐다. 외적 형상 너머에 담긴 것을 그려내고자 했다.

‘어느 날 세상이 반짝하고 합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물고기가 하늘을 헤엄쳐 다니고, 나무가 구름 위에 솟아나고, 바다 위에 꽃이 피고,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이 한자리에 앉아 잔치라도 했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은 ‘숲을 찾아서(Finding the Forest)’다. 바다에는 물고기들이 떼 지어 자유롭게 다니고, 바다 위로 나무가 우거진 산이 솟아있다. 산 주변으로 구름이 둘려있다. “처음 이 작업을 할 때 섬을 그려놓고 중첩했어요. 물고기가 많이 돌아다니는데 자유를 찾아 돌아다니는 것이죠. 물 안에도 자유가 있고, 숲 안에도 숨 쉴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결국 숨이 물 안에 있는 거죠. 그래서 경계 없이 그림을 그리려고 했습니다.”

작품에 녹아 있는 숲은 결국 숨 쉴 수 있는 공간, 힐링의 세계, 꿈꾸는 공간을 의미한다. 우리의 미래와 바람을 색에 담아낸 것이다. 이처럼 작가가 외형보다는 이면적인 것에관심을 둔 것은 아프리카 북서부에 있는 나라인 ‘모로코(Morocco)’의 한 빈민가에서 현지인을 접하고 그 삶을 이해하면서다. 그들과의 정서적 교감은 물질적 세계 그 이상의 것들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이는 작품 활동에도 영향을 줬다.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이
한자리에 앉아 잔치라도 했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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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아 작가의 작품인 <숲을 찾아서(Finding the Forest)>
 

‘행복한 순간의 장면이 영화의 한 정지화면 처럼 멈추는 기능이 있었으면 좋겠다.’

‘밤물결(Night Waves)’ 작품의 바탕은 밤이다. 그 가운데 동그란 공간에는 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그림은 캔버스 위에 천연 색채인 안료를 사용해서 그렸다. 작가는 모로코에서 2년 정도 살았는데 그 당시 구입한 재료다. 그런데 그림 안에는 반전이 담겨있다. 사실은 현실 세상에서 눈동자로 동그란 공간의 숲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팍팍해 보이는 현실에서 들여다본 숲. 유난히 평온해 보이는 건 그 세상을 동경하고 있기때문 아닐까. 그래서 밤물결인가보다.

“현대인은 자꾸 무언가를 앞만 보고 직진한다. ‘직진본능, 우리’가 있나 보다. 그 우리에서 나왔으면. 초록과 파랑 사이 나는 그곳으로 간다. 눈을 감고 그 사이로 스며든다.”

작품 ‘밤숲’도 시선을 멈추게 한다. 동그란원형이 안쪽에서부터 밖으로 간격을 두고 겹겹이 둘려 있다. 숲을 담아낸 것이다. 이 그림은 핵심은 내가 바라보는 위치다. 하늘에서 숲을 내려다 볼 때는 나무들이 서로를 감싸면서 둘러져 있는 모습이다. 어릴 때부터 작가는 하늘을 나는 꿈을 많이 꿨는데, 그상상력을 그림에 담아냈다. 또 숲 안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시선도 담겼다.

따사로운 햇살이 나무 사이로 들어와 비추는데, 마치 동화 속에 있는 듯하다. 이처럼 두 가지 시선이 한 그림에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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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아 작가의 작품인 <밤물결(Night Waves)>
 


그림 아래에는 ‘물고기눈’이 그려져 있다. 작가의 서명이다. “멈춰 있지 않고 물결을 따라 움직이는 물고기를 나타냈어요. 평소 작업을 하다 보면 그림이 나에게 말 걸어오기도 하는 데, 나를 보며 소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죠.”

눈에 담은 자연, 집안 벽에 그려
최윤아 작가의 고향은 전라남도 고흥이다. 섬이 많고 공기가 깨끗한 곳이다. 어린 시절 그의 집 앞에는 석양이 지고, 푸르른 바다가 펼쳐졌다. 조그맣던 그는 마루에 가만히 앉아 그 싱그러움을 눈에 담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색연필로 아름다움을 하나씩 그려냈다. 어머니는 그에게 작은 스케치북을 선물했다. 하지만 그가 좋아한 건 온 집안의 벽이었다. 작가는 맑고 큰 눈으로 담아낸 바다와 산을 집안 이곳저곳에 그렸다. 그건 행복이었다. 그런 아이를 보는 어머니는 화를 내시기는커녕 아낌없는 사랑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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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최윤아 작가의 작품인 <밤숲>, 우)작품 ‘<나무물고기(Wooden Fish)>’
 

자연스레 학창 시절에도 미술을 전공했다. 고등학교 진학 시험 당시 주변에서는 그의 그림 솜씨에 깜짝 놀라워했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그림체 때문이다. 미술학원은 단 한번도 다닌 적이 없었다. 또래들은 학원에서 배운 방식으로 틀을 잡았다. 하지만 최윤아 작가는 달랐다. 그는 처음부터 틀을 잡는 게 아니라 그림을 그려가면서 작품을 완성했다. 그의 스타일이었다. 미완성작을 처음 본 사람이 ‘갸우뚱’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완성된 작품에서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같은 어린 시절의 추억은 현재 그가 그려내는 그림의 원동력이 됐다. 어쩌면 ‘숨’이라는 건 누구나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일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 숨이 인간의 삶의근원이자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토대가 된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된 듯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가 그려낸 숲과 나무는 숨 쉬는 공간이자 삶과 삶이 연결되는 하나의 공동체와 같은 공간으로 표현됐다. 이는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와는 대조될 수 있다. 그럴수록 작가는 새로운 시선에 도전했다. 보이는 세계 너머에서 숲을 바라보면서, 그 안의 숨결을 느끼기를 원한 것이다. 숨은 곧 삶이고 생명이기 때문이다.

배 속 아이와 완성한 작품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남프랑스 휴양 도시인 ‘아를(Arles)’을 좋아했다. 반 고흐가 이곳에 머문 기간은 고작 15개월. 하지만 무려 180여 점의 작품이 이곳에서 탄생됐다. 최윤아 작가에게도 ‘숨’ 작품 준비 기간은 어느 때보다 특별했다. 배 속 아이와 함께 작품을 하나씩 완성해 간 것이다. ‘톡톡’ 발로 배를 차는 아이의 움직임에서 생명을 느꼈고, 처음 느끼는 여러 감정은 창의성을 더했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딸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을 통해 새로운 작품의 모티브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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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아 작가가 작품 사이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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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고요(Silence)>’
 

최윤아 작가는 2005년부터 아트페어, 단체전, 개인전을 꾸준히 해 오고 있다. 특히 개인전은 ‘사랑’ ‘인연’ ‘느낌’ ‘점’ ‘기억’ ‘결’ ‘숨’을 주제로 해왔다. 각각의 주제는 마치 하나의 스토리텔링처럼 이어져 있다. 다음 전시 주제는 아이에 관한 모티브다.

“제가 그리는 작품의 배경은 그냥 배경이 아닌, 공간입니다. 요즘 우울한 소식도 많고, 숨쉬기 힘든 공간 속에서 하루하루 버티고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숨 쉴 수 있는 공간, 꿈꾸는 공간을 함께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행복한 공간, 밝은 미래에서 살았으면 합니다.”

최윤아 작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연기된 전시를 내년이나 내후년에 해외에서 열 예정이라고 한다. 또 하나의 꿈이 있다면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와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다. 함께 그림 그리고 전시하고, 또 추억을 담아 책을 출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작가는 아이와 함께 담아낼 또 하나의 시선을 꿈꾸고 있었다.

“그림은 저에게 여행입니다. 늘 설레고 어디 최윤아 작가가 작품 사이에 앉아 있다 론가 떠나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