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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농업기술원 화훼연구소 정용모 박사
 
자연변이를 통해 얻어진 꽃 ‘그린볼’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승부수 던진다
 
글/사진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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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모 박사와 거베라
 
 
 
그가 새로운 품종 개발에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외국품종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모종을 농가에 공급할 수 있고, 농가가 외국에 지불하는 로열티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경남농업기술원 화훼연구소 정용모 박사는 기존 거베라와는 형태를 완전히 다르게 소형화하고 둥글게 변형화한 ‘그린볼’ 품종을 개발해 전문가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 박사는 17년 동안 49종의 품종을 개발 출원해 국내 화훼농가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린볼은 세계 최고의 거베라 공급회사인 네덜란드 플로리스트사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 해외 시장 진출도 기대하고 있다.
 
   
보랏빛 제비꽃이 그를 이끌다

그의 책상 위에는 줄기 모양이 게의 발을 닮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게발선인장이 붉은 꽃을 피운 채 수줍게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게발선인장을 유심히 관찰하자 정 박사는 어머니가 좋아했던 꽃이라고 기자에게 소개한다. 울산 언양이 고향인 그는 어릴 적부터 꽃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그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일이다. 봄만 되면 제비꽃이 넓은 부추 밭을 보랏빛으로 물들이곤 했는데, 밭에 핀 제비꽃은 부추가 자라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잡초처럼 뽑혀야 했다. 어린 정 박사는 어머니가 뽑아 버린 제비꽃을 모두 집으로 가져와 사용하지 않는 그릇이나 깡통 등에 정성스레 다시 심곤 했다. 직접 심은 제비꽃에 물을 주며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어린 시절 유일한 기쁨이었다.

“제가 살던 시골에는 봄이 되면 민들레와 창꽃(진달래)이 들과 산을 뒤덮었어요. 특별한 장난감이 없던 시절 이 산 저 산을 다니며 창꽃을 따먹고, 꽃을 친구삼아 놀았지요.” 정 박사의 꽃에 대한 첫 사랑은 꽃을 벗 삼았던 작은 즐거움에서 시작됐다.
 
꿈 많던 시절 경영학과에 진학하길 바랐던 부모님 뜻을 저버리고 동아대학교 농대에 입학한 그는 원예학과를 선택했다. 정 박사는 원예학을 공부하면서 모든 꽃을 다 접할 수 있어 마치 천국을 만난 것처럼 기뻤다. 그는 수업을 마치면 곧장 온실로 달려가 꽃을 관찰하곤 했다. 정 박사는 어릴 적 가장 좋아했던 제비꽃을 석사 과정부터 연구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흰 제비꽃과 보라색 제비꽃으로 새로운 품종을 개발, 육종관련 새로운 식물체를 만드는 것에 성공하며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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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칠 줄 모르는 거베라에 대한 열정
 
그의 꽃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뜨겁기만 하다. 새벽에 급히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온실에 꽃이 잘 있는지, 꽃이 어제 많이 피었던데 지금은 어떤지 온통 꽃에 대한 생각뿐이다. 과연 꽃을 연구하는 것이 그의 천직임을 짐작케 한다.

정 박사는 1998년 농업기술센터 초창기 멤버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곧장 연구소에 들어왔다. 그리고 거베라와의 인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정 박사는 새로운 종자를 개발하는 것은 대단한 인내심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거베라는 다른 꽃에 비해 향기가 거의 없으며, 꽃대 하나에 꽃 한 송이만 핀다는 단점 아닌 단점이 있다. 이에 정 박사는 꽃대 하나에서 여러 꽃송이를 얻는 것과 키가 큰 거베라의 특성을 바꿔 작은 화분용과 정원용으로 품종 개발하는 것을 앞으로의 목표로 삼고 있다.
 
정 박사는 새로운 품종을 개발할 뿐 아니라 국내 품종의 우수성을 화훼농가나 해외에 알리는 데에도 주력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국내 거베라 재배면적은 약 60ha로 상당수가 수입품종에 의존하고 있는데 수입 종자를 사용할 경우 농가에서 부담하는 로열티가 만만치 않다. 그 노력의 결실일까. 해외에서도 국내 품종 우수성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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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볼
 
 
“2013년 10월 세계 최고의 거베라 공급회사인 네덜란드 플로리스트사 아시아 마케팅 담당자가 국내 품종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제가 개발한 4개 품종 모종을 네덜란드에 가져가서 직접 심어보고 시장성을 타진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정 박사는 이미 거베라의 원산지인 남아프리카에도 3차례나 찾아가 현지의 온도와 습도, 생육환경 조사를 모두 마친 상태다.
 

획기적인 신품종 ‘그린볼’ 탄생

일반적으로 변이 품종이 나오려면 인위적으로 화학 처리를 해서 변이를 유발시켜야 한다. 반면 정 박사가 개발한 ‘그린볼’은 수정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변이가 된 것으로 자연적으로 얻어진 품종이다. 종자를 파종하면 파종한 날로부터 꽃이 필 때까지 100일정도 걸린다. 그는 파종을 하고 20~30개 종자를 심은 후 첫 꽃이 피면 색깔이나 형태를 분석한다. 정 박사는 둥근 형태의 꽃봉오리를 보고 ‘곧 꽃이 피겠구나’라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칠 뻔했다. 하지만 그냥 봉오리가 아닌 것 같은 느낌에 자세히 들여다본 결과 완전히 꽃을 피운 상태로 꽃잎이 퇴화된 변이개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다시 생장점을 따서 증식시킨 후 꽃잎이 나오지 않는 그린볼을 탄생시켰다. 거베라는 색깔이 화려해 축하화환에 주로 쓰이고, 그린볼은 꽃잎이 없어 꽃꽂이 소재 등 다양한 곳에 활용할 수 있다. 거베라는 모종을 심거나 파종을 해서 첫 꽃이 필 때까지 100일 정도 걸리며 1년 동안 한 포기에서 50송이를 수확할 수 있는 반면, 그린볼은 1년에 한 포기에서 120송이 꽃을 피워낸다. 2013년 품종등록을 마친 그린볼은 현재 모종이 만들어진 상태다. 그린볼의 가장 큰 장점은 1년 내내 생산이 가능하고 우리나라 기후 등 환경에 잘 적응한다는 점이다.

그가 새로운 품종 개발에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외국품종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모종을 농가에 공급할 수 있고, 농가가 외국에 지불하는 로열티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수입 종자의 가격인하도 유도할 수 있다.

정 박사는 거베라를 17년째 연구하면서 무려 49품종이나 개발했지만,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무궁무진 한 꽃이 또한 거베라라고 말한다. ‘신비로움’이란 꽃말을 가진 거베라에 대한 정 박사의 열정이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