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루 | GEULMARU

로그인 회원가입 즐겨찾기추가하기 시작페이지로
글마루 로고


 

“문화재 장인들,

귀한 보석이죠”

박종군 국가무형문화재기능협회 이사장


글, 사진. 장수경


01.jpg
 


예로부터 전해 오는 전통 예술. 판소리나 탈춤은 물론 전통 부채나 은장도 등을 만드는 기술도 모두 ‘무형문화재’에 포함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이지만, 이를 보유한 사람은 특별하고 보석과도 같은 존재였다. 한국인의 정체성이 그대로 깃들어 있는 무형문화재. 전통이 더 귀하고 귀한 현대 사회에서 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최전방에서 힘쓰고 있는 이가 있으니 박종군 국가무형문화재기능협회 이사장이다.

하얀 뭉게구름이 고개를 내민 따뜻한 봄날,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에 위치한 ‘국가무형문화재기능협회’에서 박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장도장(粧刀匠,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이다. 부친인 박용기(1931~2014)씨의 정신을 이어받아 현재 광양장도박물관(전수관)을 운영하고 있다.

곳곳을 다니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박 이사장. 그럼에도 그는 늘 인자한 미소를 간직했고 주변에 긍정적인 힘을 줬다. 어느 봄날의 눈이 부신 햇살같이 따뜻한 에너지를 가진 그였다.

“이사장님의 매력은 무엇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저는 말 잘 듣고 시킨 대로 잘한다. 머슴이다”라며 털털하게 웃었다. 매우 당연하다는 듯 그는 대답했다. 박 이사장은 “직분은 권위를 내세우는 자리가 아니다. 협회의 선생님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자리”라며 “이 자리는 일 안하면 직무유기다. 제대로 일을 하려면 전통문화 계승·발전을 위한 기본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대답했다.

   

02.jpg
박종군 국가무형문화재기능협회 이사장
 


침선·조각·궁시 등 12공방
국가무형문화재기능협회는 1973년 창립 이후 우리의 전통공예를 전승・보존하고 육성・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협회는 국가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수상자, 대한민국이 인정하는 명장 등 200여 명이 소속돼 있다. 협회는 ‘12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침선・조각・각자・궁시・악기・화각・소반・매듭・갓일・자수・입사 공방 등이다. 우리 문화 역사를 지키기 위해서 톡톡히 제 몫을 해내고 있는 회원들이 있기에 박 이사장은 더욱 박차를 가하는 듯했다.

협회에서는 회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일을 한다. 회원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소통한 후 관련 기관에 의견을 전하고 있다. 예컨대 어떤 제도 개선이나 예산과 관련해 보완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또한 한국무형문화의 발전을 위해 현장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해서 환경이 바뀌도록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박 이사장은 “꾸준한 소통으로 해결되는 것도 있고 난관에 부딪히는 것도 있다”라며 “협회의 목소리는 공동의 관심사이자 애로사항이고 풀어야 할 숙제다. 올해 해결 안 되는 것도 있지만 포기하면 안 된다”라며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는 취임 후 2년 동안 쉴 새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03.jpg
바느질로 옷과 장신구를 만드는 기술인 침선 (출처: 문화재청)
 
rz_04.png
끈목을 이용해 만들어진 매듭 (출처: 문화재청)
 


05.jpg
활과 화살을 만드는 기술을 가진 궁시 (출처: 문화재청)

 
rz_06.png
조선시대 성인 남자들이 외출할 때 반드시 갖추어야 할 예복 중의 하나인 갓 (출처: 문화재청)
 


박 이사장 취임 후 협회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특히 지난해에는 다양한 성과를 거뒀다. 먼저 전수교육관 1층 ‘The shop 리모델링’을 위해 10억 예산을 확보했고 올해 완공 예정이다. 또 기능보유자들의 ‘공개행사’ 법안개정이 통과되면서 올해부터는 전시나 공개행사 중 하나를 택해 대중에게 선보인다. 무형문화재 전승활동비도 올해부터 상향 지원된다. 회원들과 호흡을 같이 한 결과일까. 그는 한시름 던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기술 보유 장인으로서 처음으로 한국문화재재단이 주최한 토크 콘서트에 참여한 것이다. 토크쇼의 반응은 그야말로 대폭발이었다. 그의 유머러스함과 명철함이 통한 것이다. 박 이사장은 “예능인과 달리 장인들은 베일에 싸여 있어 국민이 잘 모른다. 이런 점에서 장인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알릴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면서 토크쇼에 참여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고 한다. 특히 무형문화재분들에 대한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이사장은 “장인들은 가벼운 처벌에도 무형문화재에서 쉽게 지정해제가 될 수 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그는 “숭례문이 불탔을 때 긴급 복구해 여전히 ‘국보 제1호’로 남아있다”라며 “그런데 보물・국보급 문화재를 만든 것은 기능을 가진 우리 장인들이다. 충분히 보호 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대체복무제도 도입, 의료혜택 등도 이뤄져 전통의 맥이 단절되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충효’ 정신 담긴 작은 칼 장도
박 이사장이 우리 문화재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 역시 장도장으로 한평생을 살아와서다. 그의 부친은 장도 문화 계승 발전을 위해 전 재산을 광양장도박물관(전수관)에 기부했다. 부친이 평생 만들어온 작품은 이곳에 전시돼 있다.

‘장도(粧刀)’는 몸에 지니는 칼집이 있는 작은 칼이다. 패도(佩刀)와 낭도(囊刀)의 복합어로 평소 몸을 치장한다고 하여 치장 ‘장(粧)’, 칼 ‘도(刀)’를 써서 장도라고 한다. 예로부터 선비의 나라라고 일컫는 한국은 남을 해치는 게 아닌 자기를 보호하는 호신용 칼이 발달했다.

박 이사장은 “모든 전통문화는 다 소중하다. 특히 장도는 정신문화라는 특수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충효(忠孝)와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단어들을 장도에서 찾을 수 있다”라며 “우리 선인들은 정신을 몸에 품고 다녔다. 그것을 이어가는 게 장도장으로서 정신”이라고 설명했다.



rz_07.png
몸에 지니는 조그만 칼인 장도
 

원형 계속 보존돼야
변화가 거듭되는 사회에서 전통을 지키기 위한 그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특히 원형 보존을 유지하면서 현 시대에 발맞춰 가야하는 커다란 과제를 안고 있다.

박 이사장은 “우리는 21세기에 살고 있다. 현재의 문화가 18세기와 똑같다면 분명 문명이 뒤처지는 것이다. 문화는 시대적인 상황・환경・가치관이 내포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이런 예술적인 게 21세기에 있었구나’라고 후대에 느끼게 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전통은 정신세계를 이어가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 변화돼야 대중 속에 녹아내릴 수 있다”며 “원형의 전승과 함께 현대에 맞춰 변화되는 것 두 가지가 동시에 공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역사와 문화는 우리의 뿌리다. 뿌리 깊은 나무는 가지도 튼튼하고 열매도 맺힌다”라며 “문화를 지키는 것은 장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국민과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화 선진국이 세계를 지배한다. 지금은 문화전쟁시대”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