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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음식에는

역사가 있어요”

윤영덕 녹우당종가음식보존연구회 회장


글. 이예진 사진제공. 윤영덕 녹우당종가음식보존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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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최남단. 땅 끝 마을 해남에는 고산 윤선도의 후손인 해남 윤씨가 자리를 잡고있다. 해남 윤씨는 60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데 그 중에서도 끊이지 않고 전해져오는 것이 있는 것이 종가 음식. 오랜 시간 켜켜이 쌓여 전해져 온 종가 음식을 또 보존하고 연구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윤영덕 녹우당종가음식보존연구회 회장이다.

운명처럼 다가온 요리
윤영덕 회장에게는 요리가 삶과도 같았다. 물론 처음부터 직업이 요리 연구가는 아니었다. 결혼 전에는 은행에서 근무했었다는 그. 하지만 음식은 운명같이 다가왔다. “결혼을 하면서 직접 내 손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 뒀어요. 어느날 기술센터에서 교육이 있다고 해서 한 번 들으러 갔는데 폐백 요리에 관한 교육이더라고요.”

우연한 기회에 폐백 요리를 공부하게 된 윤회장은 처음부터 낯설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가 요리를 잘 하시면서 폐백 요리를 이 집, 저 집 많이 하러 다니셨다”면서 “그 모습을 어릴 때부터 보고 자라서 그런지 폐백 요리는 나에게 익숙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였을까. 3월부터 교육을 받기 시작했는데 같이 수강하던 수강생이 4월에 폐백 요리를 주문했다고 한다.

“같이 수업 듣던 한 분이 제 요리를 보더니주문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작은 애 업고 가서 처음으로 돈 받고 했던 것 같아요.” 약 22년 전 당시 12만원을 받고 시작했던 폐백 요리는 어느 순간 주문량이 일주일에 23개나 될 정도로 입소문을 탔다. 그는 “낮에는 교육받고 밤에는 잠을 안자고 음식을 했다” 면서 “아이들을 내 손으로 키우려고 그만뒀던 직장인데 요리로 일을 하고 있었다. 아마 음식과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어릴 때 우리 집에 장을 담아 놓은 장독대가 많았는데 거기에 부추나풀 같은 것을 내 마음대로 썰어서 넣은 기억이 있다”면서 “어머니께 혼이 난 기억은 없는데 어렸을 때부터 칼질을 자연스럽게 했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말했다. 이어 “저희 집에 세를 들어 사시던 분이 계셨는데 어르신이 내가 크고 나니까 ‘장독대에 풀 같은 것을 많이 넣는 너 때문에 많이 속상했었다’고 말씀하시더라”면서 “나중에 듣고나니까 죄송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온고지신’의 마음으로
폐백 음식을 하면서 기술센터랑 협업으로 연구를 많이 했다. 그러면서 향토음식에 눈이 갔다. 우리 지역 해남에서 나는 재료로 어떤 음식을 만들 수 있을까 하면서 연구한 음식이 책으로 2~3권 낼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었다. 윤 회장은 “향토음식을 연구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우리 집안의 종가음식으로 눈이 옮겨졌다”면서 “결국 종가음식이 향토 음식이었다”고 설명했다.

2005년쯤 종가음식과 해남 향토음식 전시를 하기도 하고,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관광음식 대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해남에서 갖고 간 음식이 얼마나 촌스러웠겠냐”면서 “그래도 우리 재료로 하는 향토음식을 고집했다”고 말했다. 그 고집은 상으로 이어졌다. 해남의 우수한 고구마로 만든 음식과 양갱을 들고 갔는데 최우수상을 받은 것이다. 그는 “다른 팀과 달리 우리는 전통 방식의 요리법으로 음식을 내놨었다”면서 “온고지신의 마음과 같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에 와서 당시의일을 생각하면 ‘내가 참 열심히 했구나’ 싶어요.”

향토음식을 고집하는 윤 회장에게 ‘녹우당 음식’은 ‘진짜 향토음식’이었다. 그는 “녹우당 음식이야말로 뿌리 깊은 향토음식”이라며 “물론 민가에 비해서 궁에서 하사받은 재료들도 있다 보니 조금 더 고급화됐지만 향토음식으로 맥은 같이 한다”고 설명했다.

지금 녹우당 종가음식을 하고 있지만 이는 다행히 ‘해남 윤씨’ 집안사람인 것이 많이 작용했다. 그는 “아무래도 종가집이다 보니까 보수적인 모습이 많다”면서 “재작년쯤 제사를 준비하는데 힘에 많이 부쳐서 제자를 키울 겸 다른 사람을 데리고 가서 음식을하려고 하니까 종부님이 깜짝 놀라셨다. 부엌에 윤씨 집안 외의 사람은 들이지도 못하게 하셨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내 손으로 키우려고
그만뒀던 직장인데
요리로 일을 하고 있었다.
아마 음식과 운명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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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우당 앞에서 윤영덕 회장
 


이런 윤 회장은 종가음식의 보존을 위해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다. 사실 ‘녹우당종가음식보존연구회’를 만든 이유도 이와 같다. 정회원 12명, 명예회원 8명을 포함해 20명으로 구성된 연구회는 함께 모여서 음식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 즉 ‘종가음식’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이다.

윤 회장은 “다들 요리에 관심이 많고 열성적인 분들이 모이다보니 원활하게 교류가 이루어진다”면서 “나름대로 자기분야에 전문가들이 모여서 이해가 빠르고 소통이 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인전 같은 전시는 혼자, 빠르게 하지만 ‘녹우당종가음식’이라는 주제로 하면 회원들과 즐겁고 다양하게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밝혔다.

그래서일까. 윤 회장은 아직도 배움을 놓지않고 있다. 원래는 고졸로 가방 끈이 짧았던 윤 회장이었지만 요리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위해 ‘만학도’로 열성을 보였다. 목포과학대와 광주에 있는 남부대학교를 졸업하면서 석사 등록도 했지만 그래도 그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느낀다. 교육을 하려면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과학적으로도 풀어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아쉽다는 것이다. 윤 회장은 “종가음식을 정리해서 책을 내고 싶은데 아직 많이 부족하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해야 하는데 대학에서 공부를 해도 아쉬운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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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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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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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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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포
 


600년 역사의 녹우당 종가음식
해남의 대표 유적지로 꼽히는 녹우당(綠雨堂)은 고산 윤선도의 가르침을 받았던 효종이 수원에 지어준 집이었다. 하지만 효종이 승하하자 힘이 빠진 윤선도는 해남으로 내려오면서 수원의 집을 이곳까지 옮겨왔다.

이러한 녹우당 뒤편에 있는 덕음산에는 비자나무 숲이 있다. 1972년 제241호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도 한 비자나무 숲은 약 500년 전 윤선도의 4대조인 윤효정이 조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랜 시간 함께한 만큼 비자나무 열매로 만든 ‘비자강정’은 제사상에서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달달하면서도
쌉싸름한 맛이 별미인 비자강정은 이곳이 아니면 맛보기 어렵다.

이렇듯 녹우당 음식에는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고산 윤선도가 하사받은 ‘어만두’는 궁중 음식의 ‘어만두’와 또 다르다. 배추로 유명한 해남이기에 다른 어만두와 달리 속을 배추로 채운다. 그래서 녹우당 ‘어만두’는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윤 회장은 어만두에 대해 “궁에서 하사받은 음식을 여태껏 보존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우리 고장의 식재료를 이용한 것은 매우 지혜롭다고 생각한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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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단자
 


이 외에도 바다를 인근에 둔 해남이기에 해산물을 이용한 감태강정, 해삼말이 등도 녹우당 특유의 음식이다. 하지만 바다 재료로하는 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에 자주 나온 ‘연잎밥’도 유명하다. 하얀 연꽃이 피는 마을이라고 해서 ‘백연동’이라고도 불렸던 이곳에는 ‘연지’라고 불리는 연못이 있다. 이곳에서 나는 연잎으로 만든 밥인 ‘연잎밥’은 윤선도가 한양에 갈때 항상 챙겼던 음식 중 하나였다. 윤 회장은 “지금으로 치면 도시락과 같은 용도”라면서 “연잎에 밥을 싸서 가면 상하지 않고 먹을 수 있어 선조들이 항상 챙겼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윤 회장이 기록해놓은 녹우당 음식만 130~140가지 정도 된다. 물론 재료에 따라 음식 조리법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가짓수는 셀 수 없다. 그랬기에 윤 회장은 녹우당 음식을 책으로 만들어 더 오랜 시간 보존되길 원하는 마음이컸다. 그는 “녹우당 음식은 600년 전통 그대로 내려온 아주 큰 보물”이라며 “궁중 음식은 한 번 맥이 끊겼지만 우리는 끊긴 적 없이 오랜 시간 지켜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윤 회장의 얼굴에는 ‘하나의 문화를 지키겠다’는 포부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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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만두
 


더 많이, 더 널리
윤 회장은 녹우당 음식을 지키는 것 외에 알리는 것에도 열심이다. 그러기 위해 연구회 회원들과 다양한 공부를 하고 있다. 특히 향토음식이기에 지역의 특성, 역사, 지리까지 공부하고 있는 그는 “음식 조리법만 아는 것이 아니라 그에 얽힌 모든 것을 이해해야 요리에 ‘정성’을 담을 수 있다”며 “조상들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 종가음식의 특이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책을 쓸 때도 그저 음식의 요리법을 적는 것이 아니라 녹우당 음식의 이야기 하나하나를 기록해 알리고 싶다”며 “그러기위해 공부를 놓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윤 회장은 녹우당 음식을 가르칠 때 조리법만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해남의 특산물, 해남 윤씨 선조들의 배경 등도 함께 교육한다. 그러면서 그는 “고산다실을 개방해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며 “이곳을 찾는 손님이나 관광객들이 와서 언제든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특히 3월부터 진행되는 프로그램에서는 간단한 다식을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녹우당 음식을 통해 삶의 지혜를 배웠으면 좋겠다”며 “전수관도 하나 만들어서 녹우당 음식이 오래 남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