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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함께라서

좋다, 참 좋다"

(사)한국각자협회 이사장 심종보 명인


글. 백은영 사진. 이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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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바로 나무를 깎아만든 장승이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으로 불리며 마을로 들어오는 악귀를 막아주고 마을 사람들을 수호하는 역할을 했던 장승. 지금은 그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려워 더욱 그리워지는 문화 중 하나다. 자칫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있었던 우리네 문화이자 풍습인 ‘장승’을 깎아 만드는 이가 있으니 (사)한국각자협회 이사장 심종보 명인이다.

심종보 명인은 장승뿐 아니라 솟대, 각자(刻字)에 있어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전통 서각(제13-1101-32호)과 장승(제14-1131-26호) 명인으로 등록돼 있으며, 솟대(제30-0507119호)와 장승(제30-2009-0005986호)에서 디자인 특허를 갖고 있다. 이뿐 아니다. 끊임없는 작품 활동과 한국예술문화명인전승아카데미를 통한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어 그를 따르는 이들도 많다. 명인으로서 인정받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끊임없는 자기 개발과 전시회 등을 통해 우리의 전통문화를 더욱 발전, 계승시키는 일에 전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이 참으로 매섭게 불던 초겨울 심종보 명인을 만났다. 그날도 어김없이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2019 한국예술문화명인 전승아카데미 발표회’에서 만난 그는 전승아카데미 회원들과 함께 전시에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각 분야의 여러 명인들이 한 해 동안 활동해 온 모습을 보여주는 자리이자, 우리네 전통문화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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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를 지켜주고 싶다
전시회장을 잠시 둘러보고 자리를 옮겨 대화를 이어갔다. 인터뷰 내내 심 명인이 가장 많이 내비친 말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20년 넘게 작품 활동을 해온 여러 ‘명인’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20년 가까이 활동하신 명장들 중 작품성도 뛰어나고 년 수도 되는 분들에게 (한국각자) 협회 차원에서 ‘한국각자 명장’과 같은 명칭을 부여해 그분들에게 품위나 명성을 쌓아주고 싶습니다. 이미 초대 작가 타이틀을 갖고 계신 분들은 많아요. 그분들 중 끊임없이 자기 개발 및 후학 양성 등에 힘써 오신 분들에게 그에 맞는 명예를 주고 싶은 것이죠. 명인들이 꾸준히 활동하고 그 전통을 제대로 계승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주고 싶어요.”

심종보 명인은 2020년부터 (사)한국각자협회 이사장직을 맡게 됐다. 각자협회 회원들의 명예를 지켜주고, 더욱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해주고 싶다는 그의 바람에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리게 된 것이다.

심 명인은 현재 30개 정도 되는 지부․지회를 임기 동안 50개 정도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최대한 지부와 지회를 늘려 네트워크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취지다.

“공모전도 너무 남발하지 않는 선에서 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좀 더 제공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전통서각과 현대서각의 분야를 나누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전통을 지켜간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그분들의 프로필에 한 줄 더 추가해드리고 싶은 것이 제 바람입니다. 물론 ‘겉치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력과 함께 경력이라는 것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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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나무가 좋았다
심 명인이 장승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때다. 미술책에서 본 장승을 재미삼아 깎아본 것이 인연이 됐다. 선생님께서 잘 깎았다며 칭찬해주셨던 기억이 남아 있다는 심 명인. 그 기억을 뒤로 한 채 시간이 흘러 20대 후반이 된 그는 전적으로 나무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산으로, 더 높은 산으로 좋은 나무를 찾아다닌 지가 어느덧 35년이 됐다.

“보통 장승을 깎을 때 광솔나무를 많이 써요. 소나무가 죽고 오래되면 송진이 응축돼 남아 있는데 나이테가 멋진 나무를 찾으려면 높은 산으로 들어가야 해요. 보통 1000고지 정도 되는 곳으로 가야 나무가 썩지도 않고 나이테도 촘촘해져서 장승을 깎기에 딱 좋거든요.”

나뭇결이나 색감이 아름답기에 힘들어도 일부러 높은 곳에 있는 나무를 찾으러 다닌다는 심 명인. 그만큼 장승을 향한 그의 사랑도 남다르다. 물론 글자를 새기는 서각의 길도 재미있고 정이 가지만, 이상하게도 장승이 팔려 가는 날이면 마음이 한구석이 허전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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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서각을 많이 하고 있지만 장승이 더 친근감이 들어요. 예를 들어 누가 장승을 사가면 왠지 너무 서운해져요. 꼭 자식이 팔려가는 느낌이랄까요.”

심 명인은 굳이 장승마다 이름을 새기지는 않는다. 다만 장승을 깎을 때, 그날그날의 느낌에 따라, 나무의 생김새에 따라 장승의 모습이 달라진다. 마음이 편할 때는 장승의 표정 또한 온화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장승의 표정도 험악해진다. 그렇기에 장승을 깎을 때의 마음가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다.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장승의 표정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전 보편적으로 온화한 표정보다는 조금은 강인한 인상, 험상궂은 인상을 더 좋아해요. (장승이) 마을을 지켜야하는 의도도 있지만 강직해 보이는 그 모습들이 믿음직스럽거든요.”

장승을 깎는 일은 쉽지 않다. 기술적으로야 배우면 할 수 있겠지만 사람의 모양을 깎아 만드는 것은 기술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하는 심 명인. 그 자신도 한때 달마를 깎은 적이 있었지만 스무 개 정도 깎고 나니 왠지 더 이상 깎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장승을 깎으면서는 “아~ 이게 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니 역시 인연은 따로 있나보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한국예총) 활동을 하고 있는 그이지만 한국예총이 진정으로 예술문화인들을 위한 활동과 운영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더 이상의 말을 아끼는 그에게서 한국예총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지 않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나무를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고 전통을 사랑하는 그다. 나무가 있어 좋고, 나무와 함께여서 행복하다는 단초 심종보 명인.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딱 그만큼의 환경이 허락돼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

하루하루 작품 활동을 열심히 하고 후학 양성에 힘쓴다면 굳이 내가 욕심내지 않아도 언젠가는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고 믿는 심종보 명인.

“사람과는 하루 종일, 며칠 동안 대화하기 어려워도 나무와는 몇 날 며칠이라도 대화할 수 있어요. 나무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 거든요.”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 여운에 남는 건 그가 천생 ‘나무꾼’으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닐까. 나무꾼 단초 심종보 명인이 이끌어갈 (사)한국각자협회의 앞날이 자못 기대가 된다.

단초 심종보 명인
(사)한국각자협회 이사장
한국예술문화명인전승아카데미 원장(한국예총)
고려대학교 서예문인화 최고과정 출강
한국예술문화명인 인증(한국예총)전통서각(제R13-04-12-41호)
한국예술문화명인 인증(한국예총)전통장승(제R14-04-18-14호)
솟대 디자인 특허등록(제30-0507119호)
장승 디자인 특허등록 (제30-2009-0005986호)
개인전, 해외전(일본, 캐나다, 중국) 등 200여회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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