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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닥종이 인형에

삶의 희로애락 담았네

김근화 닥종이 조형작가


글, 사진.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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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기록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글로, 누군가는 그림으로 또 누군가는 눈을 감고 하루에 하루를 더해간다. 어떤 형식이나 틀은 정해져있지 않다. 닥종이 조형작가 김근화(60) 씨의 인형에도 삶이 기록됐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 속에는 우리네 삶의 희로애락이 버무려져 있다. 행복했던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닥종이 인형이 가진 매력이라고 김 작가는 말한다.

닥나무로 만들어‘ 닥종이’
볼이 빵빵한 동글동글한 얼굴에 납작한 코, 치아를 다 드러내고 해맑게 웃는 입. 한지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낸 표정이다. 닥종이 인형은 순박한 동심의 표정으로 완성된다. 수개월동안 붙이고 말리고 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가녀린 한지가 어느새 단단한 조형물로 바뀐다. 우리 고유의 한지로 만든 닥종이 인형은 작가의 마음과 정성이 담기면서 새 숨을 얻는다. 김근화 작가는 손끝으로 한지를 살살 찢어 붙이며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닥종이는 한지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에요. 닥나무 껍질에서 섬유질을 채취해 만들기 때문이죠. 닥종이를 ‘한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서양의 종이인 ‘양지’와 비교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죠. 한지는 물과 풀과 가까워서 자유자재로 표현도 가능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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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종이 공예는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거스르는 작업이다. 인내와 정성이 요구된다. 한지를 한 겹 한 겹 찢어 붙이고 다시 말리는 과정을 수개월 거쳐야 인형이 탄생한다. 가녀린 한지가 겹겹이 붙어 딱딱하게 굳으면 톱으로도 자르기 힘들만큼 강해진다. 부드러움과 강함을 동시에 지닌 우리나라 전통종이 한지다. 김근화 작가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작품을 가져와 닥종이 인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뼈대를 만들고 머리와 몸통을 만든 후 팔과 다리, 손과 발을 만드는 식으로 진행돼요. 그 위에 한지를 붙이고 또 말리면서 얼굴에 표정을 담고 옷을 입히는 과정까지 거치면 작품이 나와요. 머리를 만들면서 눈을 키우고 코를 높이면서 인형의 표정을 만들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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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는 천년 비단은 오백년
‘한지는 천년, 비단은 오백년’이라는 옛말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부드럽지만 질긴 이 한지로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어 사용했다. 그중 인형도 있다. 한지라는 자연 소재로 만들었다는 것은 서양 인형과 우리나라 닥종이 인형과의 차이점이다. 그렇다 보니 인위적인 느낌이 없다. 살아 있고 포근한 느낌마저 준다. 게다가 천년을 간다는 한지로 만들어 오랫동안 그대로 보관이 가능하다. 다양한 표정의 인형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웃음 짓게 한다. “닥종이 인형을 만들어 놓고 아침에 보면 저를 보고 웃고 있는 것 같아요. 어느땐 약간 방향이 틀어져 있으면 토라져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익살스러운 표정과 장난끼 있는 모습의 닥종이 인형은 마음 속 깊은 곳의 감정을 끄집어내는 묘한 맛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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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꾼 우연한 기회
김근화 작가가 닥종이 인형을 만들게 된 계기는 25년 전 친구의 권유로 간 백화점 문화센터에서부터다. 그곳에서 한지 그림을 배우게 됐는데 당시 만난 그림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닥종이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제가 처음 시작했을 때는 닥종이 인형을 만드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거의 혼자서 많이 만들었죠. 남편이 배를 타는 일을 했기 때문에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인형을 많이 만들면서 기술을 익히게 됐어요.”

김 작가는 닥종이 인형을 취미로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실력을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런 만큼 노력을 거듭했고 2010년 제16회 전주한지공모대전에서 은상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상을 받는 것도 물론 좋지만 김 작가가 가장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따로 있다. 누군가 자신의 작품을 보며 즐거워할 때가 바로 그때이다. “전시된 제 작품을 발견하시고는 멀리서부터 뛰어오시면서 좋아해주시는 분들을 보면 제가 더 행복해져요. 그럴 때 ‘아, 내가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재주가 있구나’라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끼죠.”

닥종이 인형을 만들면서 김 작가의 인생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작품을 완성하면서 성취감도 얻고 또 만드는 과정에서 마음의 수양도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모든 일이 다 이해되고 화가 났다가도 인형을 만들면서 마음의 편안함을 찾았다는 것. 닥종이 인형을 만들고 나서부터 표정도 밝아지고 사람들도 그를 볼 때 편안해졌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닥종이 인형은 그의 인생을 그렇게 달리 만들어줬다.

예술 작품에는 작가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다. 좋은 감정은 또 좋은 상상을 하게 한다. 그 상상하는 것들이 작품의 구성 요소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김 작가는 책을 많이 읽기도 하고 연극, 뮤지컬도 보고 박물관을 다니며 작품 구성을 해나간다.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주제와 구성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특히 사라져가는 우리나라의 풍습이나 역사적 사실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에겐 작은 박물관을 만들어 자신의 작품과 서각하는 남편의 작품을 전시하고 많은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감상하고 공유하고픈 소박한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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