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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꽃,

고깔 위에서

활짝 피어나다

허북구 전통지화 작가


글. 이예진 사진제공. 허북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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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위로 색색의 종이꽃들이 펼쳐져있다. 빨간색, 흰색, 노란색 등 크고 화려한 이 꽃들은 종이로 만들어져 고깔 위에서 폈다. 그리고 이 고깔을 쓴 사람들은 활짝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허북구 지화(紙花) 작가가 보여준 사진에서 말이다.

전통에 전통을 더하다
허 작가의 전공은 화훼다. 우연히 농업고등학교로 진학한 그는 온실관리 장학생이 되면서 화훼 쪽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중학생때 선배들 졸업식 등의 행사에서 짚으로 뼈대를 만들고 한지로 꽃을 만들면서 지화와 인연을 잠시 맺었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화훼 분야로 파고들게 됐다.

순천대학교 농과대학 원예학과로 진학한 그는 재배를 하던 당시의 분위기에서 다른 길을 찾고 싶었다. 그때 선택한 것이 원예 장식이었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서 장식과 관련된 책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는 몇안 되는 책들의 출판사를 통해 저자에게 편지를 쓰는 열의를 보였다. 다행히 연락된 저자들로부터 받은 책을 통해 드라이플라워, 꽃 장식 등을 공부할 수 있었다.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간 군대에서는 꽃꽂이 자격증과 조경자격증을 취득했다. 제대 후 집에 손을 벌리기 싫었던 그는 공부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을 찾다가 예식장 등에 웨딩부케를 납품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 “당시 공무원 월급이 30~40만원 할때인데 웨딩부케는 10만원 했어요. 저는 하나당 5만원에 납품하면서 한 달에 100만원을 손에 쥘 정도로 수입이 쏠쏠했죠.”

그는 꽃 장식을 만드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대학원에 진학한 후 글을 쓰기 시작했다. 허 작가는 “당시 1990년대에 잡지 등의 편집 회사들이 많아졌다”면서 “당시 지도 교수님은 외국에 계시고, 혼자 할 일을 찾다가 드라이플라워에 관련한 글을 써서 잡지사에 보냈는데 원예 관련 잡지에서 실어줬다”고 설명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글쓰기를 통해 대학 강의도 하게 됐다. 지금 원광대에서 20년 째 강의를 하고 있는 그는 꽃과 관련된 책도 내면서 꽃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종이로 피어난 꽃, 지화
지화는 종이로 만든 꽃이다. 한마디로 종이꽃이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허 작가는 전통 꽃을 조사해 종이로 활짝 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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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타이난시 ‘웬창 플러스-크리에이티브센터'에서
‘허북구 한국 지화전’에서 전시한 미니 농악고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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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북구 전통지화 작가
 

   
그가 전통 지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8년 당시 장식원예총론을 저술하면서 지화를 책 내용에 포함시키면서이다. 이후 언젠가는 전통 지화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의 부인이 완도군 보길도로 근무지를 옮기고 그가 보길도와 그 인근 섬을 방문하면서 본격적으로 전통 지화의 조사 연구에 뛰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조사를 시작하면서 그는 전통 꽃에 대한 정보가 너무 적다는 것과 전통 지화에 대해 아는 사람이 얼마 남아있지 않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충격을 받은 그는 전남 곳곳을 찾아다니며 전통 꽃을 조사했다. 조사한 자료를 통해 재현하면서 종이꽃으로 피워냈다. “조사를 시작하니까 아차 싶었어요. 섬에서조차 전통 지화를 찾기 힘들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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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깔쓰기 체험을 하고 있는 외국인들의 모습
 

전통에 전통을 더하다
허 작가는 지지 않는, 계속 이어질 수 있는 종이꽃을 위해 고깔에 접목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전통 지화를 연구하면서 지화가 무속신앙이나 불교 외에 생활 속에서 사용되고 있는 경우를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년 진행되는 농악 공연에 쓰이는 고깔에 각 지역의 특색 있는 꽃을 올리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그는 “전승 방안으로 사물놀이 고깔을 전통 지화의 오브제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사물놀이는 지역별로 조직화가 되어 있고, 전통이 이어져 있기 때문에 사물놀이에 쓰이는 고깔에 전통 지화를 접목시키면 꽃이 지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전남에 있는 지역의 사물놀이 전수자들을 찾아가 옛날부터 고깔에 사용됐던 지화를 조사했다. 예상했던 대로 과거에는 고깔에 특색 있는 지화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담양 우도농악전수관과 진도 소포농악전수관에서는 아직도 전통적으로 사용된 지화를 이용하고 있었다.
희망을 품은 허 작가는 지역별로 특색 있는 지화를 다시 살리면 사물놀이 고깔 역시 지역별로 다양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사 끝에 그는 올해 초 천연염색 한 한지로 나주 농악대에서 1950년대까지 사용됐던 모란을 이용한 고깔을 재현했다. 이를 풍물굿패 해원(단장 이우정) 단원들이 지난 4월에 모란이 올라간 고깔을 쓰고 해남 꿈누리센터에서 공연을 했다. 공연 전 허작가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전통고깔문화협회’ 회원들이 고깔 쓰기 체험을 하는 행사도 있었는데 200여 명이 참여할 정도로 큰 반응이 나타났다. 이후 회원들뿐만 아니라 행사에 왔던 관람객들도 고깔을 쓰고 싶어 하는 등 고깔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사실 허 작가가 처음부터 고깔에 지화를 올릴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이 아이디어는 지난 해 대만 타이중시정부 문화국 초청으로 지화 전시회를 열면서 얻었다. 그는 “대만의한 관계자가 전시회만 보면 정적이니까 이벤트를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지화와 함께 출품을 했던 사물놀이 고깔을 쓰는 체험을 준비했다”면서 “당시 많은 사람들이 고깔을 쓰고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는 등 크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고깔에 지화를 접목시켜
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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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고깔에 사용되는 담배꽃지화를 응용해서 만든 지화작품
 


지화와 고깔, 세계에 알리다
고깔이 이용되는 농악 사물놀이는 지난 201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 유산에 등재가 되어 세계적으로 지화를 알릴 수 있는 소재이기도 했다. 올해 초에 열린 대만 타이난 ‘웬창 플러스-크리에이티브센터’ 전시회 때는 지난해 둔구예문센터 전시회에서 사물놀이 고깔이 인기 있었던 것을 착안해 고깔을 작게 축소해서 ‘미니 고깔’을 전시했다. 그러자 관람객들은 미니 고깔이 너무 아름답다며 구입을 희망하기도 했다.

허 작가는 “고깔은 우리 문화를 알리는 데 좋은 소재”라고 말한다. 이목을 끌기에 좋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고깔을 쓰면서 재미있어 하고, 그러면서 우리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진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한국전통고깔문화협회를 통해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고깔 쓰기 체험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 러시아, 대만, 인도네시아 등에서 체험을 실시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깔의 크기나 모양 그리고 지화의 종류와 모양 등을 다양화해서 한국적인 패션 소품, 문화상품으로 발전시킬 것”이라며 “이를 통해 사라져가는 지역의 상징 꽃들을 고깔의 꽃으로 삼아 특색 있는 지역의 문화로 살리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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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기록하다
전통 지화를 복원하면서 허 작가가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늦게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는 “10년만 일찍 시작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그러면 전통 꽃에 대해 알고 있는 분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사실 허 작가처럼 전통 지화와 관련해 조사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 중에 하나다. 그래서 그는 “없어져가는 것들을 기록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허 작가와 인터뷰 하면서 느낀 점은 ‘기록장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지화 작가’ ‘한국전통고깔문화협회장’이라는 타이틀 외에도 참 많은 명함을 가지고 있다. 그는 현재 나주에 있는 한국천연염색박물관의 운영 주체인 (재)나주시천연염색문화재단에서 재단이 설립되던 지난 2006년부터 운영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 국내외 학술지에 320편 이상의 논문을 게재하고 100여권의 책을 국내외로 출판하면서, 특허 등 지적 재산권도 100건 이상 가지고 있다. 이 외에도 원광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고, 전라남도 지방공무원교육원에서 오는 12월까지 진행되는 ‘도-시군 도시농업 업무 협업 과정’의 지도교수도 맡고 있다.

그가 이렇게 수많은 책들을 출판하고 글을 쓰는 이유는 ‘보존’을 위해서다. 그가 출판한 책들을 보면 사실 쉽게 팔리지 않는 책들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잊히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을 기록으로 남긴다. 예를 들어 ‘근대 전남 나주의 단오 풍속과 찔레꽃 떡 문화’ ‘근대 나주의 분추떡 문화와 절굿대’ 등 이러한 책들은 나주만의 떡 문화에 대해 기록해놓은 책이다. 그는 “전남 지역은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이 특히나 부족한 형편”이라며 “내가 조금이라도 잘 하는 것이 뭘까 고민을 하다가 자료를 조사하고 글로 정리하는 것을 잘한다는 생각에 책을 계속 쓰게 됐다. 그러면서 이러한 활동이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허북구 작가는 참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없어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그리고 지키고 싶어 하는 ‘지역 문화 지킴이’이자, 이를 세계로 알리는 ‘알림이’였다. 그는 “이제 다른 지역에서도 축제 때 사용할 수 있는 지역의 꽃을 이용한 고깔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지역 사회에도 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의 희망을 이야기했다. 이 이야기 조차 지역 사회를 위한 것이었다. “요즘 어르신들의 일자리가 없고, 지역 사회의 일자리가 없다고 합니다. 고깔과 지화는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어르신들에게 만드는 방법을 알려드리고, 그 작품을 국제농업박람회에 전시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어르신들에게는 성취감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려고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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