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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황금화 초대작가 해금 배정화 화백
‘화폭 가득 평화가 피어난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어 더욱 그리운 금강산. 그렇기에 꿈에서라도 보고 싶고 오르고 싶은 그곳. 그토록 그리운 금강산으로 가는 길이 다시 열리기를 바라며 붓끝으로 금강산을 그려내는 이가 있다. 붓이 지나는 자리마다 황금빛 물이들고, 화폭 가득 금강산의 빼어난 절경이 펼쳐진다. 우리 민족의 꿈, 남과 북 7천만 겨레의 바람인 통일의 염원을 담아 ‘금강산 황금화 작품’을 그려내는 해금(海金) 배정화 화백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글 백은영
 
 
 
지난해 가을 인사동에서 특별한 전시가 열렸다. 해금(海金) 배정화 화백의 ‘금강산 황금화초대전’이 그것이다. 금으로 색을 입혔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지만 무엇보다 민족의 영산(靈山) 금강산을 그리며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를 염원했다는 사실이 주목할 만하다. 그렇기에 금강산 황금화 작품을 단지 순수미술의 한 장으로만 치부 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운명처럼 찾아온 금강산

배정화 화백은 금강산 황금화 작업을 하게 된 것을 두고 참으로 묘한 일이라고 말한다. 지난 50여 년간 오직 서예, 전각, 서각, 한시, 문인화 등에 전념해왔던 그에게 금강산 황금화 작업은 힘든 시기에 찾아온 한줄기 빛과 같았다.

“제가 금강산 황금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기지가 않아요. 예술의전당에서 50년 회고전을 준비하고 싶었지만 전시관 리모델링 등의 문제로 무산됐을 때였어요. 허탈함에 힘들어하고 있을 때 세계청년평화캠프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으로 계신 리훈 박사님을 만나게 된 거죠. 그렇게 금강산 황금화 작업을 시작하게 됐죠.”
 
홍익평화포럼 이사장이기도 한 리훈 박사는 지난 1989년부터 중국의 저명작가 故 리영(1935~2004) 선생을 후원하며 ‘금강산 황금화 작품’을 진행, 이미 서울에서 7회, 북한에서 1회 전시를 성황리에 마친 상태였다. 그러던 중 리영 화백이 2004년 갑자기 작고하면서 ‘금강산 황금화 작품 순회전시회’는 공백기를 맞게 됐고, 리 박사 역시 금강산 금화를 잘 그릴 수 있는 화가를 찾아 나서던 상황이었다.
 
“금강산 황금화는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한 것이에요. 박사님께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는 많이 망설였어요. 3개월 정도 시간을 달라고 했죠. 그동안 금강산 금화작품에 참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 같아요. 완성된 작품들을 보시더니 기대 이상이라며 좋은 반응을 보이셨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오게 되었네요.”

금의 신비감과 금강산의 기상이 절묘하게 융합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는 배 화백. 금강산 황금화 작업을 하면서 금의 신비감에 스스로도 놀랐다는 그는 무엇보다 밑그림과 잘 조화되고 표현력도 강해 완성된 작품을 보면 찬란함 그 자체라고 말한다. 태양빛과 실내등의 각도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며 신비로움마저 발산하는 것이 금강산 황금화의 매력이라고 말하는 그는 결국 그 매력에 빠져 몸을 돌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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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황금화, 배정화, 145x75㎝
 
 
“금강산 황금화 작업에 몰두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어요. 그 결과 과로로 몸살, 감기는 기본이었고 신우염까지 앓아 병원신세를 져야 했죠. 그래도 민족의 소원인 통일과 세계평화를 염원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황금화 작업에 임했어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금강산 황금화 작업을 하다 보니 하늘에서 보호해주시는것 같아요.”

금강산 황금화 순회전시를 향해

서예가이자 전각가인 배 화백이 자신의 첫 개인전을 표현하기 까다로운 ‘금강산 황금화’로 열었다는 것은 어쩌면 모험과도 같은 일이었다. 기존 화단의 시각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가 개인전을 준비하며 잔뜩 긴장했던 것도 당연하다.

“금강산 황금화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참 많이 긴장했어요.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고민도 됐죠. 게다가 금강산 황금화 전시는 한국 작가로는 처음이었고 작품들도 대작이었기에 정말 혼신의 힘을 다했어요. 화단 원로들의 격려와 칭찬을 받고 보니 꿈만 같더라고요.”

자신의 첫 개인전이자 ‘금강산 황금화 세계순회전시’의 시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배 화백은 리훈 박사와 함께 세계순회전시를 위한 준비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금강산 황금화 세계순회전시’는 리훈 박사님이 23년 전부터 준비해온 일이에요. 그첫 스타트로 먼저 워싱턴을 계획하고 있어요. 이를 위해 박사님께서 2013년부터 총 5회에 걸쳐 미국을 방문하셨고, 중국 황실 전시관 개최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며 작년에는 중국 북경을 방문해 황실박물관장 등을 만나 협의를 마친 상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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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이화세계 전각작품(음각) 무불리위겸(양각), 배정화, 35x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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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화 화백이 작업실에서 금강산 황금화 작업에 임하는 모습
 
 
 
세계순회전시가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는 배 화백. 자신은 오로지 그림에만 전념할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금강산 황금화’가 세계 여러 나라에 소개되고, 이를 계기로 세계인들이 한반도의 통일에 대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기도와 그림으로 시련을 극복하다

배 화백은 7살 어린나이에 처음 글씨와 그림을 시작했다. 유복한 환경 덕에 국내 최고의 스승들에게 사사할 수 있었다는 그는 한학과 서예스승에 故 월호 최천규, 서예 故 여초 김응현 은사, 전각·서각 故 청사 안광석 수사, 수묵·사군자 홍익대 故 남천 송수남 교수, 한시 故 농산 정충락 선생, 동방서법탐원 최고위과정 한자의 기원 갑골문의 진화 청범 진태하 박사, 한학 백곡 김태현 교수, 서법의 구당 여원구선생, 초정 권창균 선생, 심은 전정우 선생, 홍익대 서양화 김승현 교수 등에게 글씨와 그림을 배웠다.
 
참으로 많은 스승이 그를 가르쳤고, 배 화백은 열정을 다해 배우고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어려서부터 글씨와 그 림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세상물정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른다는 그는 “사람들의 말을 잘 믿는 편”이라고 말한다. 그런 탓에 인간적인 배신을 느끼기도 하고, 과로와 사고로 인한 투병생활이 지속되면서 삶이 많이 버거웠다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힘든 일들이 겹쳐왔을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기도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그때 그 지나간 시련의 시간들이 더욱 작품에 몰입하게 하는 촉매가 되었던 것 같아요.”
 
때로는 그림으로 인해 상처받고 힘들기도 했지만, 결국 그림으로 치유 받고 또 그림으로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를 염원하고 있는 해금 배정화 화백. 그의 노고가 금강산을 물들인 황금빛 빛깔처럼 환하게 빛날 날이 오기를 바라며, 금강산 황금화 순회전시가 순조롭게 이뤄지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