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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탄생화는

무엇인가요?


탄생화 그리는 김민선 한국화 작가


글. 백은영 사진제공. 김민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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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제16회 행주대전 특선 <그대 품안에>
 


사람마다 태어난 해와 달과 날(日)이 있고 별자리가 있으며, 탄생화가 있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별자리는 알지만 태어난 날의 ‘꽃’에 대해 아는 사람은 흔치않다.
여기 그 흔치않은 ‘탄생화’를 그려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이가 있다.
바로 김민선 한국화 작가다. 그의 손을 거친 꽃들은 동화 속 요정이 되기도 하고,
꽃 그 자체가 되어 한국화의 단아하고 포근한 풍경 속에 피어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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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제44회 국제문화 미술대전 동상 <세월>
 



그에게 1년은 366일
별자리는 알아도 내가 태어난 날의 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우연히 그의 작품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의 작품을 통해 알게 된 기자의 탄생화는 ‘게으름 없는 마음’이라는 꽃말을 가진 ‘마가목’이다.

사실 바쁘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다보면 마음의 여유는 어느새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깊은 번뇌와 고뇌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굳이 멀리 떠나지 않아도, 많은 시간을 내지 않아도 마음의 위로를 받고 평안을 느낄 수는 없는 것일까. 한국화 속에 피어난 탄생화를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이 그랬다.

“내가 위로받고 있구나!”

그와 인터뷰를 잡기 위해 전화를 했을 때,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동화 속 요정’ 같은 맑은 목소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왜 그의 그림이 이토록 위로가 되는지를…. 며칠 후 동네의 작은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자신의 그림을 좋게 봐줘서 고맙다는 말을 먼저 건넸다. 공교롭게도 인터뷰 다음날이 이삿날이라 마음 쓸 여유가 없었을 텐데도 기꺼이 시간을 내주던 그다. 이삿짐을 정리하 는 분주한 와중에도 <한국화 풍경 속 366일 탄생화> 작품 몇 점을 들고 나온 그의 정성이 더해져서인지 눈앞에서 직접 실물로 본 그림은 ‘평온’ 그 자체였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치면 ‘힐링’이 되는 그림이다.

“작가님. 그런데 왜 1년이 366일인가요?” “2월 29일이 있잖아요! 그날이 생일인 사람들도 많을 텐데, 탄생화가 없으면 얼마나 서운 하겠어요.” 무엇인가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1년은 365일’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자칫 소외될 수 있거나 소홀할 수 있는 부분까지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의 그림이 깨끗하고 따뜻하게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김민선 작가는 ‘날마다 그림’이라는 이름으로 2014년부터 <366일 탄생화 요정과 동화> <한국화와 캘리그라피 366일 하루 명언> <한국화 풍경 속 366일 탄생화> <366일 탄생화 심벌> 등 탄생화 작업을 말 그대로 ‘날마다’ 진행해 오고 있다. 자신이 세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작품활동을 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자기와의 약속을 지킨다는 것, 그의 작품이 날마다 색다르고 나날이 더 발전해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애니메이터, 한국화 화가가 되다
사실 그가 처음부터 한국화를 그린 것은 아니다. 1990년부터 2004년까지 그의 직업은 애니메이터였다. 애니메이터란, 흔히 애니메이션 작품의 기획과 창작, 연출, 디자인, 채색, 촬영 등 제작의 전 분야에 종사하는 스태프들을 총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제작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이라 할 수 있는 ‘움직이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말한다. 다시 말해 핵심이 되는 요소와 동작을 그려내는 ‘원화가’ 및 원화와 원화 사이에 그림을 그려 넣어 움직이는 그림을 만드는 ‘동화가’ 등 연출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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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作 <고향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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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9일, 노란색 제비꽃, 수줍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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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3일, 살구꽃, 아가씨의 수줍음
 


김민선 작가는 이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서울무비, 에이콤(AKOM), 프러스원, 러프드래프트 코리아(RDK), 선우 엔터테인먼트, 애니비전 코리아 등 이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곳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국내 뿐 아니라 Nickelodeon Animation Studios, Disney, Warner Bros Animation, 기타 여러 회사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작품에도 참여했다.

<버버스와 벗헤드> <다리아> <101 달마티안> <마이티 덕> <헤라클래스> <못 말리는 비버형제> <캣독> <우주 스파이 짐> <아기 친구 러 그래츠> <진저> <엑스맨> <심슨> <아서> <캐스퍼> <공룡시대> <배트맨> <태즈 매니아> <포니> <블루시걸> <아마겟돈> <날아라 수퍼보드> <배추도사 무도사> 등 수많은 작품에 키 애니메이터(key animator: 원화를 그리는 애니메이터)로 그림을 그렸다.

“당시 저는 애니메이터라는 직업이 정말 좋았어요. 즐기면서 작업했기에 늘 새벽부터 나가 그림(원화그리기)을 그렸죠. 저는 타고난 재주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엄청난 노력파에 가까웠죠. 부족하다고 느끼기에 발전하려고 노력했어요. 하루 3~4시간밖에 못 자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죠. 제가 그린 그림이 나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요.”

그가 활동하던 당시는 여자들이 원화맨(애니메이터)이 되기 힘든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아서 비디오테이프의 필름이 끊어질 때까지 보고 또 보면서 애니메이션 동작들을 연구했다. 지금이야 애니메이션과가 개설돼 많은 인재들을 양성하지만 당시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 이상 스스로 터득해야 했다. 연습과 노력만이 실력을 키울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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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일, 금영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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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일, 하얀색 나팔꽃, 넘치는 기쁨
 


“새벽 6시에 출근해 데생연습을 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죠. 당시에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혼자서 일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이 일은 팀워크도 중요한데, 아무래도 제 작업방식이나 생활방식이 다른 팀원들에게는 부담스러웠던 것 같아요. 당시 애니메이터로 활동하면서 받은 상처들도 많지만 저 또한 누군가에게는 원치 않는 상처를 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15년 동안 정들었던 애니메이터의 길에서 벗어난 그는 2005년 이후 현재까지 일러스트레이터와 한국화 작가로서 역량을 펼치고 있다. 단행본으로 <혼자 가기 무서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동화> <세상에서 가장 큰 지혜를 주는 동화> <모두의 행복을 지켜주세요> <탈무드> <타임머신> <홍길동> <하소연> <자신감> <세계 단편> <한국 단편> <시크릿> 등을 펴내는가하면, 신문이나 표지, 전집, 캘린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러스트 작업을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한시도 쉬지 않고 참으로 많은 작품활동을 해온 그다. 비단 애니메이터나 일러스트레이터로서만 두각을 나타낸 것은 아니다. 2010년에는 제44회 국제문화미술대전에서 한국화 작품 <세월>로 동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열린 제16회 행주대전에서는 <그대 품 안에>라는 한국화 작품으로 특선에, 마찬가지로 같은 해 열린 제29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는 <그리움>이라는 작품으로 입선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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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 호랑가시나무, 선견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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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9일, 빨간색 봉선화, 날 건드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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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 초롱꽃, 성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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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5일, 메리귀, 음악을 좋아함
 


지난 2018년에는 3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김포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에서 <366일 탄생화> 전시가 진행되기도 했다.

좋은 작가들과 좋은 책 만들고파
김민선 작가는 말한다. 지금처럼 계속 그림을 그리고 책을 내고 싶다고. 거기에 조금 욕심을 보태자면, 참신하게 글 잘 쓰는 작가들과의 공동작업을 통해 ‘좋은 책’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주변에 정말 재미있고 참신한 글을 쓰는 작가들이 많아요. 하지만 ‘네임벨류’가 없다는 이유로 출판사에서 찾지 않으니 책을 내기가 쉽지 않죠. 아이들이 보기에 부적절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는 일명 ‘B급동화’ 중에도 재미있는 내용이 많아요. 사실 따지고 보면 해리포터도 잔인한 내용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아직 우리나라는 ‘동화는 이래야 해!’ ‘좋은 책이란 이런 거야!’라는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어요. 기존의 것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그것을 받아들일 여력이 안 되는 거죠.”

그 스스로가 힘들게 책을 냈던 만큼 다른 작가들에게는 그 전철을 밟게 하고 싶지는 않다는 김민선 작가. 그저 역량 있는 작가들이 즐겁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책을 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펜(붓)을 들 힘이 있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먹 하나만으로도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신비로운 그림. 그런 작품을 남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