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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실 한 땀 속에

담긴 소원

김태자 한국궁중자수연구원 대표


글, 사진.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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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서울에서 열린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장소였던 아셈컨벤션센터 정중앙 벽면을 장식한 김태자 명장
의 자수벽화작품 ‘일월오악도.’
 


학이 날아오르고 꽃이 피어나는 생동감.
그 속에 자연의 생명력이 꿈틀대는 십장생이 수놓아진 자수 병풍은 장생불사를 기원한다.
한 땀 한 땀 오색실로 수놓은 자수 명장의 작품에는 소원을 비는 ‘기도’가 함께 담긴다.
지나간 시대 사람들이 품고 있던 꿈과 소망 그리고 위대한 유산과 업적들을
오색실에 꿰어 꽃피우고자 하는 바람을 담아
오늘도 김태자(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 전수 조교)
자수 명장은 바늘과 실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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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도우며 익힌 바느질
김태자 명장의 고향은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제주다. 그의 어머니는 양장기술을 활용해 가족들의 옷을 직접 지었고 양장과 학생들의 교복을 주문받아 제작했다. 1남 7녀, 8남매 중 맏이였던 김 명장은 그런 어머니를 도와 옷의 단추 구멍 다듬는 일을 도맡아 했다.

“외할머니가 수를 놓으셨고 어머니는 양장점을 운영하셨어요.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솜씨를 이어받은 것 같아요. 중학교 때 수예 시간에 학생들이 수놓은 것 중 5개 작품을 뽑아서 전시했는데 그중 제 작품도 뽑혔어요. 고등학교 땐 수예특기상을 받기도 했죠. 당시 정경자 수녀님이 선생님이셨는데 1986년에 문공부장관상을 받고 기사가 나니까 연락을 주셨어요. 기도하는 마음으로 수를 놓으라 말씀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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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장생과 칠보문양
 


학교 수업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늘 어머니의 일을 도왔다는 김 명장. 되돌아보면 바느질의 기본은 모두 그때 배운 솜씨라고. 선생님이 꿈이었던 김 명장은 수를 놓거나 옷을 만드는 등 자연스럽게 익힌 것들이 직업이 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운명처럼 들어선 길
제주 출신인 그는 서울에서 버스를 잘못 타안국동에 내려 자수와 인연을 맺었다. 지금은 한국에서 손꼽히는 전통자수 명장이지만 그날의 우연한 사건이 없었다면 그의 삶은 뒤바뀌어 있을지 모른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서 종로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잘못 내린 곳이 안국동이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보게 된 간판 ‘베스타 자수연구소.’ 무엇에 홀린 듯 문을 열었을 때 수많은 또래가 빨간 천에 푸른 솔잎과 하얀 학들을 수놓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숙명여대 가정과를 졸업하신 문정임 선생님이 거기 계셨어요. 침식 제공을 하면서 밤 10시까지 작업했죠. 처음 3개월은 실 꼬는 일만 시키는데 제 실력을 보시곤 바로 나무나 솔잎을 넣는 자수에 투입하셨어요. 수강료를 내는 대신 공임을 받으며 일을 했죠.”

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자수장 교육조교)인 김 명장. 1991년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뒤 감춰져 있던 그의 실력이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김 명장은 자수와 관련해 다각도로 공부하고자 여러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중 故 한상수 선생의 가르침을 잊을 수 없다. “흉배를 주제로 열린 선생님 개인전에서 ‘품계’에 관한 설명을 들었을 때 인상 깊었어요. 이후 선생님이 불교 자수전시회를 하셨을 때 자주 왕래하며 자릿수 기법을 익혔어요. 선생님 지도 아래 전승공예대전에 적극 참가하게 되면서 1987년 이수자가 됐고 1992년 조교로 선정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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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유네스코(UNESCO) 아시아·태평양 수공예상 대상을 받아 세계무대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한국궁중자수연구원 대표를 지내고 있으며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한국전통문화재, 숙명여대 등에서 강의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솜씨가 금방 늘어요. 다들 많이 보고 배우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몇 년 배운 기능인을 금방 따라잡아요. 디자인 감각도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특히 전통자수를 배워 작품에 접목하겠다고 하는 미술 전공 학생들도 있어요. 속으로 엄청 반가워요. 선생보다 더 나은 똑똑한 제자가 나오면 더 바랄 게 없죠. 우린 창작성이 약한데 지금 얘들은 배움도 길고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환경에 있다 보니 독창성이 있어요. 그래서 기능만 가르치면 되겠더라고요.”

화려한 궁수, 정감 가는 민수
우리 전통 자수는 크게 궁수와 민수로 나뉜다. 일반인들은 구별하기 쉽지 않지만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우리 자수는 입체감이 느껴지는 게 특징. 명주실을 꼬아서 놓기 때문이다. 특히 궁에서 제도적으로 길러낸 자수 기능공들이 만들어 낸 궁수는 섬세하고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다.

“과거 궁에는 도안 그리는 사람, 실 염색하는 사람, 수를 놓는 사람이 구분돼 있었어요. 8살에 들어가 기술을 익혔다고 해요. 궁수는 그만큼 작품이 화려하고 완벽하죠. 반면 민수는 조금 엉성한 부분도 있고 색상도 단출한데 보고 있으면 정감이 가요. 자수에는 ‘기도’가 들어가 있죠. 바위, 해, 거북이 등은 장수를 상징하고 석류는 다산(多産), 잉어는 취업과 출세를 상징해요. 이러한 소원을 빌며 수를 놓죠.”

경건한 마음으로 한 땀 한 땀 수를 놓을 때마다 소원도 함께 불어넣는다는 김 명장. 새, 꽃, 나비, 열매가 갖는 상징성을 따라 자수를 놓다 보면 완성할 즈음 어느새 소망도 함께 짜여있다. 만드는 사람이 행복한 마음으로 작업해야 그 마음이 작품에 담겨서 받는 사람도 행복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일하면 배색이 잘되지만 어두운 마음으로 하면 작품 색도 어둡다는 게 김 명장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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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작품 스케일
기계자수에 비해 생동감이 있고 전통의 멋과 바늘을 잡는 이의 기교를 느낄 수 있는 전통자수의 기법은 이렇다. 돗자리 표면처럼 촘촘하게 엮는 자릿수, 땀수가 장단으로 교차되는 자련수, 수면을 수평·수직·경사 방향으로 메워 가는 평수, 선을 만드는 이음수, 수가 놓인 부분을 고정해 흩어지지 않게 하는 징검수, 각종 꽃술이나 석류 등의 씨앗을 표현할 때 쓰는 매듭수, 사슬고리 모양의 사슬수 등이 있다. 김 명장은 대작을 주로 하는 만큼 자수기법도 큰 면적을 메우는 데 주로 사용되는 ‘자릿수 기법’을 사용한다.

“작품을 완성할 때 화장실 가고 밥 먹는 시간 외에는 온종일 작업에 매달려요. 밤샐 때도 많고요. 젊었을 때는 몇 시간 못 자고 2~3일씩 밤을 샐 때도 있었죠.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도 며칠을 두고 보다 보면 허점이 나와요. 그러면 기법도 바꿔보고 못마땅한 부분은 뜯어서 고치게 되죠. 주문한 사람이 만족하면서 찾아갈 때 왠지 딸을 시집보내는 마음마저 들어요. 그래도 내 작품이 그 가정에 행복을 주면 좋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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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 자수 전문인 김 명장은 주로 대작을 해 왔다. 국립민속박물관, 숙명여자대학교 자수 박물관, 궁중유물전시관과 기타 기관 등에 소장된 작품을 비롯해 개인 소장품과 소품들까지 김 명장이 쏟아낸 작품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고 다양하며 방대하다. 지난 1991년 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자수법화경보탁도’는 제작기간이 가장 길었던 작품이다. 완성하는 데 4년이 걸렸다. 2000년 서울에서 열린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장소였던 아셈컨벤션센터 정중앙 벽면을 장식한 자수벽화작품 ‘일월오악도’도 김 명장의 작품이다. 가로 4 80㎝, 세로 2 60㎝ 크기에 약 7개월에 거쳐 7명이 함께 완성한 이 대작을 통해 그는 한국 전통 자수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11월 28일부터 12월 3일에는 제1회 김태자 전통자수연구회 회원전이 열렸다. ‘김태자 전통자수연구회’는 김 명장의 제자들이 만든 모임이다.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며 첫 번째 작품 전시회를 연 것이다. 김 명장을 비롯해 그의 제자 35명 중 32명이 작품을 선보였다.

“제자들이 전시회 열기를 간곡히 원했어요. 생각지도 않게 빨리 진행됐는데 잘 되길 바랄 뿐이에요. 제자들이 알아서 진행한다고 해서 그냥 믿고 맡겼어요. 고마운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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