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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으로

평화를 수놓다

금강산 황금화 작가 해금 배정화 화백


글, 사진. 백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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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物相 雪景, 38×36㎝, 2017

 


해금 배정화 화백을 다시 만난 건 무려 3년 만이다. 그 세월 동안 배 화백은 여전히 금강산 황금화 작업에 열정을 쏟았고, 지난 6월에는 서울시청 지하 1층 시민청갤러리에서 <금강산 황금화 평화 환타지 초대전>을 열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볼 수 있는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한다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무엇보다 다시 보는 얼굴들이 반가웠다. 금강산(金剛山) 황금화(黃金畵) 작가 해금(海金) 배정화 화백과 ‘금강산세계화추진위원회’ 리훈 위원장이 바로 그 반가운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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飛鳳瀑布 春. 146x20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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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物相溪谷 春景. 143×76㎝, 2017

 


사람들은 황금의 변치 않는 속성을 빗대 ‘진리’로 비유하기도 한다. 금강산(金剛山)의 금강(金剛)은 불교에서 불변의 진리를 뜻하는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의 앞 두 글자와 같다. 그렇기에 금강산을 우리 민족의 영산(靈山)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변치 않는 모습으로 분단된 조국을 지켜주고, 또 갈라진 우리 민족을 이어주고 있는 금강산. 그 그리운 금강산을 황금으로 그리는 해금 배정화 화백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금강산을 알리다
“누구의 주제련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이 천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만민 옷깃 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못 가본 지 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최영섭 작곡, 한상억 작사의 가곡 <그리운 금강산>은 그 첫 소절만으로도 민족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어 더욱 그립고,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 그곳 금강산. 그토록 그립고 아름다운 금강산으로 가는 길이 다시 열리기를 바라며 붓끝으로, 아니 가슴으로 민족의 영산 금강산을 그려내는 해금 배정화 화백. 다시 만나기까지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금강산을 향한 배 화백의 열정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외려 더욱 성장했고 더욱 뜨거워졌다. 그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인가. 배화백의 금강산 황금화 작품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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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剛山 萬物相 秋, 544×72㎝, 2014



지난 6월 시민청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는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까지 배 화백의 금강산 황금화 작품을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전시회 개막식에는 중국 국제발전원조위원회 비서장이 참석해 축사를 전하기도 했으며, 국내 인사로는 이수성 전 국무총리, 김원기 전 국회의장, 김선적 통일광복민족회 상임의장 등 많은 이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평화를 염원하는 그 간절함이 담긴 배 화백의 작품들은 무엇 하나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지 않는 것이 없었다. 배 화백과 리훈 위원장의 진실함과 간절함은 하늘에 닿았고, 머지않은 가까운 시일 내에 중국과 독일 등지에서도 ‘금강산 황금화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다.

“‘금강산 황금화 세계 순회전시’는 리훈 박사님이 26년 전부터 준비해온 일이에요. 이를 위해 박사님께서 2013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미국을 방문하셨고, 중국 황실박물관 개최도 준비해야 한다며 2014년에는 중국을 방문해 황실박물관장을 만나는 등 백방으로 뛰어다니셨어요. 금강산 황금화 작품이 세계 여러 나라에 소개되고 이를 계기로 세계인들이 한반도의 통일에 대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한 디딤돌이 되었으면 해요.”

운명처럼 찾아온 금강산
배 화백은 금강산 황금화 작업을 하게 된 것을 두고 참으로 묘한 일이라고 말한다. 지난 50여 년간 오직 서예, 전각, 서각, 한시, 문인화 등에 전념해왔던 그에게 금강산 황금화 작업은 힘든 시기에 찾아온 한줄기 빛과 같았다.

“제가 금강산 황금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기지가 않아요. 예술의전당에서 50년 회고전을 준비하고 싶었지만 전시관 리모델링 등의 문제로 무산됐을 때였어요. 허탈함에 힘들어하고 있을 때 리훈 박사님을 만나게 된 거죠. 그렇게 금강산 황금화 작업을 시작하게 됐죠.”

금강산세계화추진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한리훈 박사는 지난 1989년부터 중국의 저명작가 故 리영(1935~2004) 선생을 후원하며 ‘금강산 황금화 작품’을 진행, 이미 서울에서 7회, 북한에서 1회 전시를 성황리에 마친 상태였다. 그러던 중 리영 화백이 2004년 갑자기 작고하면서 ‘금강산 황금화 작품 순회전시회’는 공백기를 맞게 됐고, 리 박사 역시 금강산 황금화를 잘 그릴 수 있는 작가를 찾아 나서던 상황이었다.

“금강산 황금화는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한 것이에요. 박사님께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는 많이 망설였어요. 그런데 고 리영 선생과 작업해오던 자료,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한 리 박사님의 활동이 담긴 자료들을 준비해 오셔서 제게 보여주시는 거예요. 처음보는 저를 믿어주시는 것 같았어요. 하물며 중국인도 우리네 금강산을 그리는 일에 십수년을 바쳐왔다는 사실 자체도 저를 가만두지 않았어요. 분명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제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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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 배정화 화백 전시회장을 찾은 인사들

 


금강산 황금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배 화백은 3개월의 시간을 요구했다. 무엇보다 순수미술과 금(金)의 조화와 융합이 잘되는 것이 관건이었다. 결과는 좋았다. 그렇게 둘의 인연이 시작됐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금의 신비감과 금강산의 기상이 절묘하게 융합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는 배 화백. 금강산 황금화 작업을 하면서 금의 신비감에 스스로도 놀랐다는 그는 무엇보다 밑그림과 잘 조화되고 표현력도 강해 완성된 작품을 보면 찬란함 그 자체라고 말한다.

“태양빛과 실내등의 각도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며 신비로움마저 발산하는 것이 금강 산 황금화의 매력인 것 같아요. 구도와 채색 그리고 금색의 적절한 조화와 명암을 잘살려내는 것이 중요했어요. 그래야지만 금강산의 신비로움과 찬란함 등을 잘 표현해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금강산 황금화 작업에 빠져 살다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는 배 화백. 과로로 인한 몸살, 감기는 기본이었고 결국 과로가 겹쳐 신우염까지 앓아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붓을 들 힘조차 없던 그가 지금 대작(大作)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은 민족의 소원인 통일과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 화백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장 깨끗한 마음을 담아 붓을 움직인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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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에서의 해금 배정화 화백(우)와 리훈 위원장(좌)

 


“터치 한 번에도 영의 기운을 담기 위해 노력해요. 그렇게 수만 번의 터치를 하다 보면 영안이 떠져 그림 속에 힘이 담기게 되죠. 많은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시는 게 있었어요. ‘여자가 어떻게 이런 대작(大作)과 작품성을 보여줄 수 있느냐’고요. 그럴 때마다 가슴 속에서 솟구치는 감정이 있었어요. 여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분투의 노력을 다하자는 결심 같은 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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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海金剛 萬物相 夏景, 76×44㎝, 2017
2. 萬物相 秋景 中 일부, 72×38㎝, 2017
3. 金剛山 海花 冬景, 143×76㎝, 2015
4. 金剛山 新溪川 雪景 中 일부, 560×74㎝, 2017
5. 天門雲海 , 133×19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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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화 화백

 


금강산 황금화 작업, 그 결실이 맺히길배 화백은 7세 때 그림으로 시작해 서예, 문인화, 전각, 서각 등 도합 50여 년의 세월을 보냈다. 유복한 환경 덕에 국내 최고의 스승들에게 사사할 수 있었다는 그는 한학과 서예 스승에 故 월호 최천규, 서예 故 여초 김응현 은사, 전각·서각 故 청사 안광석 스승,
수묵·사군자 홍익대 故 남천 송수남 교수, 한시 故 농산 정충락 선생, 동방서법탐원 최고위과정 한자의 기원 갑골문의 진화 청범 진태하 박사, 한학 백곡 김태현 교수, 서법의 구당 여원구 선생, 초정 권창균 선생, 홍익대 서양화 김승현 교수 등에게 글씨와 그림을 배웠다.

참으로 많은 스승이 그를 가르쳤고, 배 화백은 열정을 다해 배우고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어려서부터 글씨와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세상물정에 대해서는 사실 잘모른다는 그는 “사람들의 말을 잘 믿는 편”이라고 말한다. 그런 탓에 인간적인 배신을 느끼기도 하고, 과로와 사고로 인한 투병생활이 지속되면서 삶이 많이 버거웠다고 지난 시간들을 회상하기도 했다.

“힘든 일들이 겹쳐왔을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기도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그때 그 지나간 시련의 시간들이 작품에 몰입하게 하는 촉매가 되었던 것 같아요. 간절함과 분투의 노력은 하늘을 움직인다고 봐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요.”

변치 않는 황금. 그리고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금강산 황금화 작업을 멈추지 않는 해금 배정화 화백. 또한 배 화백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이 모든 일들의 기초를 닦은 ‘금강산세계화추진위원회’ 리훈 위원장. 오래전 뿌린 금강산 황금화 작업의 결실이 맺혀져 이 지구촌이 황금빛 빛으로 찬란하게 비춰지길 바라며, 금강산 황금화 세계 순회전시가 더욱 많은 나라에서 열리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