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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지 않는

꽃이 피다

윤원 오선덕 압화명인


글, 사진. 백은영




하늘의 빛과 비와 공기는 아무 조건 없이 만물이 살아갈 수 있도록 생명을 준다. 그조건 없는 사랑에 만물은 힘을 다해 가장 아름다운 색을 뽐낸다. 사람의 재주가 뛰어나고 과학이 제 아무리 발달해도 자연이 가진 색의 아름다움에는 견줄 수가 없다.

여기 자연의 색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이가 있다. 윤원 오선덕 압화명인은 자연이 가진 색 그대로를 살려내는 데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인다. 작품의 주된 재료가 꽃인 만큼 손끝의 움직임은 섬세하다. 꽃의 아름다움은 한 시절이지만, 그가 만든 작품 속꽃들은 오랜 시간 곁에 두고 볼 수 있어 또 다른 매력을 갖는다. 꽃과 풀을 이용해 또
다른 꽃을 탄생시키고,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윤원 오선덕 명인. ‘식물공예 행복한꽃누르미’ 대표이자, (주)에이치이엔(H.E.N) 대표인 그가 들려주는 꽃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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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대한민국창작미술대전 은상)
대한민국창작미술대전에서 은상을 수상한 작품 <공존>. 배경이 된 색은 콩잎으로 콩의 색에 따라 잎의 색도 다르다. 둥근 원형은
사계절을 담고 있다. 노루귀, 복수초, 펜지, 할미꽃, 벚꽃, 으름은 봄을 상징하며, 어수리와 수국, 트리안은 여름을, 소국과 콩잎
은 가을, 백묘국과 사철고사리, 크리스마스로즈는 겨울을 상징한다. 명인은 이 사계절이 모여 1년 12달이 되고 그 속에서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사는 우리 모두가 공존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작품에 담았다.
 



여름이 성큼 다가온 것만 같았던 5월의 어느 봄날, 오선덕 명인을 찾아 양평으로 향했다. 부부가 함께하는 ‘행복한 부부공방’이자 오선덕 명인 전승아카데미로 사용되고 있는 작업실 안으로 들어서자 명인의 작품들이 기자를 반겼다. 커피의 은은한 향과 함께 명인이 들려주는 압화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이곳이 꽃밭이요,
정성스레 가꾼 정원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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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화 작품으로 탄생한 와인셀러
 

취미로 시작, 명인이 되다
명인이 처음 압화를 접한 것은 20여 년 전쯤이다. 결혼 후 아이 둘을 키우며 가사를 돌보던 그는 어느 날 문득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됐다. 같은 삶의 반복, 진정한‘나’는 없는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한 켠이 허전해졌다.

뭐라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문화센터를 찾았다. 거기서 처음 압화를 접한 것이 지금의 명인을 있게 한 계기가 됐다. 2000년도의 일이다.

“다른 강의도 많았는데 이상하게 ‘압화’가 눈에 들어왔어요. 압화가 널리 알려진 때가 아니어서인지 수강인원이 채워지지 않아 강의를 열 수 없게 된 거예요. 선생님께 부탁드려 배울 수 있게 됐죠.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했는데 자격증을 따고 나니 학교에서 C/A활동(개발활동) 전문강사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렸어요. 원래 꽃을 좋아하는 데다 압화를 통해 꽃을 오랜 시간 간직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어요.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도 좋았고요. 그렇게 압화에 빠져 살다보니 여기까지 오게된 것 같아요.”

압화를 접한 지 3년 만에 출강을 시작했고, 6년째 되는 해인 2006년부터 공방을 시작했다. 지나온 세월만큼 강사도 많이 배출했다. 명인의 말마따나 “압화에 미쳐서 살아온 세월”이었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서 이 길을 걸어온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다. 지금의 명인이 있을 수 있었던 건 스스로의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가족’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원래 다른 일을 하던 남편이 목공을 배우면서 압화를 응용할 수 있는 분야가 넓어졌어요. 작은 소품이나 액세서리부터 가구와 같은 큰부분까지 그 영역을 넓힐 수 있었죠. 남편이 기획과 사업 등 전반적인 부분을 맡은 덕에 제가 온전히 교육과 작품 제작에만 전념할 수 있는 거죠. 중국으로 진출할 생각도 남편이 아니었다면 엄두도 못 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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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아침을 여는 곳 독도> 한글과 무궁화, 독도를 소재로 만든 작품으로 명인은 압화 독도그림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다. 명인은 제7회 대한민국 무궁화미술대전에서 통일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한창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던 시절, 작품을 만들고 공부하는 데 몰두한 엄마에게 싫은 소리한 번 안 하던 아이들도 큰 힘이 됐다. 어렸을 때에는 길 가다 예쁜 꽃을 보면 엄마 생각에 조심스레 손에 들고 오던 아이들이 이제는 다 커서 “몸 챙겨가며 하세요”라고 걱정해주는 나이가 됐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힘든 적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슬럼프가 오기도 했고, 그 과정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기도 했어요. 그런 과정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압화가 이제 제 삶이자, 제 몸의 일부처럼 되어버려서 인 것 같아요. 가족의 힘도 컸고요.”

힘들고 고될 때도 있지만, 기쁨과 즐거움이 더 컸기에 작품 활동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의 말처럼 이미 압화는 삶의 한 부분이자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렇기에 비슷비슷한 작품에 머물러있지 않고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일을 쉬지 않는 그다.

예술과 삶이 만나다
보통 작품이라고 하면 실용적인 부분은 어느정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예술과 일상(삶)은 분리돼 있다는 생각, 혹은 ‘예술’ ‘작품’ 등의 단어가 주는 왠지 모를 거리감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윤원 오선덕 명인의 작품은 실용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활용도가 높다. 물론 예술적인 부분에 중점을 둔 관상을 위한 작품들도 많지만, 작품을 생활에 접목시켜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게 만든 작품들도 적지 않다.

압화라고 하면 액자 안에 담긴 그림 같은 작품들이 먼저 떠올랐지만, 명인의 작품들을 보면 작품의 다양성과 창의성에 놀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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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화는 정말 다양한 곳에 쓰일 수 있어요. 종이나 나무, 유리 등 그 어디에나 꽃을 얹을 수 있죠. 목걸이나 반지와 같은 액세서리부터 탁자, 컵받침, 유리잔, 휴지케이스 등 생활용품 그리고 와인셀러(저장고)나 금고보관함 같은 다소 부피가 큰 작품들까지 그 영역이 무궁무진해요.”

와인저장고나 금고보관함, 뒤주 같은 경우는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그 용도를 가늠하기 쉽지 않았다. 그만큼 예술적인 측면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품들이기에 미처 그 용도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렇듯 예술에 실용을 더한 다양한 작품들을 보고 있으니, 지금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명인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압화는 하면 할수록 공부할 것도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은 것 같아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한 거죠.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적인 부분에 인문학적 소양이 균형을 맞춰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작품 활동이나 강의를 통해 작품을 만드는 기술적인 부분 외에 역사적인 부분과 문화적인 부분까지 가르쳐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았어요.”

실제로 그는 무궁화를 이용해 독도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만들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고 제대로 된 문화를 알려주고 싶어서다.

“꽃 누르미(건조) 기술이 일본에서 많이 발전했어요. 일본 작품들이 많은 이유이자 종종 압화의 원조를 일본으로 오해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2006년 공방을 시작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독도는 우리 땅인데, 혹시 일본인이 벚꽃을 사용해 독도를 표현하면 어쩌지?’ 그 생각이 드니 가만히 못 있겠더라고요.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2010년부터 독도, 한글, 무궁화 등을 그림에 담는 작업을 시작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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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이 쓰인 한지(부군인 이승재 선생이 직접 글을 썼다) 위에 무궁화를 사용해 탄생한 독도 작품들에 대해서는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작품으로 명인은 대한민국 무궁화 미술대전에서 통일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무궁화를 사용해 작품을 만들다보니 우리나라 꽃인 ‘무궁화’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웠어요. 무궁화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죠. 많은 사람들에게 무궁화에 제대로 알려줘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들더라고요. 앞으로 무궁화를 알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체계화해서 교육하려고 해요. 연계할 수 있는 기관이 있다면 같이 문화적인 부분으로 접근하면 좋을 것 같아요.”

사회에 환원하는 삶 살고파
압화 외길 인생. 그 길을 꾸준히 걸어오다 보니 명인이라는 선물을 받은 것 같다는 윤원 오선덕 명인. 그는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받은 것들을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제 나이 60쯤 되면 사회에 환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제가 받은 그 이상을 돌려드릴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봐요. 나눔도 되고 기쁨도 주는 삶. 봉사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분 좋은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어린아이부터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을 가르쳐본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는 명인은 ‘일자리 창출’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이를 위해 국외로 시야를 넓혔다.

아무래도 국내에서는 ‘압화’만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중국으로 눈을 돌린 것도 같은 이유다. 이미 많은 부분이 진행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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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생들이 수료를 하고 나면 강사 외에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게 현실이에요. 작품은 잘 만드는데 강의에는 소질이 없다거나, 작품 활동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해요. 수공예로도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그동안 강의하면서 생긴 노하우로 이제는 수강생들을 보면 강사나 상품제작 등 어느 분야로 가는 게 좋은지 보인다는 그는 수강생 각자에게 맞는 진로를 조언해주는 것에도 열심이다.

명인 아카데미를 시작한 그는 좀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많은 이들이 무궁화를 만져보고 체험할수 있는 장을 만들 계획이다. 무엇보다 전시회도 꾸준히 가질 예정이라는 명인은 전시회를 통해 독도가 우리 땅임을 다시금 알리는 등 역사와 문화 의식을 바로잡는 일에도 힘쓰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저는 교육할 때 압화는 색감놀이, 색놀이라고 말해요. 자연은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우리에게 줬어요. 압화작품의 반은 이미 꽃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색감을 어떻게 잘 배치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보시면 돼요. 자연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는 만큼 원예치료의 효과도 볼 수 있어요. 인위적인 색이 아니니 오래 보고 있어도 피로감이 없죠. 자연 앞에 겸손해지기도 하고, 인성교육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압화’라고 생각해요.”

자연과 함께하며 마음의 안녕을 찾을 수 있는 시간. 흥미로운 것은 꽃 외에도 옥수수껍질, 상추 등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로도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양파껍질처럼 알면 알수록 무한 매력을 발산하는 압화의 세계에 발을 딛고 싶다면, 명인의 공방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많은 이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6월이면 하남시로 공방을 옮긴다고 하니 때마침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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