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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체에 감성을 입히다

캘리그라피 ‘감성붓다’ 유동흔 대표


글. 백은영 사진. 박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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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편지지나 관제엽서 위에 알록달록 색을 입히고 비록 재주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 그림을 그린다. 조금은 어설프지만 한껏 꾸며진 종이 위에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써내려간 편지. 지금은 그 모습을 보기 어렵지만 ‘손편지’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화이자 그 시절의 로맨스였다. 이제는 추억으로 남은 손글씨. 그 ‘손글씨’가 최근 몇 년 사이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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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화가 있는 날 모두놀장 2.한글창의 아이디어 공모전 3. 힐링갤러리 아트클래스 전시 4. 은평구청 신입사원 문화체험 교육
 




글씨를 그리다
멋들어지게 쓰는 글씨. 그래서 ‘멋글씨체’ 또는 ‘손멋글씨체’라고도 불리는 캘리그라피.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아닌 종이 위에 써내려가는 캘리그라피의 글귀들은 잔잔한 아날로그적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그저 멋지고 색다른 글씨가 아닌 ‘감성’이 듬뿍 담긴 살아있는 서체 ‘캘리그라피’에 푹 빠진 사람이 있다.

배우 겸 캘리그라퍼 ‘감성붓다’의 유동흔 대표다. 대학에서 연극영상을 전공한 후 영화와 연극 무대에서 꾸준히 연기활동을 해온 그가 캘리그라피를 만난 건 우연보다는 필연에 더 가깝다. 배우로서 소위 말하는 메이저 시장에 진입하기에는 잘생긴 마스크도, 그렇다고 개성있는 마스크도 아니라고 말하는 그는, 무엇인가 공허하고 허기진 마음을 채울 수 있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때 처음 아이폰을 만져보고 스마트폰 어플을 이용해 영상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학교 선배가 창업하는 것을 도와주면서 영상 제작에도 참여를 했었는데 ‘이 길이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배우로서 나를 조금 더 알리는 데 주력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이것저것 찾아보고 배우면서 크리에이터로 성장하게 된 것 같아요. 물론 배우와 연출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다는 교훈도 얻었죠. 연출 공부도 틈틈이 하면서 정말 작은 ‘29초 영화제’에 출품하기도 했어요.”

‘29초 영화제’에서 두 차례의 수상 경력이 생기면서 유 대표는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만드는 강의를 제안받기도 했다. 그렇게 강사로의 길로도 접어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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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문학 방방곡곡 인문콘서트
 



“영상을 제작하면서 타이틀을 만들 때마다 딱딱한 서체가 아닌, 제 작품을 대변할 수 있는 타이틀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때 캘리그라피를 만나게 된 거죠.”

벌써 6~7년 전 일이니 캘리그라피가 그렇게많이 알려진 때는 아니었다. 강좌도 많지 않을 때였다. 다행히 좋은 스승을 만나 그 또한 서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캘리그라퍼가 됐다.

“배우는 신체에 감성을 입히고 캘리그라피는 서체에 감성을 입힌다는 점에서 두 가지는 이치가 같은 예술 분야라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캘리그라피의 매력에 쉽게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캘리그라피는 무엇보다 본인의 노력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유 대표는 연습이 80%를 차지한다고 귀띔한다. 끊임없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한번쯤 호기심이 생겨 배우려다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기에 더해 창의력과 집중력까지 요하는 종합예술이 바로 캘리그라피다. 그래서 그는 ‘글씨를 쓰다’가 아닌 ‘글씨를 그리다’라는 표현을하기도 한다.

“캘리그라피가 제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저만의 길을 가고 싶었죠. 캘리그라피를 이용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만들어 보고 싶었던 찰나 서울혁신파크에 입주하게 됐죠. 그곳에서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야가 넓어질 수 있었어요.”

서체에‘감성붓다’
캘리그라피를 보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접목하고 싶었던 유 대표는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감성붓다’를 만들었다.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사용하면서 그 응용 범위도 좀 더 광범위하게 확산시키고 싶었다. 때마침 서울혁신파크에 입주하게 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보는 시야 또한 넓어지고 다채로워질 수 있었다.



물론 오랜 배우 생활로 익힌 감각과 타고난 창의력은 캘리그라퍼로서 빠른 성장을 할 수 있는 탄탄한 밑바탕이 됐다. 기본적으로 감성과 감정이 풍부한 그였기에 회사 이름도 “감성을서체에 붓다” “붓으로 다하다”란 의미를 담아 ‘감성붓다’로 지었다. 참 따뜻한 이름이지만 가끔은 ‘붓다’라는 단어가 주는 상징성 때문에 불교 관련 단체가 아니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이름처럼 서체에 감성을 듬뿍 담아내는 유 대표는 사람들을 만날 때 무엇보다 ‘대화’와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의뢰가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다. 상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서체를 만들기 위해서다. 같은 글자라도 상대에 따라 다른 느낌, 다른 감성으로 살려낼 수 있는 것도 대화와 소통의 힘이다. 그렇게 상대와의 교감을 통해 탄생한 글씨는 한눈에도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자기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드러낸다.

“캘리그라피를 배우고자 한다면 틀에 박힌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 해요. 글자로만 글씨를 표현해야 한다는 틀에서 벗어나야 하고, 한글을 배울 때 정사각형의 틀 안에서 또박또박 썼던 틀에서도 벗어나야 해요. 획의 굵기에 따라, 길이에 따라 정말 다양한 글씨가 나올 수 있거든요. 초성, 중성, 종성의 비율을 다양하게 표현해보는 것도 중요하죠.”

유 대표는 글자를 표현할 때 글자의 ‘감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가령 ‘머쓱머쓱’이라는 단어를 쓴다고 할 때에 그냥 예쁘게 혹은 멋들어지게 쓰는 것이 아니라, 머쓱했을 때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그때의 감정을 글자에 표현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런 감정이나 감성을 집어넣어 글씨를 쓰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계속 연습하다보면 분명 같은 단어지만 처음과 달라진 ‘글씨’를 볼 수 있게 될 거예요.”

폭 넓게 생각하는 것, 서체에 감성을 불어넣는 것, 이것만 기억해도 캘리그라피를 배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거라는 유 대표는 ‘감성붓다’의 슬로건으로 ‘열정과 성실로’를 내걸었다. 감성에 열정과 성실까지 삼박자를 두루 갖췄다. 그만큼 노력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실제로 그는 캘리그라피를 이용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최근 육성사업 지원도 받게 되면서 그 꿈에 한 발작 더 다가설 수 있게 됐다. 한글의 소중함 알리고파 “요즘 ‘급식체’다 뭐다 해서 우리말파괴 현상이 심각하잖아요. 심사위원분들도 이 부분에 대해 공감하셨던 것 같아요. 캘리그라피를 이용한 콘텐츠로 한글과 우리말의 소중함과 그가치를 느끼고 인정할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무엇을 하나 하더라도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는 게 ‘감성붓다’의 방향이죠.”

유 대표에 의하면 주입식 교육이 아닌 놀이 형태의 콘텐츠를 제작해 한글에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것이 ‘감성붓다’의 첫 번째 과제였다. 그 형태는 캘그라피를 응용한 보드게임이 될 수도 있고, 소통할 수 있는 책이 콘텐츠가 될 수도 있다. 다양한 형태의 체험놀이를 연구해서 상용화시키는 것을 우선 ‘감성붓다’의 1차 목표로 뒀다.

“작년에 한글 창의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았어요. 저희가 고민해왔던 부분이 검증되고 인정받은 것 같았어요. <한글이 살아있어요>라는 감성놀이책이었는데 이것도 상용화시킬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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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붓다’ 공동대표인 채민경 작가와 함께 만든 감성놀이책 <한글이 살아 있어요>는 이제 막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와 그 부모를 위해 안성맞춤인 책이다.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문제에서 시작된 콘텐츠다.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도 부족하지만, 함께 있는 시간에도 보통 스마트폰을 통해 영상을 틀어주는 일이 많다. 3살만 되도 혼자서 유투브 등을 통해 영상을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보니 걸러지지 않은 영상을 접할 수 있는 위험도 언제든 도사리고 있다.

“스마트폰과 가까워진 아이들을 보면서 부모와 같이 있는 시간만이라도 서로 소통할 수 있고 정서적으로도 도움이 됐으면 했어요. 그런것을 접목한 책이라고 보시면 돼요. 한쪽엔 의성어와 의태어를 캘리그라피로 표현해놓고 한쪽은 아이가 느낀 것을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덜덜’이라는 의태어를 예로 들면 호랑이가 ‘어흥’하는 모습을 보고 ‘덜덜’ 떠는 아이의 모습을 표현해 놓고, 엄마・아빠, 아이가 그 상황을 놓고 역할극을 하는 거죠. 이 시간을 통해 소통하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교감하게 되는 것이죠.”

언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문화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며 새롭게 태어나기도 한다. 우리말파괴 현상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언어와 글자의 1차적인 수단은 분명 대화와 소통에 있다.

우리말파괴로 인해 소통이 어려워진다면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다 떠나서라도 한글창제 이념을 생각했을 때에 전 세대가 함께 소통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변화돼야 할 것이다.

‘감성붓다’ 유동흔 대표 또한 그 시대의 상황과 문화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한글의 우수성과 그 가치를 한 번 더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그 역시 캘리그라피를 통해 한글의 우수성과 소중함을 알리는 콘텐츠 개발에 힘쓸 것을 알기에 그의 의미 있는 도전에 응원을 보낸다.